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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0 22:23 수정 : 2016.03.20 22:26

여자화장실 칸에서 웬 남자가 나왔다. 멈칫했다. 복장을 보니 경비쯤 되어 보였다. 청소도구를 놓아두는 칸에서 나온 게였다. 안심하려다가 또다시 멈칫했다. 사람이 있었다. 청소도구 칸 열린 문 틈으로 장년의 여자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변기를 의자 삼아 청소도구들에 둘러싸여. 그 사이로 보이는 생활용품들. 아, 여기가 저 여자의 휴게공간이구나.

10년 만이었다, 화장실 칸 안에서 청소노동자를 본 것이. 우연히 들른 빌딩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있던 청소노동자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었고, 그사이 세상이 달라진 줄 알았다. 쥐가 나오고 비가 새던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공간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고, 대학을 중심으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도 생겨났다. 그래서 세상이 좀 좋아진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곳은 공공 역사와 대형 기업의 마트가 함께 자리한 건물의 화장실이었다. 대기업이라고 바랄 것 없고, 공공기관이라고 기대할 것 없다. 11개월짜리 계약직이 판을 치는 것이 정부 일자리다. 겨우 옷이나 갈아입게 만든 공간을 탈의실 겸 휴게실이라 두고는 고객휴게실을 이용하는 직원을 징계하겠다는 공지문을 당당히 붙인 대형서점. 실컷 캠페인을 했건만 어느덧 사라지거나 무용지물이 된 마트 계산대 노동자들의 의자. 나열하려면 끝도 없는 노동의 비루함. 그리고 작업자들이 물인지 알고 사용했다는 독성물질 메탄올.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던 28살의 청년이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양쪽 시력을 상실한 사건이 최근 알려졌다. 보안경도, 송기 마스크도 없었다. 찾아보니 중독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60~70년대에나 있을 일이라며 혀를 찼다.

70년대를 찾을 것 없다. 10년 뒤, 같은 소식을 듣지 않을 거라는 보장조차 없다. 그때도 여전히 피해자는 하청업체 파견노동자일 테고 보호구와 안전교육은 없을 테고, 아마 달라질 건 독성물질 이름 정도일 거다.

알파고와의 대국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두려운 상상을 심어준 미래. 그 미래에도 나이 든 여성 노동자가 화장실 한 칸에서 고단한 몸을 쉬고 있을까. 저렴하다는 이유로 독성물질이 쓰이고, 저렴한 노동력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눈이 멀지는 않을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다 인공지능 사장은 월급이라도 제 날짜에 딱딱 줄 거라는 인터넷상 우스개 농담을 떠올린다.

500년 전,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양’이었다. 산업혁명 초기 모직공업이 발달하자 영주들은 농토를 돈 되는 양으로 채웠다.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가 빈곤 노동자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다.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은’ 청년실업의 해결 방안으로 눈을 낮추고, 중동으로 가고, 부모의 임금을 줄여 그 돈 받아 취업하라 권하는 시대에도 우리를 잡아먹는 무언가가 있다. 미래에도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그게 양이 아니듯, 인공지능도 아니다.

분명한 건, 먹히든 버티든 어쩌면 조금은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들든 결국 그건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다. 다가올 어느 날 더 이상 화장실 칸 안쪽에서 청소노동자를 보지 않게 해줄 이도 사람이다. 노동을 비루하지 않게 만들 이도 사람, 아니 우리이다. 어차피 미래는 사람 하기 나름이다.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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