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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5 18:51 수정 : 2015.10.25 18:51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회사원이 회사로 출근한다. 최근 본 영화의 시작이다. 약간 스포일러를 하자면, 김과장은 해고됐다. 해고를 당한 김과장은 미쳐버렸고 가족을 죽이고 자신마저 버린다. 그런데 실직이 살인을 할 만한 이유인가. 아내와 노모, 생때같은 자식의 머리를 두 동강 낼 만한? 이상하리만치, 관객들도 영화 속 인물들도 김과장의 행위를 잔혹하다 여겨도 과도하다 여기진 않는다.

사실 안다. 해고가 주는 공포와 비참함이 뭔지. 달마다 들어오는 수입이 생기고 나서야 그 돈이 끊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잘려도 나의 사회적 가치를 더듬어보게 되는데 나름 평생직장이라 여긴 곳에서 해고라니. 그래서 현실은 종종 우리에게 자기 스스로를 살해한 실직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과장의 해고는 그냥 해고가 아니기도 하다. 경쟁은 끝이 없고 성과는 내보이고 책임은 피해가야 하는 회사생활이 그를 좀먹어 갔다. 해고통지를 받는 순간, 간신히 붙잡고 있던 한 가닥 줄이 끊겼을 게다. 해고란, 아니 해고까지 오는 과정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그런데 김과장이 해고된 까닭은 뭘까. 영화는 해고의 사유와 형태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진 않는다. 추측할 순 있다. 눈치도 없고 정치질도 못한다. 그저 묵묵히 일만 한, 그래서 무능하다는 평판을 달고 살아온 김과장. 김과장은 경쟁에서 낙오됐다. 그러나 회사는 무능을 사유로 김과장을 해고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현행법에 저촉된다. 현재의 근로기준법은 성과 부진을 사유로 하는 해고에 관대하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다들 잘린다. 대기업 사원 평균 근속연수가 11.7년이다(전체 노동자 근속연수는 5.6년). 10년 채우기가 쉽지 않다. 김과장 같은 경우, 프로젝트 부진의 책임을 안고 사직을 권고받았을지 모른다. 회사로부터 그만둘 것을 권고받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버틸 수 있는 ‘멘탈’이면 그 전에 남의 머리 밟고 올라섰을 것이다. 사실 권고사직까지 필요 없다. 저성과자로 낙인찍고 재교육시키고. 이쯤이면 알아서 나간다.

혹 회사가 일정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정식해고를 시킬 수도 있다. 취업규칙, 인사규정 등에 저성과자 해고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경우에 그런다. 그래서 해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이가 1만여명이다. 만명의 사람이 자신의 해고를 억울해하거나, 법으로 따져보고자 한다.

김과장은 이 중 어디에 속했을까. 무엇이 됐든 회사는 그를 버렸고, 그는 자신을 버렸다. 잘린다는 것은 그만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요새 해고의 요건을 한층 완화하겠다고 한다. 업무부진, 저성과를 정당한 해고사유로 인정하는 정부지침과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는 이를 ‘공정해고’라 부른다. 금수저와 흙수저가 반상의 차이처럼 버젓이 있고, 열심히 일해도 처세와 연줄에 밀리는 사회에서 김과장과 같은 평범한 이들은 공정함을 자신이 잘릴 때나 겪을 수 있다.

희정 기록노동자
여기에 곁가지로, 싸게 굴릴 수 있는 인턴 사용 여지는 더 많아지고, 기간제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위해 채워야 할 기간은 2년 더 연장된다. 이것들이 정부의 노동개혁이자, 어려운 말로 고용유연화란다. 고용이 유연화돼야 기업 경영이 자유로워지고 경기도 살아난다? 모를 소리다. 내가 알겠는 것은 <미생>의 명대사도 한물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아니, 이제 회사 안도 지옥이다.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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