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29 19:19
수정 : 2013.12.2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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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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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의 영화미학적인 장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분명 쇼트나 편집, 영화언어의 특질에서는 차별성을 지닌 작품이 아니다. 그렇지만 개봉 열흘 만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송강호의 연기도 성공 요인 중 하나이며, 시대적 특색을 재현한 미술팀의 노고도 빛을 발한 것 같다. 하지만 단기간 이토록 극적인 공감을 끌어낸 것을 물리적 요인으로 설명하기는 충분치 않다. 영화의 주요 소재는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났던 ‘부림사건’이다. 부림사건은 부산 지역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이면서, 당시 세무변호사였던 노무현을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만든 계기가 된 실제의 사건이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송우석 변호사는 사상범에게는 물증이 없으니 자백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상대편 증인의 발언에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증거라고는 고문해서 받아낸 자술서밖에 없는데, 국보법이 헌법 위에 있고 형사소송법의 대원칙도 무시합니까?” 송 변호사의 대사만 떼어놓으면, 이 문장은 2013년 겨울의 광화문 광장에 붙더라도 별로 상관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정확히 말해 이러한 기시감은 하나의 문장에서라기보다 영화 전체의 뉘앙스에서 온다.
<변호인>의 최대 장점은 관객을 ‘상상적 인간’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상상적 인간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화학자 에드가르 모랭이다. 그에 따르면 스크린을 통해 인지된 사실들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이미지’의 형태로 바뀐다. 이후 기억을 통해 이미지들은 다시 ‘영상 이미지’로 재생되고, 그것이 바로 영화의 본질이다. 이 때문에 회화와 달리 영화는 ‘살아 있는 영상’을 목표로 한다. 이와 같은 상상적 인간 개념은 영화에서 관객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현대에 이르러 정신분석학의 발전과 더불어 관객의 정의는 세밀하게 재편되었지만, 넓게 보아 모랭의 원칙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 <변호인>은 주인공을 위주로,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따라서 영화를 본 관객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영화가 만족스러웠습니까?”보다는 “이 영화에 공감합니까?”가 더 적합할 것 같다. 아마도 후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관객이라면, 만족도에 대한 전자의 질문 역시 긍정적으로 답할 확률이 높다.
흔히 심리학은 “범죄자가 자신을 ‘심판자’라고 여기기보다 ‘제사장’이라고 여긴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할리우드 범죄 스릴러 속의 악역을 설명할 때 적합하다. <변호인>에서 곽도원이 연기하는 차 경감 캐릭터 또한 심판자보다는 제사장에 더 가깝다. 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을 등에 업은 그의 행동에는 일말의 회의조차 비치지 않는다. “공안형사만 14년째라, 눈빛만 봐도 국보법 사건인지 아닌지 안다”는 태도는 종교적 제사장과 다를 바 없다.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비극의 핵심이 ‘대칭 요소들의 대립’에 있다고 설명한다. 비극의 위기는 ‘붕괴 중인 질서’가 아니라 ‘생성 중인 질서’의 관점에서 온다고 말이다. 차 경감은 제사장이 되어 붕괴되는 과거를 지키려는 인물이다. 한편, 영화 속 송 변호사는 생성되는 질서를 만들려는 인물의 상징이다. 생성 중인 질서의 형성이 곤란하다고 느끼는 관객들은 객석에서 영화에 공감하며, 영화의 요소가 되어 함께 격분한다. 한마디로 영화 <변호인>은 영화를 본 직후보다 생각할수록 더 좋은 작품이다. 관객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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