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8 18:49
수정 : 2015.03.08 18:49
최저임금 인상 캠페인을 할 때였다. 누군가 내가 든 피켓을 툭툭 쳤다. 고개를 드니 웬 남자였다. 그는 요새 장사가 얼마나 안 되는지 아느냐고, 시급까지 올리라는 건 우리보고 죽으라는 이야기라고, 나를 한참이나 노려봤다.
기분이 나빴냐고? 그럴 리가. 사람 쓰면 돈 든다고 몸소 짐을 나르는 소사장 아버지와 가짜 사장 강요받는 학습지교사 어머니를 두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유독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는 한국에서, 작은 사장님들의 고통은 가까이 있다.
나만 그 고통을 아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 설문조사에 참여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한 항목에서 망설였다. 그들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을 받고 있음에도 “최저임금이 얼마여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멈칫했다. 받는 입장에서야 ‘무조건 많이’를 외칠 것 같지만, 우습게도 6천원대 희망시급에 동그라미 치는 것도 망설인다. 친구 옆구리를 찌르며 ‘회사도 어렵대’ 한다. 자신의 시급보다 비싼 ‘커피님’을 손님에게 건네면서도 사장님 걱정을 한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자살을 한 점주의 이야기는 한때 세상을 울렸다. 그가 수수료, 로열티로 기업에 바친 돈은 얼마인가. 화이트데이 때는 초콜릿을,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을 강매당한다. 알바에게 나가는 돈을 아끼려고 자신이 24시간 편의점에 갇혀 지냈다.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사장님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나도 12시간 일해 월 200만원도 못 가져간다. 법대로 다 줄 거면 차라리 내가 ‘노가다’를 뛰고 만다”고 하던 사장님들은 정말 그렇게 됐다. 직원에게 법대로 돈을 다 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장사가 잘돼도 문제다. 장사가 잘되면 건물에서 쫓겨나는 일도 빈번. 그 자리에 건물주 아들 가게가 들어온단다.
그래도 돈 ‘뜯어가는’ 기업이나 건물주에게는 한마디 하지 못한다. 만만한 것은 최저임금 안 줘도 노동부 찾아갈 줄 모르는 알바다. ‘을’ 사장님은 자신의 고용인을 ‘병’, ‘정’으로 만든다. 그래야 숨 좀 쉬고 살 수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쉴 수 있을까. 동네상권을 파고드는 대기업의 슈퍼마켓, 빵집, 약국, 분식집을 이길 수 있을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기업은 이미 농업 분야까지 진출했다.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작은 사장님의 눈을 멀게 한 까닭이다. ‘길가에 노점을 세우고 독점기업과 경쟁할 자유’가.
다행히 우리에게는 다른 자유가 있다. 살길을 선택할 자유. 어차피 최저임금은 떨어질 곳이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조차 “1년 내내 일해 받는 임금 1600만원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는가?”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말했다. 장기침체 불황. 이대로 가면 같이 죽으니, 가진 이들이 좀더 내놓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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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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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진 것 없는 작은 사장님들은 살길이 무엇일까. 남의 숨으로 연명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어차피 산소통 들고 덤비는, 금수저 입에 물고 태어난 군단을 이기지 못한다. 그 군단에 ‘병’, ‘정’이 맞서겠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을 선포했다. 한데 모인 병, 정은 의외로 힘이 세다. 그들이 멈추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이는 수천수만의 병, 정이 만들어내는 수천수만의 이익을 잃는 기업들이다. 믿고 지켜보자. 알바몬 혜리에게 그만 화를 내자.
고용인이 최저임금 1만원 피켓을 드는 건,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같이 살려는 것뿐이다.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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