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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22 18:49 수정 : 2015.11.22 18:49

노동개혁을 요구하는 청년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 도심에 10만명이 모이고 종로 거리가 캡사이신 섞인 물대포로 하얗게 변한 날, 이틀 뒤였다. 민중총궐기라는 그날의 집회가 열린 주요한 이유에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개혁’이 있었다.

청년들은 참신하게도 기업을 동화 속 나그네로 비유했다. 기업이 더워 스스로 코트를 벗게 해야지, 바람을 몰아쳐 나그네처럼 옷을 여미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바람이란 노동개혁을 반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걸까. 대기업 노조, 민주노총, 그리고 이틀 전 도심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들일지도. 어떤 사설은 대놓고 말했다. ‘너무 과도하게 보장받고 있는 정규직들.’

저 말이 솔깃하게 들리는 건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때문이다. 기자회견을 한 청년들도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를 요구했다. 임금 차이를 한눈에 보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월급을 1000원이라고 하자. 정규직이 1000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는 평균 540원을 받는다. 청년과 비정규직은 밥그릇을 긁고 있는데, 대기업 정규직은 고봉밥을 먹는 형국이다.

그러니 이들의 밥을 퍼내 청년고용을 한다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많은 청년들이 찬성을 보낸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듯 임금피크제는 청년고용과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강제성도 없고, 규모 있는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정년까지 버틴,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극소수다. 이들 월급 줄인다고 30만, 18만개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질 리 없다. 청년들도 안다. 그럼에도 저들은 뭘 좀 내놓아야 할 것 같다. 누구는 일이 없어 허덕이는데 저들은 너무 많은 것을 독식해오지 않았는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1000원 월급 계산을 다시 해보자. 독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들이 있어서다.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을 1000원이라 했을 때 3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월급은 4만2600원이다. 중소기업까지 더해 임원 월급을 평균 내면 6900원. 덧붙여, 국회의원은 6450원을 받는다.

정규직 노동자의 밥이 고봉밥이라면, 저들의 밥은? 밥에 비할 데가 아니다. 양반님들이다. 그럼에도 저들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에게 내놓으라 한다. 원래 멀리서 흰쌀 먹는 양반보다 내 옆에서 보리밥 고봉으로 먹는 쇠돌이가 눈에 더 들어오는 법이다. 심지어 옆 사람 굶는 건 생각 안 하고 제 밥그릇만 보는 놈이라면 응징의 욕구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 양반님 밥그릇보다는 쇠돌이 그릇에서 밥을 퍼오는 일이 더 쉽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기업은 길 가는 나그네가 아니다. 양반님들이 운영하는 것이 기업이다. 기업은 우리 밥줄을 쥐고 있다. 쇠돌이에게 빼앗은 몇 숟가락 밥을 들이밀며 우리를 경쟁시킬 수 있다. 동날 때까지 밥은 이 그릇 저 그릇을 옮겨 다니고, 우리는 그 밥을 쫓아 서로를 미워하며 죽도록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부를 하든 열심히 일하든 양반님 눈에 든다면 당장은 남들보다 배부를 수 있겠다. 그러고 평생을 사는 거다. 고단한 인생이다.

희정 기록노동자
기업이 나그네가 아니듯, 그날의 바람은 나그네를 움츠리게 하는 바람이 아니었다. 우리 밥을 빼앗지 말라는, 밥을 나누자는 외침이었다. 그날 밥쌀을 만드는 농민 한 분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 집회에 내건 또 하나의 요구는 ‘밥쌀 수입 저지’였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빈다.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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