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7.02 17:51 수정 : 2017.07.02 21:07

박정훈
알바노동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술밥을 먹고 당당히 카운터로 향했다. 소주 반병을 마셨으니 주사는 아니었고, 음식값 3만원은 반가움에 비하면 싼 편이었다. 그런데 알바노동자는 나의 카드를 여러 차례, 정성스럽게 긁어댔다. ‘이게 왜 안 되지’ 읊조리며 카드를 긁는 그 어색한 동작과 불안한 눈빛을 보며, 본능적으로 포스기로 눈을 돌렸다.

한도초과. 잔액부족이란 말을 꺼내지 않고 기계의 오류인 양 연기해준 알바의 메소드 연기가 고마웠고, 지인이 있는 등 뒤가 뜨거웠다. 나 역시 햄버거 배달을 하면서 건네받은 손님의 카드에서 종종 잔액부족이 뜨면, 한도초과라는 말 대신 다른 카드 없냐고 돌려 말한다. 그러곤 손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제발 다른 카드는 결제가 되길 기도한다. 손바닥보다 작은 카드와 영수증을 뱉어내는 카드리더기의 작은 떨림에 우리의 삶도 흔들리고 작아진다.

사실 국민들의 잔액부족 공포를 없애주기 위해 최저임금이 도입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최저임금위원회는 자신들이 설정한 생계비에 30만 원 정도씩 모자라게 최저임금을 결정해왔다. 이것은 불안이 되고, 빚이 된다. 물론 경영계는 시급 6470원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니 155원만 올리자 한다.

그러나 배달할 때 타는 오토바이의 기름처럼, 삶은 달리면 달릴수록 돈이 샌다. 노고산 언덕의 단칸방에 25만원, 와이파이와 데이터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5만원, 학자금 대출 7만원, 출퇴근 교통비 7만원, 시민단체 후원금 8만원, 청약저축 2만원, 밥도 먹기 전에 매달 54만원이 나간다. 경조사라도 생긴다면, 기쁨과 슬픔에 가격을 매기게 된다.

반면, 누군가는 숨만 쉬어도 돈이 생긴다. 감옥의 이재용과, 병상의 이건희는 주식가치 상승으로 4조원을 벌었다. 매달 알바와 원고료로 100만원을 버는 내가 수십만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땀 흘려 일하라 말할 수 있을까? 정직하게 땀만 흘리면 패자가 되고,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성공하면 중간은 가고, 잘 태어난다면 진정한 승자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소비의 계층 분리다. 2015년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학력에 따른 실태생계비 보고서를 보면, 고졸 이하는 127만원, 대졸 이상은 216만원, 무려 90만원의 지출 차이가 난다. 신발, 주거, 교통비, 오락문화, 음식, 숙박에서 1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데, 학력과 소득에 따라 사는 곳, 노는 곳, 입는 것, 먹는 것이 달라진다. 지하방에서 지옥철로 출근하고,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는 이와, 고급 아파트에서 차로 출근하는 이가 마주칠 일은 별로 없다.

혹자는 어릴 때 공부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정당한 결과라 주장한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형벌이 아니다. 시험문제를 푸는 것과 먹고사는 문제를 푸는 것은 다르다.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는, 당신의 수학점수가 아니라 이 나라의 인권점수에 따라 달라진다.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받을 수 있는 월급 209만원은 생계비 수준에 불과하다. 이것이 큰 욕심일까?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진짜 탐욕은 209만원의 1000배를 가져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부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매달 발생하는 잔액부족을 신용카드와 빚, 그리고 ‘노오력’으로 버텨낸 결과일지 모른다. 은행이 아니라 국가가, 대출이 아니라 최저임금이 우리의 마이너스 통장을 해결할 진짜 방법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2030 리스펙트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