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17 19:23
수정 : 2016.01.17 19:23
“못 간다고 전해라” 노인들의 노래가 흥겹다. 노인복지회관에서 들리는 소리다. 노래교실이라도 여는지, 작년 이맘때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한창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들이 부럽다. 나이 들어 공원에서 장기판이라도 펼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늙을수록 돈이 필요하다. 폐지를 줍는 대신 노래를 부르는 노인들은 어쩌면 혜택받은 부류다. 나도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노년 생각에 등골이 싸하다.
서울시민 10명 중 4명은 노후 대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안 하는 거냐. 못 하는 거지.”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처럼, 당장의 삶도 팍팍하다. 작년 한해 가계부채 1200여조원, 가계 실질소득 증가율 0%. 노후자금? 턱도 없다. 그런 불안을 아는 건지, 정부와 기업은 방안을 쏟아낸다. 제2의 인생이라며 노년을 언급한 팸플릿들을 보면 공통되게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퇴직연금. 용돈연금이라 불리는 국민연금 위기 속에 정부는 대안이라며 사적 연금을 활성화하는 조처들을 취했다.
퇴직금은 퇴직연금제도로 전환됐다. 올해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의무 시행, 2022년에는 전 사업장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특히 활성화하고자 하는 건은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 노동자가 받을 퇴직급여가 투자실적에 따라 변동되는 제도다. 위험자산에 투자가 가능하고 그만큼 성과도 기대할 수 있는 연금인데, 위험도 크다. 확정급여형(DB형)과 달리 손해에 따라서는 퇴직금 원금조차 건질 수 없다.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퇴직연금 한도를 기존 40%에서 70%까지 늘렸다. 그뿐 아니다. 입 모아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한 퇴직금 삭감 문제를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으로 전환해 풀라고 말한다. 임금이 깎여 퇴직금도 줄었으니, 차라리 그 돈으로 과감한 투자를 하라는 소리다.
물론 투자에 따른 손실 책임은 연금수령자 자신이 진다. 이런 위험에 대해 금융 인사들은 과도한 기우라 치부하거나, 꼼꼼하게 알아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내민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30대 기업마저 70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시장에 풀지 않고 보따리에 쟁여놓는 상황이다. 저성장 시대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래서 정부는 내내 떠들지 않았는가. 움츠린 기업이 투자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게 임금-고용 등 노동의 권리를 희생하라고. 이를 강요할 만큼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서민들의 거의 유일한 노후자금은 시장에 적극적으로 풀라고 한다. 요사이 주택담보 대출마저 연금으로 전환하겠다며 열을 올린다.
퇴직연금은 현재 적립금 107조원, 2020년에는 350조원까지 점칠 수 있는 막대한 자본이다. 누군가는 “자산운영사들의 마지막 돈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잃어도 금융기업 입장에서는 크게 타격 입지 않을, 서민들 쌈짓돈이다. 2008년 장기불황을 알린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 방송국 카메라는 짐을 챙겨 본사를 줄지어 나오는 금융기업 넥타이 부대를 비췄다. 그러나 주택, 퇴직금 등 미래라 불릴 만한 것들을 한순간 잃어버린 수많은 투자자, 그러니까 노동자이자 서민인 이들은 그들처럼 우아할 수 없었다. 자살률이 급등했다.
|
희정 기록노동자
|
우리의 노후를 보장해야 할 국가가 판매직원이라도 된 듯 친절히 사적 연금, 금융상품을 안내한다. 내 노후를 누군가 군침 삼키며 지켜보고 있다. 내 미래가 불안한 것은 기분 탓이 아닐 게다.
희정 기록노동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