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1 19:12
수정 : 2016.05.01 19:12
가정의 달인 5월은 많은 이가 금전적,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워하는 시기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만으로도 만만치 않은데 온갖 결혼식마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사회생활 좀 하는’ 이라면 주말마다 예식장을 쏘다니기 일쑤이고 하루에 두 군데씩 도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래엔 평일 저녁 예식마저 늘어나는 통에 일주일에 사흘을 예식장 순례하느라 탈진할 지경이라고 푸념하는 지인도 있다. ‘5월은 푸르고 어린이는 자라지만’ 한국에서 성인으로 살아가는 이에겐 만만치 않은 달이다. 스승의날의 촌지 통제가 엄격해진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과도한 축의금 문화에 대한 반발심에 ‘나부터 받지 말자!’고 말하는 이도 여럿 있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외침이다. 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축의금은 마치 ‘펀드’와도 같다. 부모님이 수십 년간 납입한 돈의 만기가 결혼식 당일에 도래하는 상황이란 뜻이다. 그간 쏟아부은 돈이 만만치 않기에 “저흰 결혼식 간소하게 하겠습니다. 축의금도 안 받겠습니다”라고 말하기란 어렵다. 실제 간소하게 치르는 이가 있기는 하나 그 면면을 보면 대부분 상류층이다. 보통의 가정에서 그 펀드를 폭파하자고 건의하면 의절당할 위험이 있다.
요즘은 펀드의 수익률이 여러모로 위태위태하다. 결혼 시기도 늦어졌고 혼인율도 하락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현역일 때 결혼하는 게 효자다’라는 말을 나부터 수십 번은 족히 들었다. 엄연한 현실이기에 마냥 웃을 수 없는 농담이다. 하물며 아예 결혼을 하지 않으면 수익률은 마이너스 100%가 된다. 다시 말해 전액 증발.
‘축의금을 안 받는’ 데에는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건 결혼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님의 이해관계가 걸린 대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의금을 안 주는’ 것도 그럴까? 문자 그대로 모든 결혼식과 축의금을 거부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새로 설정되는 펀드의 규모를 우리 세대부터 줄여가자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 작금의 결혼식은 결혼하는 당사자와 그 지인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 행사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부모님이다. 부부는 들러리일 뿐이고 결혼은 행사의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은 부모님이 자신의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펀드의 만기일을 맞는 데 있다. 부부가, 특히 신랑이 하는 일은 누군지도 모르는 부모님의 지인에게 예의를 차려 웃으며 인사하는 게 전부다.
그렇다면 굳이 친구를 잔뜩 부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와봐야 대화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못한다. 딱 얼굴만 보는 게 고작이다. 그런 자리에 각자의 소중한 주말과 부담스러운 축의금을 요구할 이유는 없다. 나 역시 지인의 결혼식을 몇 차례 찾은 적 있으나 이 지면을 빌려 고해하건대 순수하게 축하하는 마음으로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늘 귀찮고 아까웠다. 그런 이유에서 ‘카톡’에 단체창을 열어 모바일 청첩장을 뿌린 이에게 ‘만 원짜리 다섯 장’을 사진으로 찍어 답해준 내 친구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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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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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펀드까지는 어쩔 수 없다. 그들 세대의 청산에는 협조하되 우리는 그 규모를 줄여가자는 제안을 해본다. 절친한 친구 몇 명 외에는 그냥 부르지 말자.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이자 미래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걸핏하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할 만큼 딱히 남는 것도 없으면서 서로의 진을 빼고 때로는 의마저 상하게 만드는 고약한 펀드다.
홍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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