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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1 18:50 수정 : 2015.01.11 18:50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인간을 잡아먹는다.” 근대 초기 영국의 지주들은 곡물보다 비싸게 팔리는 양모를 얻기 위해 앞다투어 경지를 목장으로 바꾸었다. 양 때문에 땅을 빼앗기고 굶어 죽게 생긴 소작농들은 도시로 가 저임금 노동자가 됐다. 국가는 저렴한 노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거지면허’까지 만들었다. 늙고 병들어 노동할 수 없다는 면허를 가진 이만이 구걸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가혹한 채찍질 후 작업장으로 보내졌다.

한국도 마찬가지. 저곡가 정책 등으로 고향을 떠난 농민은 도시로 가 값싼 돈에 노동력을 내놓았다. 커피 값도 못 되는 돈을 일당이라 받았고, 이에 저항한 재단사 전태일이 몸에 불을 붙였다. 역사를 보면, 저렴한 노동력은 더 많은 돈을 쫓는 자본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제도, 그리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이는 현재에도 적용된다. 구로공단에서 15년을 일한 노동자는 새 직장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공단 내 직원을 뽑는 회사가 없었다. 그래도 공장은 돌아갔다. 파견업체를 통해 사람을 들이고 있었다.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고는 일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이 여성은 현재, 1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으며 파견노동자로 일한다. 손톱이 빠지도록 핸드폰 케이스를 조립한다. 실업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게 최선이다.

파견노동이 등장한 것은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시절. 해고도, 민영화도, 파견도, 비정규직도 기업이 살아야 한다며 용인됐다. 당시 건설업도 불황을 피해가지 못했고, 많은 건설사 직원들이 직장을 잃었다. 한 타워크레인 기사는 퇴직을 앞두고 회사로부터 퇴직금 대신 타워크레인을 싸게 구매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소유한 크레인을 건설현장에 임대하는 업체 사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업자가 될 처지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사장님 소리 들으며 떵떵거렸냐고? 세상에 나오니 자신처럼 타워크레인을 가지고 있는 소사장들이 넘쳐나더라. 타워크레인 등 중장비를 직접 소유 관리해야 하는 종합건설사의 요건이 완화되자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장비를 밖으로 떠넘겼다. 몇 년 후 중장비를 산 임대업자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덤핑도 불사했다. 크레인 임대 가격이, 덩달아 타워크레인 기사의 임금도 10년째 변화가 없다. 건설회사는? 가격경쟁으로 저렴해진 장비를 골라 쓰고, 싸게 사람을 부린다. 누군가는 분명 이득을 얻는다.

며칠 전 통신기사들이 에스케이(SK) 본사를 점거한 일이 있다. 그 결과 200여명이 연행되고, 그중 일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런 피해를 감수하며 에스케이브로드밴드 통신기사들이 요구한 것은 하나다. 원청이 직접 나와 문제를 해결하라. 그러나 에스케이는 자신은 사용주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협력업체인 행복센터의 문제이며, 심지어 저들은 센터 정직원도 아닌 센터와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주(특수고용직)라고 주장한다. 에스케이 유니폼을 입고 에스케이 통신을 설치하지만 사용주는 없다. 책임질 사용주가 없으니 문제가 해결되나. 파업만 두 달이 되어간다. 간접고용이란 그토록 편리하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돈은 내 주머니로 들어온다.

희정 기록노동자
지난달 29일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기간제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에 더해 파견노동 사용이 가능한 업종의 확대까지 담고 있다. 실현된다면, 참으로 그 누군가에게 이익이겠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아닌 우리는, 잡아먹힐 것만 같다.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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