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5.07 18:34 수정 : 2017.05.08 10:46

박정훈

알바노동자

첫 대선은 2002년 ‘돈 세상을 뒤엎어라’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겨울은 추웠다. 부산 범일동의 두 칸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급식지원을 받으며 등교하던 나에게, 한 장의 대선 포스터는 가난이 나의 탓이 아니라 말해주는 듯했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 희망의 가능성은 0.08%. 불심으로 대동단결한 사기꾼보다 낮았다.

다음해 지금은 노동당이 된 사회당 당원이 됐고, 이후 0.1%짜리 희망에 인생을 걸었다. 2012년 청소노동자 김순자 후보의 선거운동으로 직접 희망을 만들려 했지만, 0.15%를 기록했다. 맞다. 나는 민주노동당 성공의 역사조차 경험 못한 소수파 중의 소수파, 이번 대선에 후보조차 내지 못한 정당의 당원이다. 녹색당원들은 나의 심정을 알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의 승리에 기뻐하지 않은 건 아니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운 약자의 승리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승리 뒤의 결과물은 내 것이 아니었다.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정리해고가 일상이 됐으며, 등록금은 높아졌다. 한국군은 이라크에 파병을 갔고, 난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감옥에 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새로운 지옥으로 느껴지지 않은 이유다.

아무리 그래도 0.1%를 견디긴 힘들다. 변화는 있었다. 10년 전 금민 사회당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은 2017년 현실이 됐다. ‘노동자라고 안식년 가지 말란 법 있냐’고 일갈했던 김순자의 유급안식년은 안희정의 주장이 됐고, 최저임금 1만원은 모든 대선후보의 공약이 됐다.

변화를 만든 건 선거가 아니었다.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위해 왼손에는 캠페인용 탁자를, 오른손에는 확성기를, 오른쪽 팔 사이에는 피켓을, 왼쪽 팔 사이에는 유인물 뭉치를 들고 낑낑대며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린다. 사람들의 냉소 어린 시선도 그를 향해 오르내린다. 겨울철 세찬 바람에 들고 있던 유인물이 이리저리 흩어지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 때려치우고 울고 싶어진다. 하지만 안다. 1000명 중에 단 1명이었던 그의 목소리가 무상급식이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었며, 학생인권조례였다. 0.1%가 시작해 이뤄낸 법제화·제도화의 과실은 모두의 것이 됐다.

오늘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 동성애에 대한 차별에 맞서기 위해,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길을 나선다. 어떤 이들은 유치장에 가고, 모았으면 전셋값은 족히 됐을 벌금 폭탄을 맞는다. 부조리한 세상에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아 곡기를 끊고, 땅 위에 발 딛기 힘들어 광고탑 위 하늘로 오른다. 감옥 같은 현실을 부수려다 교도소에 갇히는가 하면, 꽃다발도 무덤도 없이 죽어간 사람도 있다.

이름난 교수, 논객, 정치인 들은 이런 사람들을 구리다 한다. ‘아직도 운동을 하냐’고 묻는가 하면, ‘변화된 시대에 맞게 좀더 힙하고 현실적인 운동을 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이들이 5년 전에 뿌렸던 그 비루하고 볼품없던 유인물이 지금 대선후보의 세련된 공보물이 됐고, 사람들로부터 온갖 조롱을 받던 주장들이 지금 국민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는 대선후보의 약속이 되었다.

현실을 쫓아가지 못해 지치는 게 아니라 홀로 미래를 당기는 게 외롭고 쓸쓸할 뿐이다. 그래서 999명으로부터 비난받는 한 명의 성소수자와 한 명의 노동자와 한 명의 장애인과 한 명의 병역거부자와 한 명의 운동가의 줄다리기를 응원한다. 내일 내가 이들 0.1%의 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이유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2030 리스펙트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