한선의 미디어전망대
지역이란 이슈만큼 모순적이고 불가사의한 것도 없다. 때로는 지역성 담론의 공허함과 지루함에 좌절하곤 하는데 회의의 틈새는 시장주의적 경영논리 앞에서 특히 무기력해진다. 현재 진행형인 지역방송과 관련한 굵직한 이슈들만 해도 그렇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지역성 이슈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한 <한국방송>(KBS)의 지역국 축소, 거대 통신사들의 지역 케이블방송 인수합병 논란이 대표적이다. 먼저 한국방송 소식. <오늘밤 김제동> 폐지 소식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국방송이 최근 검토 중인 ‘비상경영계획 2019’에는 주의 깊게 살펴볼 대목이 있다. 전국 7개 지역국의 대폭적인 기능 축소를 뼈대로 한 ‘지역국 광역거점센터 육성 계획안’이 그것이다. 축소 또는 폐지 논란에 휩싸인 지역국은 한국방송 내부적으로 ‘을지국’으로 구분하는 방송국들로 중소 지역도시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방송국을 가리킨다. 가령 광역 거점도시인 광주에 방송총국이 있다면 그보다 작은 단위인 전남의 순천과 목포에는 을지국이 운영되는 형태다. 을지국 축소 방안이 알려지자 한국방송 노동조합을 비롯해 지역시민단체와 정치권은 ‘지역방송 말살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영진은 공공성과 공익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역국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지역총국의 역량을 결집하는 방향으로 관련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한국방송이 검토 중인 비상계획안에는 의미 있는 지역방송 활성화 대책도 포함돼 있다. 이를테면 지난해 제주총국에서 시범 운영해 좋은 평가를 받은, 통상 5분 정도였던 7시 저녁뉴스 시간대의 지역뉴스를 전체 시간대(40분)로 대폭 늘린 로컬존 편성을 오는 11월 전국으로 확대하는 안이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바로 로컬존 편성을 위해서라도 지역국의 존재는 불가피한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최소 수십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행정이 존재하고, 일상이 유지된다는 것 자체만으로 지역국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1시간 이내에 출동 가능한 총국에서 지역이슈를 관리할 수 있다는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역의 이슈는 근거리에서 관찰하고 관심을 두고 지켜볼 때 의제화된다. 여기에 예산 건전성이나 효율성의 잣대가 우선적으로 적용돼서는 곤란하다. 결국 지역성을 담보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견제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경영진의 비상계획안은 텅 빈 수사로 외면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엘지유플러스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 등 거대 통신 기업들의 케이블방송 인수합병 문제. 사실 한국방송 사례보다 지역성과 공익성 훼손이 더 우려되는 부분이다. 소관 부처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안타깝게도 이 문제는 지극히 산업적 관점에서 추동되고 해결돼 왔다. 현재 논의에서도 방송의 공익성이나 지역성과 관련한 문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미디어 전문가들은 지금 상태로 인수합병이 완료된다면 유료방송의 지역성, 공익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지던 케이블텔레비전의 지역성 관련 규제가 티 나지 않게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다. 그리고 마지막 별책부록 격인 네이버의 지역언론 배제 문제. 해서 이쯤 되면 지방분권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마저 의심스러워진다. 지역에 대한 비전이 있는가?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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