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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25 19:29 수정 : 2017.06.25 19:44

이준행
전 일간워스트 개발자

요정에서 기생 찾듯 ‘술자리에는 여자가 있어야지’, ‘부장님 회식자리에는 젊은 여자 한둘은 끼워야지’라며 여사원을 불러내던 시절이 있었다. 자취하는 여중생에게 졸라 돌아가며 성관계를 맺고서는 4등으로 했다며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이 성매매 업소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건 가정에서 아내가 잠자리 보살핌을 하지 않은 탓이라 이야기하던 시절도 있었다. 허리를 숙였을 때 젖무덤이 보이는 여자에게 끌린다거나, 임신한 여교사를 보며 ‘섹스하는 선생님’을 상상했다는 이야기를 당당히 늘어놓던 시절도 있었다. 주어를 다 빼고 이야기했는데, 남자들 이야기다.

룸살롱에서 서로의 추태를 공유하는 것이 남자의 의리라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성매매를 하러 가는 무리에서 머뭇거리는 이를 지목해 게이라 부르거나 고자라고 손가락질하던 시절도 있었다. 결혼 전 총각파티를 치러야 한다며 친구나 친지들이 모여 성매매업소로 함께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갓 군대에 들어온 신병을 내무반에 앉혀놓고 “첫 경험 ‘썰’을 풀라”고 시키며 즐기던 시절과, 군 사령관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뒤 가해자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거꾸로 여군을 내보내 사건을 덮어버렸던 시절은 서로 맞물려 있다. 여대생에게 ‘아나운서로 성공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이가 이후에도 당당히 연예인 행세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 여성 장관을 강간해 죽이자’고 외쳤던 이가 진보진영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시절이 있었다. 한번만 자주면 투자해주겠다거나, 등단시켜주겠다거나, 승진시켜주겠다며 성범죄를 저질러온 남자들이 버젓이 시대의 어른을 자처하던 시절도 있었다. 혹여나 성추문에 휩싸이더라도 “상대 여성과 합의하에 있었던 일이다”라고 발뺌하고는 다 함께 여성을 꽃뱀으로 몰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남자들의 의리’를 바탕으로 모든 경제·사회 활동이 이루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룸살롱을 거치지 않으면 영업이나 투자, 정책결정이 불가능하다고 믿어온 시절이 있었다. 이를 핑계로 룸살롱과 성매수는 사회생활의 일부라 변명하는 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여성은 룸살롱 접대가 불가능하다며 승진에서 배제시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의리를 바탕으로, 약물강간 사주나 집단성폭행 등을 추억으로 여기는 남자들이 버젓이 이를 책으로 내거나, 당당히 공직을 도맡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요즘에는 이런 일이 없는 것처럼 나열했지만, 이 모두가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혹자는 이 모든 것들을 ‘남자의 본성’이나 ‘남자 설명서’라고 포장하기도 했지만, 실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강간문화 그 자체일 뿐이다. 강간문화란 강간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환경을 의미한다. 옛날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요즘 왜들 문제 삼나 억울해하는 남성들이 자주 보인다. ‘페미니즘이라는 못된 사조가 퍼진 탓’이라 역정 내거나, ‘메갈들이 떠들고 설치는 것일 뿐’이라며 최근의 비판 여론을 외면하는 남자들도 보인다. 그러나 여성을 향한 폭력을 딛고 서 있던 ‘당신들이나 좋았을 그 시절’은 이미 끝났다. 강간문화를 누려온 이들에게도, 이를 알면서도 묵인해왔던 이들에게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강간문화도 진작 청산해야 했던 적폐이다. 새 ‘남자 설명서’는 그동안 강간문화를 신나게 누려온 남자들이 어떻게 철퇴를 맞게 되는지부터 자세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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