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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독방을 부수며 / 홍승희

등록 2016-10-30 17:44수정 2016-10-30 19:42

홍승희
예술가

재판을 받았다. 일반교통방해, 재물손괴죄로 검찰은 1년6개월을 구형했다. 홍대 공사장 가벽에 대통령 풍자 그림을 그리고,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퍼포먼스를 한 죄다. 선고공판은 11월11일이다. 공판에서 징역이 선고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검찰 구형 소식을 공유한 후 나를 응원해주는 인터넷 댓글을 봤다. “양아치도 동네 여자나 애들은 안 건드린다. 검찰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저 어린 여성을 우리가 보호해줘야 합니다.” 최순실 모녀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인터넷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미친년들, 무당년들.”

작년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연행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폭력적인 연행에 항의하는 친구에게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여자애가 뭘 알고 나왔겠냐.” 경찰이 내 배후를 묻는 근거이기도 하다.

“네가 여자라서 특히 관심 받는 거야.” 함께 예술행동을 했던 선배에게 들은 말이다. 그는 “한국에서 여자는 유리해. 마음만 먹으면 성공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진보는 섹시해야 한다”고 말하던 사회운동가는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이용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아무리 예술 작업을 하고 집회에 나가고 법정에 서도 여자로 호명된다. 나는 여전히 홍승희 작가나 홍승희씨가 아니라 홍승희양이라고 불린다. 목소리를 내는 여자는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사랑에 목마른) ‘관심종자'로 읽힌다.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연애의 대상이 된다. 요즘 여자들과 다르게 기특한 ‘개념녀’가 되거나.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 페이지 ‘김치녀 시즌2’에 ‘감옥 갈 위기에 처한 메갈 김치년ㅋㅋㅋㅋ’라는 게시물이 내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신고를 했지만 페이스북 한국지부는 ‘커뮤니티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했고, 내 얼굴은 그곳에서 여전히 난도질되고 있다. ‘개념녀’가 ‘김치녀’가 되고, ‘성녀’가 ‘창녀’가 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왜 나는 어떤 행위를 해도 여자가 될까. 내가 ‘여자 사람’에서 여자를 중단하면 어떻게 될까.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다. 늦은 새벽 메일함을 열어봤다. 대학교수의 성폭행을 고발했던, 그러나 몇년째 법정 싸움 중인 A씨에게 메일이 와 있다. “성폭행 가해자에게 구형을 하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데, 승희씨에게는 이렇게 쉽게 징역형을 구형할 수 있다니. 이럼에도 돌아가는 나라가 참 우습네요.” 우습다. 정말 우습다. 나는 피고인임에도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다. 고립되지도, 수치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그녀는 피해자임에도 고립된다. 수치와 모욕도 그녀의 몫이다.

문단, 예술계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가해자는 ‘미안해요~’라는 사과문을 올리고 끝났다. 그러나 그녀들은 가십으로 오르내리고, 도리어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참 이상하다. 그녀들은 피해자임에도 독방에 있다.

문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계, 운동권, 종교계, 대학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증언이 쏟아진다. 나 역시 마주쳤던 성폭력을 뒤늦게 깨닫는다. 불과 5개월 전까지만 해도 함께했던 동료, 믿었던 선배, 존경했던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은밀한 폭력. 내가 있던 모든 곳에 성폭력의 흔적이 있다. 적은 고작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삶을 가두는 모든 독방이다. 가장 보편적인 독방. ‘여자’라는 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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