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노조 위원장 ‘통화하고 싶습니다. 할 말이 있습니다.’ 메신저 창의 문자가 떨렸다. 급하게 숫자를 찍었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설움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오늘 해고됐어요.’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은 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첫마디는 위로가 아니라 사직서를 썼냐는 추궁이었다. 죽음의 원인, 진단서가 조작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첫번째였다. 그녀는 사직서를 썼다. 해고가 아닌 자진퇴사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사직서 한 장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길고 억울했다. 그녀는 공공기관의 한 부서에서 유일한 파견직으로 일했다. 동료들은 정규직, 그것도 서울대, 고려대 출신이다. 그녀는 왕따였다. 아무도 그에게 눈길도 말도 일도 주지 않았다. 자리를 너무 자주 비운다는 상사의 지적을 받고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잘못을 할 때마다 상사는 목줄을 죄듯 파견회사 연락처를 들여다봤다. ‘알려주세요.’ 살려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무엇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식은땀이 흐르고 목이 탁 막혔다. 사직서를 쓰지 않았다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내일 출근해야 한다. 서면으로 해고통지 받을 때까지 버티면 이길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 그러면 원래 회사가 아니라 파견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 쓸모없는 말이었다. 그녀의 사직서를 받아낸 건 그녀 편을 들어주며 함께 정규직 동료들을 욕했던 파견회사 직원이었다. 그 직원은 마지막 카운터펀치로 자존심도 없냐는 물음을 그녀에게 날렸다. 당신이라면 버틸 수 있겠나. 물론 뻔뻔하게 버티는 사람도 있다. 한국방송(KBS) 고대영 사장은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답하지 말라고 보도국장에게 명령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반도체에서 76명이 죽었는데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꿋꿋하게 버틴다.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인 백선하씨는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우긴다. 이들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무지함을, 말수가 적은 것을, 단체생활을 못하는 것을, ‘일못’임을 탓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었다면 사직서를 썼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파견회사는 사람을 모집하고 다른 회사에 사람을 판매해서 이윤을 얻는다. 사람을 산 회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파견직 계약서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단어 ‘인신매매’, 이 말 외에는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람장사의 첫번째 조건은 인간이 교환 가능한 물건이어야 하는 것이고, 두번째 조건은 물건을 독점적으로 가질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권력이고 돈을 가진 사용자들이 노동자에 대한 제한적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국가와 자본이 공짜로 소유하는 영역이 있다. 사람장사의 마지막 조건인 판매해야 할 인간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 곧 재생산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최소 2만명의 아기를 생산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낙태는 범죄로 규정한다.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수단으로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이야기다. 파견회사 직원이 그녀에게 물었던 마지막 질문, ‘자존심도 없냐?’는 물음은 현대판 인신매매의 진열대에 오른 우리가 아니라 인간을 사고파는 장사꾼에게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에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냐고. 회사를 관두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녀, 그리고 또 다른 그녀인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칼럼 |
[2030 잠금해제] 인신매매 / 박정훈 |
알바노조 위원장 ‘통화하고 싶습니다. 할 말이 있습니다.’ 메신저 창의 문자가 떨렸다. 급하게 숫자를 찍었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설움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오늘 해고됐어요.’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은 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첫마디는 위로가 아니라 사직서를 썼냐는 추궁이었다. 죽음의 원인, 진단서가 조작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첫번째였다. 그녀는 사직서를 썼다. 해고가 아닌 자진퇴사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사직서 한 장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길고 억울했다. 그녀는 공공기관의 한 부서에서 유일한 파견직으로 일했다. 동료들은 정규직, 그것도 서울대, 고려대 출신이다. 그녀는 왕따였다. 아무도 그에게 눈길도 말도 일도 주지 않았다. 자리를 너무 자주 비운다는 상사의 지적을 받고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잘못을 할 때마다 상사는 목줄을 죄듯 파견회사 연락처를 들여다봤다. ‘알려주세요.’ 살려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무엇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식은땀이 흐르고 목이 탁 막혔다. 사직서를 쓰지 않았다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내일 출근해야 한다. 서면으로 해고통지 받을 때까지 버티면 이길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 그러면 원래 회사가 아니라 파견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 쓸모없는 말이었다. 그녀의 사직서를 받아낸 건 그녀 편을 들어주며 함께 정규직 동료들을 욕했던 파견회사 직원이었다. 그 직원은 마지막 카운터펀치로 자존심도 없냐는 물음을 그녀에게 날렸다. 당신이라면 버틸 수 있겠나. 물론 뻔뻔하게 버티는 사람도 있다. 한국방송(KBS) 고대영 사장은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답하지 말라고 보도국장에게 명령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반도체에서 76명이 죽었는데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꿋꿋하게 버틴다.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인 백선하씨는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우긴다. 이들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무지함을, 말수가 적은 것을, 단체생활을 못하는 것을, ‘일못’임을 탓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었다면 사직서를 썼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파견회사는 사람을 모집하고 다른 회사에 사람을 판매해서 이윤을 얻는다. 사람을 산 회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파견직 계약서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단어 ‘인신매매’, 이 말 외에는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람장사의 첫번째 조건은 인간이 교환 가능한 물건이어야 하는 것이고, 두번째 조건은 물건을 독점적으로 가질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권력이고 돈을 가진 사용자들이 노동자에 대한 제한적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국가와 자본이 공짜로 소유하는 영역이 있다. 사람장사의 마지막 조건인 판매해야 할 인간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 곧 재생산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최소 2만명의 아기를 생산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낙태는 범죄로 규정한다.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수단으로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이야기다. 파견회사 직원이 그녀에게 물었던 마지막 질문, ‘자존심도 없냐?’는 물음은 현대판 인신매매의 진열대에 오른 우리가 아니라 인간을 사고파는 장사꾼에게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에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냐고. 회사를 관두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녀, 그리고 또 다른 그녀인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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