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일간워스트 개발자 ‘빻았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한 매체 편집장이 나에게 물어왔다. ‘빻았다’라는 표현은 본래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로 남성들 사이에서 쓰여 왔다. 그러다가 메갈리아가 한국 인터넷을 뒤흔든 작년부터 의미가 역전되어 젠더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남성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동안 주변으로부터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던 남성들의 성차별적 태도들이 작년부터 빠르게 ‘빻은 태도’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때 진보진영 커뮤니티로 불리던 몇 인터넷 커뮤니티들도 ‘빻은 이들’, ‘진보씹치’ 등의 표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메갈리아’라는 이름이 등장한 작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남성들끼리 늘 주고받아왔던 성적 농담이나 여성 비하 표현을 제지하기라도 하면 ‘당신도 메갈리아냐?’는 댓글공격이 이어졌다. 이런 태도에 질려 몇 여성 회원들은 물론 페미니즘에 공감하던 남성 회원들까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대거 떠났다. 방문자가 반 토막이 난 커뮤니티는 이제 말 그대로 진짜 ‘남초 커뮤니티’가 되어버렸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공작 대상이기도 했던 한 유머 커뮤니티는 ‘메갈리아를 막자’거나 ‘과격 페미니즘을 걸러내야 한다’는 남성들의 주장이 베스트에 끝없이 오르는 바람에 빻은 커뮤니티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과거 이곳에서 여성 아이돌의 짧은 치마에 열광해온 이들이 재발굴된 것은 덤이다. 수년간 진보로 분류되어왔던 이들이 어쩌다가 ‘진보 씹치’, ‘빻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까? 인터넷 한편에서는 이들이 ‘빤스(팬티)를 내렸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빤스를 내렸다’는 표현은 그간 입고 있었던 ‘진보’라는 속옷에 가려져 있던 초라한 남근을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말 페미니스트 캠페인 티셔츠를 구입했다는 이유로 한 성우 목소리를 지울 것을 요구하고, 이 성우를 응원했던 웹툰 작가, 교수까지 싸잡아 퇴출을 요구했던 일련의 움직임도 이들 커뮤니티를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이들이 벌인 매카시즘적 행동들은 그동안 그들이 부르짖어왔던 진보적 가치와 전면적으로 상충되는 것들이다. 그들은 ‘메갈리아’라는 상징 앞에 진보적 가치를 벗어던지고 남성성을 과시하는 폭력적인 연대로 정체성을 탈바꿈하였다. 이들 남성연대에게 진보는 하나의 패션이었을 뿐, 삶을 지탱하는 가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메갈리아 사이트가 사실상 소멸했음에도 되레 더 큰 불길이 되었다. 메갈리아에 대한 논쟁과 무관하게, ‘빤스를 내렸다’ ‘빻았다’와 같은 거친 표현들은 미소지니(여성혐오)가 공기처럼 팽배한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표현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표현들이 이토록 빠르게 확산되는 것에서 보듯 미소지니에 대한 저항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진보 씹치’라는 명명에서 보듯 젊은층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나뉘던 진영주의마저도 순식간에 종말을 맞이했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새로운 기준에서 각 사회 주체들이 다시 평가받고 있다. 진보진영으로 불리던 커뮤니티가 반 토막이 난 것 역시 이들로부터 빠르게 버림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원히 남성들만의 연대로 주저앉을 것인지, 아니면 성찰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시대에 함께할 것인지, ‘빻은 진보’들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칼럼 |
[2030 잠금해제] ‘빻은 진보’란 무엇인가 / 이준행 |
전 일간워스트 개발자 ‘빻았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한 매체 편집장이 나에게 물어왔다. ‘빻았다’라는 표현은 본래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로 남성들 사이에서 쓰여 왔다. 그러다가 메갈리아가 한국 인터넷을 뒤흔든 작년부터 의미가 역전되어 젠더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남성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동안 주변으로부터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던 남성들의 성차별적 태도들이 작년부터 빠르게 ‘빻은 태도’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때 진보진영 커뮤니티로 불리던 몇 인터넷 커뮤니티들도 ‘빻은 이들’, ‘진보씹치’ 등의 표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메갈리아’라는 이름이 등장한 작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남성들끼리 늘 주고받아왔던 성적 농담이나 여성 비하 표현을 제지하기라도 하면 ‘당신도 메갈리아냐?’는 댓글공격이 이어졌다. 이런 태도에 질려 몇 여성 회원들은 물론 페미니즘에 공감하던 남성 회원들까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대거 떠났다. 방문자가 반 토막이 난 커뮤니티는 이제 말 그대로 진짜 ‘남초 커뮤니티’가 되어버렸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공작 대상이기도 했던 한 유머 커뮤니티는 ‘메갈리아를 막자’거나 ‘과격 페미니즘을 걸러내야 한다’는 남성들의 주장이 베스트에 끝없이 오르는 바람에 빻은 커뮤니티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과거 이곳에서 여성 아이돌의 짧은 치마에 열광해온 이들이 재발굴된 것은 덤이다. 수년간 진보로 분류되어왔던 이들이 어쩌다가 ‘진보 씹치’, ‘빻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까? 인터넷 한편에서는 이들이 ‘빤스(팬티)를 내렸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빤스를 내렸다’는 표현은 그간 입고 있었던 ‘진보’라는 속옷에 가려져 있던 초라한 남근을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말 페미니스트 캠페인 티셔츠를 구입했다는 이유로 한 성우 목소리를 지울 것을 요구하고, 이 성우를 응원했던 웹툰 작가, 교수까지 싸잡아 퇴출을 요구했던 일련의 움직임도 이들 커뮤니티를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이들이 벌인 매카시즘적 행동들은 그동안 그들이 부르짖어왔던 진보적 가치와 전면적으로 상충되는 것들이다. 그들은 ‘메갈리아’라는 상징 앞에 진보적 가치를 벗어던지고 남성성을 과시하는 폭력적인 연대로 정체성을 탈바꿈하였다. 이들 남성연대에게 진보는 하나의 패션이었을 뿐, 삶을 지탱하는 가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메갈리아 사이트가 사실상 소멸했음에도 되레 더 큰 불길이 되었다. 메갈리아에 대한 논쟁과 무관하게, ‘빤스를 내렸다’ ‘빻았다’와 같은 거친 표현들은 미소지니(여성혐오)가 공기처럼 팽배한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표현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표현들이 이토록 빠르게 확산되는 것에서 보듯 미소지니에 대한 저항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진보 씹치’라는 명명에서 보듯 젊은층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나뉘던 진영주의마저도 순식간에 종말을 맞이했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새로운 기준에서 각 사회 주체들이 다시 평가받고 있다. 진보진영으로 불리던 커뮤니티가 반 토막이 난 것 역시 이들로부터 빠르게 버림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원히 남성들만의 연대로 주저앉을 것인지, 아니면 성찰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시대에 함께할 것인지, ‘빻은 진보’들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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