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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4 18:11 수정 : 2017.06.04 19:10

박정훈
알바노동자

맥도날드 노동자 사이엔 그 메뉴만큼 다양한 신분이 있다. 흔히 알바라 불리는 크루(Crew)부터 트레이너, 매니저, 점장 차례로 직급이 구성된다. 매니저는 연봉과, 매출에 따른 성과급을 받는 정규직인데, 다 같은 매니저가 아니다. 가장 말단의 스윙(Swing) 매니저는 연봉이 아니라 시급을 받는다. 최저임금보다 500원 많은 6970원. 그런데 2년 이상 일했다면 무기계약직으로 한 직원의 근로계약서 계약종료일은 의미심장하게도 2999년 12월31일이다. 죽을 때까지 맥도날드에서 일하라는 의미일 수도,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맥도날드만큼은 살아있을 수 있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다. 시급을 받고, 무기계약을 맺은 이 사람은 비정규직일까, 정규직일까?

‘매니저’라는 명찰은 이 종신 시급노동자에게 책임감도 달아준다. 본사는 인건비를 줄이라는 압박을 각 매장에 가한다. 가장 손쉬운 게 연장수당을 줄이는 거다. 크루들은 지문으로 출퇴근을 기록해, 1분 단위로 임금이 계산되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칼퇴’를 정규직 노동자들이 챙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상사로부터 ‘퇴근시간에 빨리 퇴근 안 하고 뭐하세요?’라는 감동적인 말을 들을 수 있는 곳, 맥도날드다. 반면, 연봉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포괄임금제’ 아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연장근무를 하고 휴식도 제대로 갖지 못한다.

스윙은 더 노골적이다. 이들은 연장수당을 받지 않기 위해 일단 약속한 시간대로 출퇴근 지문을 찍는다. 그리고 매장 문을 열기 전엔 청소와 기계점검 등을 먼저 끝내고 지문을 찍고, 매장 문을 닫고 난 뒤엔 지문부터 찍고 정산과 청소를 한다. 우리가 먹는 맥모닝엔 이들의 새벽잠과 연장노동이 무료로 들어가 있는 셈이다. 차라리 매니저에서 크루로 직급을 낮춰달라 요청하는 사람까지 있다. ‘흔들리는’이란 뜻의 스윙을 직급에 붙일 생각을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이처럼 적절한 이름도 없을 것이다.

이 독특한 신분은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과 ‘포괄임금제’라는 시스템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임금은 낮지만, 노동시간은 긴 중규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과 민간이 앞다투어 약속하는 정규직화 대부분이 중규직이다. 하지만 ‘취업만 하면’ 된다, ‘공장으로 돌아가기만 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회사 문을 연 뒤에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이 기업을 위해 평생 일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노예가 아니라 고유한 욕망과 인격을 가진 인간이었음을. 산업재해, 직장 내 성희롱, 군사적인 문화, 연차나 육아휴직은커녕 칼퇴조차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기계약’은 노예계약이 될 수 있다.

2013년 6월2일 최저임금 1만원을 남기고 하늘로 떠난, 알바들의 대변인 권문석도 이런 노동현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비정규 노동자의 소득보장을 위한 최저임금 1만원,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자유로운 시간의 확보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함께 외쳤다. 우리의 꿈은 좋은 일꾼이 아니라 좋은 삶이며, 필요한 것은 고용안정이 아니라 삶의 안정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불안한 자유와, 정규직의 안정된 구속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권문석이라면, 충분한 소득, 충분한 시간, 충분한 노동인권 모두라 답했을 것이다. 그의 욕심은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약속으로 되돌아왔다. 우리의 욕심이 중규직에서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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