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26 16:48
수정 : 2016.06.26 19:08
“일하다 보면 자주 배가 고팠다. 어느 날 상을 치우면서 손님이 남긴 튀김이나 초밥을 몰래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 뒤론 서빙하면서 자연스레 손님이 과연 초밥을 남기고 갈 것인가 확인하게 되었다.” ‘알바들의 1만 시간 단식’ 참가자 권아무개씨의 이야기다.
임금은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생계비이지만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노동자가 잘 먹고 잘 자서 열심히 일할 것을 기대하고 공급하는 기계 원료와 같다. 다만 노동자는 기계와 달리 목소리를 낸다. “사장님 나는 인간입니다.”
만약 노동자가 사장님들에게 말을 할 수 없다면, 아무리 혹사시켜도 불평 없는 기계가 된다. 노동조합이 없는 90% 노동자, 해고된 정규직 노동자, 취업을 못한 청년, 경력단절 여성, 노인, 비정규직 알바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과거이거나 현재 혹은 미래의 모습이다. 그래서 국가는 이들 국민이 싸구려 상품으로 취급받지 않게 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믿었던 국가가 매년 배신을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스스로가 정한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을 결정해버린다. 국가가 생계비 이하의 삶을 살라고 국민에게 강요하는 셈이다. 국민을 저렴한 노동력으로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까? 영세자영업자 핑계를 대지만 정작 자영업자들은 건물주와 대기업의 횡포에 고통받는다.
알바노조가 제안한 알바들의 1만 시간 단식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단식하니까 밥값이 안 들어서 좋다” “어차피 일하다 보면 한두 끼 굶는 건 다반사인데 못할 것도 없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면 폐기 음식으로 때우고 아침·점심은 굶는다” “몸에 안 좋은 삼각김밥 컵라면 먹을 바엔 굶는 게 낫다”….
우리 삶이 곧 단식투쟁이었던 것이다. 이 현실을 참고 살면 그저 감수해야 할 인생의 과정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노력하지 않은 대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성적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 학교를 떠올려 보라. 심지어 한 끼 5만원짜리 조찬회동을 하는 경총은 월 103만원이면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못 참겠다, 잘살아보자라며 시작한 단식은 불법이 된다. 굶는 것도 죄가 되더라. 경찰은 국회 앞 단식장을 한 차례 철거하였고, 다시 차린 농성장에 매일 찾아와 사법처리를 예고했다.
조용히 살기만을 바라던 알바들의 목소리에 놀란 것은 경찰뿐만이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하고 입을 닫고 있던 국회의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홍영표 환노위원장은 우리와 만나 최저임금법 개정 약속과 두자릿수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누구나 안다. 지금 최저임금위원회를 바꾸지 않으면 2017년 최저임금은 400원 인상도 힘겹다는 것을. 27명의 최저임금 위원 중 경영계와 국가를 대표하는 위원이 18명인데 어떻게 최저임금이 대폭 오를 수 있겠는가. 최저임금 1만원은 정치적 결단과 책임이 필요한 일로, 국회가 책임져야 한다. 이 글을 쓰는 24일, 나는 9일째, 이가현 조합원과 우람 조합원은 8일째 국회 앞에서 곡기를 끊고, 수많은 알바노동자가 이 단식에 함께하는 것은 몇백원의 값싼 밥상을 거부하고 당당한 밥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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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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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밥값 좀 하라고 한다. 이제 국회의원들이 지난 총선에서 배부르게 먹은 표값 좀 해야 한다. 국민이 죽어가는 야당을 살려줬듯 이번엔 죽어가는 최저임금을 살려달라.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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