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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7 18:58 수정 : 2016.08.07 19:23

홍승희
예술가

아빠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현실은 냉혹해.” “남들은 다 그러는데.” 명령과 구속이 싫어서 20살에 집을 떠났고, 이후로 아주 가끔 아빠를 만난다. 아빠는 군인답게 명령으로 가족을 대했다. 대다수의 한국 남자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그런 아빠가 언제부턴가 시를 쓴다. 우연히 아빠의 시 습작 노트를 본 적 있다. 신호등 불에 등 떠밀리듯 길을 건너는 중년 남성, 비틀거리는 노을, 호숫가에서 출렁이는 나룻배와 같은 심상이 시를 구성한다.

명령과 조언과 주장은 많이 들었지만, 아빠의 아픔은 들은 기억이 없다. 시에는 초라함, 쓸쓸함, 비참함이 들어 있었다. 확고한 정체성, 뚜렷한 목표, 확실한 계획이 지배하는 아빠의 세계와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시는 모호한 안개 같고, 심상은 모두 비틀거리며 흐느끼고 있다. 아빠의 시 속에서 비로소 아빠를 만나는 느낌이다. 아니, 아빠 이전에 한 사람을.

아빠는 여전히 출산은커녕 결혼 생각도 없는 나에게 시집가라고, 돈도 안 되는 예술작업 말고 취직하는 건 어떻겠냐고 묻는다. 물론 내가 그 말을 절대 안 들을 거란 것도 알고 계신다. 아빠는 내 삶의 방식이 비현실적이라고 했지만, 아빠의 시 속에 이미 그 세계는 존재한다. 모호한 안개가 오늘을 뒤덮는 현실과 나뭇잎과 교감하는 삶이.

시의 언어는 확고한 정체성과 균일한 목표에 구멍을 낸다. 아빠는 인정하지 않지만, 아빠의 세계에 균열이 일고 있다는 걸 안다. 아빠의 삶에서 시의 언어는 점점 더 많은 권위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빠가 계속 시를 썼으면 좋겠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등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시를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언젠가 아주 구체적인 언어로 아빠가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날을 상상한다. 가부장의 짐짝, 불안함을 모두 벗어던지는 날을. “남들과 다르게 이러면 안 돼”, “현실은 원래 그래”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눈물을 터뜨려버리는 오늘을.

내가 집회에 다녀와서 투쟁가를 흥얼거리면, 아빠는 옆에서 군가를 부르곤 했다. 투쟁가와 군가의 느낌이 묘하게 닮아서 느낌이 이상했다. 만약 아빠가 군가 대신 투쟁가를 부르고, 지휘봉 대신 피켓을 들고 집회에 나오면 어떨까 상상한 적 있다. 그러면 세상은 바뀔까?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구호는 비틀거리는 심상을 담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구호와 경전과 담론이 오늘 삶을 소외시켜왔는지. 강인한 구호와 확실한 담론이 아니라 초라함, 쓸쓸함, 비참함을 말하는 오늘이 거짓을 벗겨오지 않았나.

많은 여성들이 살아오면서 겪은 불편을 증언하고 있다. 증언은 공감으로 연결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말이 실체화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남성들은 남자도 힘들다고, 모든 남자가 그런 게 아니라며 일반화하지 말라고 한다. 혹자는 잘못된 여성운동이 될까봐 걱정한다.

조언과 걱정 말고, 당신도 삶을 들려달라. 누가 먼저 만들어놓은 이론과 전략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떨 때 쓸쓸함을 느꼈는지, 어떤 날 초라함을 느꼈는지. 어떤 때에 서럽고 수치스러웠는지. 단어 뒤에 숨지 않고, 담론에 기대지 않고, 한번도 말해진 적 없는 당신의 오늘을 나눠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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