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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26 21:32 수정 : 2015.07.27 01:30

나는 용역경비가 미웠다. 부당해고, 임금체불, 노동조합 탄압 등 여러 이유로 내쳐진 노동자들은 종종 회사로 항의를 하러 간다. 회사 건물을 지키고 노동자를 막는 것은 경비용역. 이들은 회사가 고용한 보안요원들이다. 떡 벌어진 어깨에 양복까지 갖춰 입었다.

노동자들과 경비용역의 흔한 대화. “너도 비정규직이 될 수도, 일하다 잘릴 수도 있어.” “그런 꼴 당할 만한 사람이나 당하는 거지.” 그들은 조소를 숨기지 않는다. 그들이 싫었다. ㅎ이 해맑게 웃으며 용역이 되고 싶다고 하기 전까진 그랬다.

ㅎ의 부모는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ㅎ도 집에 잘 들어가지 않게 됐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사장들은 약속한 듯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래도 또래들은 사장이 되고 싶어했다. 공부로는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고 싶진 않다. 사장을 꿈꿨다. 자본금 대줄 곳은 당연히 없다. ㅎ은 헛된 사장 꿈을 꾸지 않았다. 몸 좋은 선배들은 양복을 입고 일당을 거하게 받는 일을 했다. 그런 선배들처럼 용역이 되고 싶었다. 사장보다는 현실적인 꿈이다.

몇 년 후 회사 건물을 지키려 노동자들을 밀치는 ㅎ을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반갑겠다. 거리의 쪽잠, 욕먹으며 받는 4, 5천원 시급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일 테다. 성실한 노동이라는 대안은 말하지도, 말할 필요도 없었다. ㅎ이 잠시 경험한 노동자라는 건 참 보잘것없었다. 티브이든 어디든 간접 경험한 노동자도 좋을 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용역경비 역시 임금을 받는 노동인지라,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노동시장의 영향을 받았다. 용역경비 일도 일당직, 파견직이 만연했다. 커다란 건물을 지키느라 며칠째 땡볕에 선 용역경비들은 불만을 중얼거렸다. 약속한 건 3일인데 왜 일주일이 가도록 교체를 안 해주냐. 잘 차려입은 양복에서 땀내가 났다.

그래도 양복 입는 삶을 포기 못한다.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몰던 중년 남자를 보며 눈살 찌푸리던 ㄱ을 떠올렸다. ‘저 나이 되도록 저러고 다니면 차라리 죽어버릴 거예요.’ 얼마 전까지 배달 알바를 한 그였다. 20살 나이. 오토바이를 타는 건 철없는 짓이라고 했다. 이제는 차를 탈 거라 했다. 차를 사려면 돈이 필요했다. 차를 사면 사업을 할 거라 했다. 역시 돈이 필요했다. ㄱ은 핸드폰 대리점에서 돈을 벌었다. 굳이 고용형태를 말하자면 특수고용직쯤 될까. 대리점에 묶여 있지만 월급은 핸드폰을 파는 만큼 받았다.

후에 ㄱ의 소식을 들었다. 다시 오토바이 배달을 한다고 했다. 사정이 있었다. 인생에서 사고는 늘 일어난다. 그가 경멸했던, 나이 든 퀵서비스 기사 중 일부는 인생이 준 사고로 이곳에 흘러왔다. 그중에는 사장도 정규직 노동자도 있었다. 사고는 쉽게 난다. 정리해고 가능성과 청년 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인데, 사회복지 지출은 꼴찌를 다툰다. 공공병원 비율은 6%도 되지 않는다. 질병 하나가 가족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고가 된다. 사고는 빈곤으로 이어지고, 빈곤은 우리를 노동에 묶어 놓는다.

희정 기록노동자
결국 돌아와 두 손으로 노동을 한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노동자로의 삶은 시작이자 끝이다. 그렇기에 부잣집 건물을 지키는 용역경비의 조소가 마음 아프다. 내 의지가 아닌 빈곤도 무거운데, 거기에 더해 동족에 대한 조소까지 이고 가는 일이 버겁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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