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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21 19:37 수정 : 2017.05.21 20:13

홍승희
예술가

“합법화를 통해 동성애가 보호되면 가장 큰 문제점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많은 국민의 양심과 표현, 종교와 학문의 자유가 억압되는 데 있다.” ㅎ대학 학보에 실린 동성애 합법화 반대 칼럼에 있는 문장이다. 같은 주제의 기사가 두 번씩 연이어 게재되었고, 학생들에게 비판을 받자 학보사는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 욕설, 범죄의 소지가 있는 글을 제외한 모든 글을 싣습니다”라고 해명했다. 동성애자는 특정 ‘인물’도 아닌 걸까. 학보사 기자는 동성애를 차별하는 거냐고 묻는 ‘사상검증’은 옳지 않으니 ‘검열’할 수 없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사는 표현의 자유라며 동성애를 반대하는 신념을 밝혔다.

군대 내 동성애자를 색출하는 시대다. 이번 대선에서는 공공연하게 ‘동성애를 찬성하십니까?’라고 묻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이 지워지고, 그 존재들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폭력이 대학에도 활개 친다. 대선 토론회가 있던 밤, 성소수자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괜찮으냐고. 그 친구는 당연히 안 괜찮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동아리 단체카톡방이 있는데, 그 방에서는 “지금 저게 무슨 소리지?”라며 다들 귀를 의심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친구는 며칠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거리에서 선거 유세가 한창이었다.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국민 중에 나는 없다”고 시작하는 글이었다. 친구는 투표했을까. 자신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후보를 ‘대의’를 위해 선택했을까. 아니면 투표소를 서성이다가 발걸음을 돌렸을까. 친구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 삶은.”

그 친구와 만나 답답함을 토로하고 함께 분노했다. 다시 웃는 친구의 표정 뒤로 무거운 슬픔이 느껴졌다. 불의에 분노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고 곁을 지켜준 친구.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흑인을 찬성하십니까?” 이 질문이 폭력이라는 걸 지금은 대다수 사람이 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간이 함부로 타인의 삶을 지레짐작하지 않고 타자의 존재를 재단하지 않기까지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친구는 동성애인지 사상검증을 하는 세상과 성소수자 동아리를 검열하는 대학에서 오늘도 투쟁하고 있다. 검열, 사상검증, 표현의 자유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신념을 위해 여유롭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친구에게 표현의 자유는 신념이 아닌 실존의 문제다. 자기 자신으로 숨쉬기 위한.

친구와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와 메일함을 열었다. 이번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재판 결과가 좋을 거라고 축하해주는 메시지가 와 있다. 다음주에 박근혜 전 대통령 풍자 그라피티 사건 최종 공판이 있다. 선거 결과의 영향으로 내가 무죄를 받는다 해도 기쁘지 않을 것 같다. 혐오의 공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무기력함이 밀려와 풀썩 힘이 풀렸다. 친구의 따뜻한 손을 떠올렸다.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혐오의 공기가 싫어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하는 내게 친구는 다시 곧 만나자며 두 손을 잡아줬다. 어떤 단어로도 대체될 수 없고, 어떤 존재라고 규정될 수 없는 따뜻한 손. 친구가 나를 잘 모르듯, 나는 친구를 잘 모른다. 나는 친구를 안다고 말할 자격도, 찬성하거나 반대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누구나 그렇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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