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6 18:44
수정 : 2014.03.1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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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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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몇 년이 지나 학교에서 멀지 않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침 봄이었다. 동갑인 아이들이 새 옷을 입고 대학 캠퍼스를 서성일 때였다. 나는 고등학교 중퇴, 시급 1400원짜리 편의점 알바였다. 어느 날 아침, 편의점에 손님이 끊겨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나는 기계적으로 인사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낯이 익은 남자가 정면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니던 고등학교의 체육 선생이었다. 그는 복권을 사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별말을 나누지 않았다. 다만 그때 그가 나를 바라보던 표정이, 무너져 내린 빌딩을 보는 듯한 그 시선이 아직까지도 또렷하다.
그 뒤로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종종 누군가 그날의 체육 선생 같은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그것 때문에 화를 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제는 그런 기억들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이후의 내 삶이 그 모멸적인 시선에서 멀어지려고 애를 쓴 것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실속은 없지만 남들 눈에 부끄럽지 않을 것들을 쌓으려고 노력해온 것뿐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 그날의 체육 선생 같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두려웠다. 내가 쌓아올린 것의 많은 부분이 그저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수록 더 열심히 쌓았다. 그럴수록 더 두려웠다. 종종 궁금해졌다. 애써 쌓아 놓은 이 모래성을 파도가 집어삼키면 어쩌나?
확실한 것은, 파도는 결국 온다는 것이다.
내가 위에 늘어놓은 이야기는 약간 극적인 구석은 있지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모멸감은 일상적인 감정이다. 그것과 관련된 기억 하나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로 모멸감을 주고받으며, 더 이상 모멸받지 않는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 애를 쓴다. 모멸받지 않으려고 공부하고, 성형수술을 받고, 대학에 간다. 모멸당하지 않으려고 연애를 하고, 돈을 쓴다. 다들 그게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피곤해하고, 치를 떨지만 도무지 그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무엇만큼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 내에서의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느니 자살을 해버린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모멸 없는 삶이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듯하다. 아니 모멸감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 되어버렸다.
가끔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뭔지 궁금하다. 확실한 사실은 타인의 모멸에 반응하는 식으로만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모멸을 통해서만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자나 독설을 늘어놓는 힐링 멘토들처럼, 타인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결국 타인을 전혀 믿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런 식으로 쌓아올려진 것이 위태로운 모래성이 아닐 리가 없다. 거리에 늘어선 신상품과 신식 건물들이,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의 표정이 그것을 증언한다. 그리고 파도는 밀려온다.
우리는 어쩌다가 나와 너, 우리를 믿지 못하게 되어버린 걸까.
김사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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