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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7 18:43 수정 : 2014.04.27 18:43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오늘날 언론이 가장 손쉽게 만인의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많은 인명이 걸린 재난의 순간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가장 손쉽게 품격의 바닥을 드러내며 싸잡아 욕을 먹게 되는 계기 또한 바로 그 순간이다. 예를 들어 여객선 침몰사고가 벌어져 많은 이들의 희생이 우려되고 끈질긴 구조 노력이 벌어지고 있을 때, 언론의 실시간 보도는 어떤 식이어야 하는가. 모범답안은 너무나 쉽다. 확인된 생존자 및 사망자들의 명단을 수시로 갱신하고, 병원 안내를 내보낸다. 수온과 조류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구조 가능성을 계속 타진한다. 현장에 구조인원 이외의 호사가들이 몰리지 않도록 종용한다. 반면 사고 원인 진단이나 개인 사연 보도는 당장의 속보가 필요한 것이 아닌 만큼 확인에 재확인을 거친 뒤에야 여러 제한 조건을 달고 천천히 보낸다.

물론 재난 상황에서 보도의 품격은 드물고, 관심을 수탈하기 위한 천박한 ‘선정성의 5종 세트’인 비극의 구경거리화, 금전만능주의, 개인의 악마화, 뜬소문 증폭, 그리고 낚시질은 지나치게 흔하다. 막 살아나온 학생에게 친구의 사망을 아느냐 질문하는 인터뷰, 한창 생사가 오가는 초기에 닥치고 보험금부터 논하는 기사, 참사를 만든 여러 조건보다는 젖은 지폐 말리는 장면까지 묘사해가며 선장 개인을 악마로 만들어내는 기사, 출처도 확인도 생략하고 전원 무사 구조 오보를 확산시켰던 여러 매체들, 그리고 “네티즌 반응”을 구실로 키워드 낚시질을 하던 습관을 이런 순간에조차 그만두지 못하는 진상들이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을 개탄하는 많은 이들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재난 보도의 준칙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더욱 요구되는 재난이라는 상황에서, 품격 있는 보도가 이뤄지도록 기준이 서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규범의 부재가 아니라, 인센티브의 부재다. 원래 기자협회 차원의 재난보도준칙은 실제로 제정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기는 했지만,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당시 비슷한 문제의식 속에서 추진되어 초안 내용까지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제정된다 해도, 지켜질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정식 제정되어 있는 자살보도 윤리강령이나 성폭력범죄 보도 세부 권고기준은 과연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쉽다. 지키지 않았을 경우 당하는 불이익이 없거나 미미하다면, 딱히 지켜야할 동기가 없다. 지키지 않는다고 막대한 벌금을 무는 것은 물론 아니고, 향후 취재 작업 제한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기자협회에서 영구 제명되어 평생 불명예를 지는 것도 아닌데 왜 지키겠는가.

천박한 보도를 해서 얻는 즉각적 관심과 클릭수가 주는 금전적 이득은 뚜렷하고, 손해는 잠깐 일부 사람들에게 욕 좀 먹는 것 말고는 없다. 반면 선정성을 절제하면 소수의 지지자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대체로는 관심 경쟁에서 밀려날 따름이다. 규범을 어겨야 유리한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좋은 기준이라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규범에 어긋난 선정성을 남발하는 언론사에 대해, 포털이 기사 노출에 심각한 불이익을 주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다. 크고 작은 언론 단체에서 각종 사업 지원 자격을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 독자들이 나서서 불명예의 전당을 꾸리는 것도 해당 매체의 광고주들에게 일정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다들 각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서 무엇이든 해야 선정성의 방향으로 왜곡된 인센티브 체계가 겨우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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