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14 18:54
수정 : 2016.02.14 18:54
바야흐로 ‘남성 투톱’ 영화 전성시대다. <친구>에서 <검사외전>까지, 육탄전을 불사하며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이는 남성서사는 오늘날 대중영화의 독보적 장르가 됐다. 이는 여배우들의 ‘고용불안’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야기했으나, ‘몸 사리지 않고 다양한 서사적 스펙트럼을 감당할 여배우가 없다’, ‘여성 관객들이 남성 배우를 선호한다’는 말들은 이런 현실을 손쉽게 정당화했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현실에서 전혀 가능하지 않은, ‘남성들만 존재하는 세계’에 매혹되고, 그것을 염원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남성 육체의 아름다움을 전시하며, 이들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를 그리는 남성영화의 계보는 오래된 것이다. 2000년대 초, 청춘영화나 조폭영화는 모두 남성연대에 기반을 둔 충성과 배신, 복수의 드라마였다. 이 서사들은 대개 남성 인물이 이성애 관계를 포기하고 (남성)친구나 ‘형님’과의 의리를 택하는 것으로 끝났다. 여성은 남성세계의 질서와 유대를 굳히는 데 쓰이는 교환 대상, 일종의 ‘트로피 와이프’였던 셈이다.
한편, 2000년대 중반 남성서사는 여성 살인 사건을 다룬 범죄스릴러와 특별히 결합하면서 흥행성과 사회성을 겸비한, 한국 대중영화의 주요 서사로 자리 잡았다. 이때 역시 여성 인물은 남성 인물들 간의 협력과 갈등을 촉발하기 위한 ‘희생자’(시체)로만 존재했다. 여성 관객의 강간 공포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죽인 자’만을 강렬하게 묘사할 뿐 ‘피해 여성’은 체계적으로 망각한다는 게 이 장르의 특징이었다.
그런데 범죄액션과 결합한 최근의 남성서사는 범죄스릴러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좀 다르다. 기존 범죄스릴러에서 ‘(추격에 실패하는) 형사-범인’ 설정이 ‘무능하고 부패한 공권력’의 유비이기를 소망했다면, 근래 남성 범죄액션은 그 골조를 차용하면서도 유별난 ‘대의명분’을 내걸지 않는다. 예컨대 <베테랑>이나 <검사외전>에서 ‘정의’ 혹은 ‘결백’을 위해 싸우는 형사·검사(공교롭게도 두 배역 다 배우 황정민이 맡았다)는 서사적으로 그리 옹호될 만한 인물은 아니다. 이들은 <살인의 추억><추격자>의 형사들처럼 진정성으로 무장한 정의의 화신이기는커녕,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온갖 폭력을 자행하는 반영웅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 껍질만 남은 남성연대에서 여성은 아예 ‘삭제’돼 있다. 바꿔 말하면, ‘유죄인 인간’과 ‘유죄인 조직’만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는, 아무런 가치나 이념도 지향하지 않는 ‘텅 빈 남성연대’ 그 자체가 바로 ‘장르’가 된다. 최근 범람하는 ‘남성 투톱 범죄액션’이란, 여성혐오시대에 접어들어, 이제 정당화의 시도조차 요하지 않을 만큼 자명한 것으로 승인된 동성사회성에 대한 남성들의 나르시시즘적 판타지, 그것의 장르적 구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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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진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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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여성이 삭제된 이 남성 판타지를 계속 봐야만 하나. <캐롤>이나 <바닷마을 다이어리>같은 여성영화의 흥행은 남성서사로 범벅된 스크린의 빈틈을 찾는 관객들의 갈망을 보여준다. “여성이 가장 큰 문화 소비자인데, 왜 여성 중심 영화가 수익을 만든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거죠?”라는 케이트 블란쳇의 물음은 오늘날 한국 영화계에도 유효하다. 지금이야말로 공허한 자기도취 없는 성숙한 시민-세계의 서사를 시도할 때 아닌가. 이제 전도연, 김혜수, 박소담 등 수많은 여배우들에게 제발 ‘다른’ 선택지를 주자. 물론 강동원에게도.
오혜진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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