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21 18:52
수정 : 2016.02.21 21:18
사람 잘 안 죽는다. 노동안전 활동가가 한 말이다. 작업환경 조사를 하러 가면 여기 있다간 제명에 못 살겠다 생각이 드는 작업장이 수두룩한데, 고작(?) 한두명 몸이 망가질 뿐이라는 게다. 사람 목숨이 그렇게 질기다.
사람 잘 안 죽는 데 일조하는 것은 질긴 명줄만이 아니다. 바늘구멍에 비유할 만한 낮은 산재승인율도, 병의 원인을 알 길 없게 하는 영세사업장의 높은 이직률도, 대기업 로고를 단 제품이 3차, 4차 다단계 하도급 업체에서 만들어지는 현실도, 의료시설이 특정 지역과 계층에 과집중되는 의료시스템도 한몫한다. 직업병으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어떤 의미론 ‘안전한 사회’다. 국가와 기업의 공이 컸다.
그런데 ‘빼박’ 죽음이 있다. 빼도 박도 못하고, 산재를 인정해야 하는 죽음. 높은 데서 떨어지고, 철물에 깔리고, 질식한다. 이런 경우 작업현장에서 시신으로 나오기 마련이라 산재사망으로 기록된다. 2년 전, 현대중공업 계열 사업장에선 이런 죽음들이 좀 많았다. 2주에 한명꼴로, 한달 반 사이 8명이 죽었다. 원인은 하나같이 우스웠다. 고공작업을 하는데 안전난간이 없었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구명장비가 없었다. 119 구조대를 부르는 것을 망설였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촉박한 수주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하청업체를 쪼고, 업체 소장은 하청작업자를 쪼아댔다. 안전매뉴얼은 지켜지지 않고 날림과 동시작업이 성행했다. 넘치는 사람 수만큼 보호구와 안전장비가 부족했다. 눈치껏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죽음이 멈췄다. 현대중공업으로선 한고비를 넘긴 거였다. 나 또한 한때의 악몽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악몽은 끝난 게 아니었다. 올해 울산 온산공단에 대규모 석유화학 복합시설이 지어진다. 건설공사가 시작됐고 죽음도 시작됐다. 3건의 사고, 2명 사망, 1명 중태. 단 한달 사이, 에쓰오일(S-Oil) 기업 공사현장에서만 일어난 일이다.
검찰과 노동부가 사건현장을 조사하러 온 날, 하도급 업체들은 휴업을 명받았다. 조용한 사고현장에서 무엇이 조사됐는지 알 길 없다. 언론사는 사망사건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보도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사람 죽는 건 흔한 일이다. 더 중대한 기사거리가 많았다. 2달 사이 8명의 사망자를 낸 기업이 흑자인지 적자인지, 주가에 어떤 영향을 줄지. 1달 사이 3건의 산재사고를 낸 기업의 공사가 몇 조 규모인지, 지역에 어떤 이익을 창출할지. 기업이 지역민과 떡국 나누기 봉사를 한 일까지, 보도할 것이 너무 많았다.
운이 좋으면 유가족들은 회사로부터 산재보상금에 위로금을 더해 받을 수 있다. 하루 세끼를 먹고 다달이 집세를 내야 하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1억과 2억의 차이는 엄청나다. 위로금은 입을 다물 것을 전제로 주어질 때가 많다. 이 또한 운 좋을 때 이야기다. 대기업 공사현장에서 시신이 되어 나가도, 죽은 자는 일용직 또는 하도급 업체 노동자일 뿐이다. 보통은 주는 대로 받는다. 안 주면 못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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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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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소리내지 않는다. 사람 잘 안 죽는 한국 사회에선 죽음도 조용하다. 조용한 죽음이 계속된다. 조용하니까 계속 죽인다. 이 고요한 평화 속에서 유일한 소음은, 일하는 이도 없는 공사현장 앞에서 산재사고를 규탄하던 노동조합·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뿐이었다. 이 또한 작고 짧았다.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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