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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1 19:12 수정 : 2014.05.11 19:12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정부는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숨진 이아무개(19), 방아무개(20)씨를 선원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선원 인정 여부는 정확한 근로계약 내용 및 담당업무를 고려해 판단해야 할 사항입니다.”

지난 5월2일 해양수산부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논란이 되자 해양수산부는 ‘신중하게 접근해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친구의 소개로 최저임금도 약속받지 못한 채 72시간짜리 알바 항해를 나섰던 두 청년은 그렇게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탑승 사실이 밝혀진 아르바이트생은 지금까지 모두 6명이다. 5명이 20대로, 그중 4명은 친구 사이였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등록금을 벌기 위해 단기 알바를 선택한 20대 아르바이트생 5명 가운데 3명이 죽었다. 희생자 가족 중 한 분은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린 친구들의 희생이 워낙 크지만, 다 회사의 비윤리적 행태로 인한 억울한 희생자”라며 크게 아쉬워했다.

결국 아르바이트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비 지급은 인천시가 보증했다. 청해진해운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장례비 지급 불가 방침’을 구두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정부에 보상을 요구할 계획이지만, 거절되면 시 예산으로 처리하겠다 밝혔다. 20대 승무원이었던 박지영(22)씨는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양보하다 희생됐다. 커플 승무원으로 알려진 정현선(28), 김기웅(28)씨 커플의 의사자(義死者) 추진은 목격자가 없어 난관에 부딪친 상태다.

사고가 일어난 지 26일째.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모두가 무력함을 실감할 뿐이다. 국가의 안전 시스템은 철저히 붕괴되었으며, 정치권은 아무런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당장 일선에서 수사를 하고 구조를 하고 있을 이들의 고생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사회가 이렇다 보니 언론을 비롯해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보고를 불신하게 된다. 곳곳에서 신음소리, 낮은 탄식이 쏟아져 나오는데 ‘합당한 애도’는 허락되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 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여론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러니까 어떤 언어는 현실 사회에서 전달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새로운 진보의 언어, 희망의 언어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닥친 오늘의 디스토피아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나이 지긋한 선장과 항해사, 이들의 지시와 보고에 따라 움직인 선박직 승무원은 준비한 것처럼 제대로 빠져나갔다. 세월호 승무원은 총 33명으로, 19명이 비정규직이었다. 탑승자 476명 가운데 단원고 학생은 325명으로 이 중 구조된 학생은 75명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세대에게 위기가 닥쳐오면 ‘스스로의 생존력으로 살아남아라’라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세상의 비밀을 알려주듯 ‘막판에는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는 말도 덧붙여야 한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목숨을 위해 살려 한다고, 그러니까 사회에서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살아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특정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이제는 연장자들이 합당한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거대한 불신사회가 온 것은 아닐까.

부족함에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이렇게라도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자격도 되지 않는데 분투하자던 말들을 이제는 또 다른 삶으로 살아가고 싶다. 애도하기 위해 오늘도 삶을 살아갈 많은 이들의 남은 길들을 정말이지 손을 잡고 함께 걷자고, 이대로 끌어안고 울 수만은 없다고. 언젠가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는 사실을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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