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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6 19:17 수정 : 2014.04.06 19:17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최근 한 취업포털의 설문조사 결과, 175개사 인사 담당자들은 “구직자 스펙 대부분 쓸데없다”고 대답했다. 불필요한 스펙 1위는 석·박사 학위로, 국토순례 등 극기 경험, 회계사 등 고급 자격증, 한자 자격증, 아르바이트, 창업, 학벌, 제2외국어, 동아리, 봉사활동이 뒤를 이었다. 인사 담당자들은 직무와 무관, 획일화, 일정 점수에 도달하지 못함, 과도한 기준 초과, 자격 조건에 없음 등 가지가지의 이유로 감점 등 불이익을 줬다고 한다. 근거는 이렇다. ‘목표가 불명확할 것 같아서’, ‘실무 능력은 갖추지 못한 것 같아서’, ‘근성이 없을 것 같아서’.

저 말대로라면 학점과 영어 점수만 제대로 된 스펙인데, 우리는 현실에서 그 두 가지 능력만 가지고 있을 20대가 얼마나 ‘일을 하기 적절하지 않은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다른 기준, 또는 상향 평준화된 스펙 외의 것을 요구하고, 그 수요에 부응해 화려한 스펙을 갖춘 취업준비생들을 인사 담당자들은 다시 외면하는 것이다. 인사 담당자의 말을 바꿔보자. 이들이 원하는 인재란 ‘학점과 영어 점수로 인내와 성실성 보증은 기본,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안정 지향이라는 목표 추구에 조미료 같은 창의성을 곁들이되, 당장 필요한 실무 능력을 갖춘 근성 있는 구직자’다.

청년 세대의 높은 실업률이 장기화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이 특정 세대에게 더욱 제한적으로 공급된 결과, 세대 내 제로섬 게임이 벌어진다. 누군가가 얻는다면 누군가가 잃는다. 된장녀라는 여성상을 전제로 가사를 쓴 브로(Bro)의 ‘그런 남자’와 같은 노래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젊은 남성 일반의 자조적 열패감’에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스스로 불쌍한 세대’다. 이러한 세태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발현된다. 한편 트위터에서는 ‘조리돌림 보존의 법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특정 취향을 공유하는 트위터 유저들이 ‘깔 거리’가 없으면 찾아내서라도 깐다는 뜻이다.

교육 정책이 바뀔 때마다 마치 교육 정책에 희생되는 세대가 나타나듯, 지금의 청년층은 국가와 기업의 인재 실험의 희생양이 되어간다. 스타트업 선발, 국가고시, 열정노동을 요구하는 산업 분야, 인력 재생산이 되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진보판, 일반 기업까지 모두 마찬가지의 고민을 안고 있다. ‘사람은 뽑으라는데, 우리가 원하는 애들은 없다.’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규모를 떠나 모든 기업과 분야들이 예전처럼 신입을 교육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즉 뽑히는 이는 선발을 기다리지만, 뽑는 쪽은 이들이 당장 필요하지 않다. 영리한 이들은 열정노동을 보증수표 삼아 등판에 몸을 던져야 한다. 제로섬 게임에서 살아남은 소수도 힘들다. 스펙은 실상 업무 전문성과 전혀 상관이 없고, 남는 잉여력은 갈 곳을 찾지 못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믿고 자란 세대다. 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일을 위해 무엇까지 감수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이들은 없다. 그 결과, 좋아했던 일이 맞는지 늘 자문한다. 20대에는 성과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애호를 다루는 방식을 발견하고, 관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취업이 되지 않더라도 그 시간에 ‘경험을 인큐베이팅’하기 위해 잡지를 만들거나 일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친구들이 경력을 인정받는 이유다. 쉽지 않은 시대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런 청년 세대에게 “네가 그 일을 그만큼 좋아하지 않거나, 그만큼 진정성이 없다”고 훈계하지 않길 바란다. 사회에 대한 불안이 향할 곳이 어디겠는가.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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