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아르바이트 노동자. 연합뉴스.
|
박정훈/알바 노동자
|
알바노동자 꽃보다 먼저 계절을 느끼고, 기상청보다 예민하게 날씨를 측정하는 존재가 있다. 도시를 달리는 라이더, 건설현장의 노동자, 수백명의 음식을 만드는 급식조리사, 폐지 줍는 노인, 땅 위의 농민, 바다 위의 어부다. 봄이 되면 피고 겨울이 오면 지는 꽃과 달리, 노동자들은 비와 태양과 눈과 바람 속에도 질 수 없다. 그래서 나무의 나이테처럼 온몸에 세월의 흔적이 있다. 하얀 팔이 민망할 정도로, 검은 장갑을 낀 듯 새까맣게 그을린 손등은 그가 받아낸 자외선 지수를 보여준다. 목구멍의 간질거리고 따끔거리는 그 불쾌한 느낌은 그가 마신 미세먼지의 양을 기록한다. 날씨에 따라 나뭇잎의 모양이 다르듯, 인간도 마시는 공기의 온도에 따라 겉모습이 달라진다. 한여름의 더위 속에도 말끔한 양복과 긴팔 와이셔츠를 입을 수 있는 사람과, 아쿠아슈즈와 기능성 반팔 티셔츠를 걸쳐야 하는 패션테러리스트의 차이는 패션 감각이 아니라 노동조건의 차이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며칠 휴대전화에는 폭염과 폭우를 경고하는 긴급재난문자가 왔다. 집 밖은 위험하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보다, 카드값과 대출을 갚으라는 문자가 더 공포스러운 법이다. 게다가 너무 더워서 일 못 하겠다 하면 그냥 쭉 쉬라는 답장을 받을 게 뻔하고, 바깥보다 집 안이 더 덥거나 반지하방에 물이라도 들어온다면 무엇이 더 위험한지는 분명해진다. 그렇게 일을 하다 경기도에서 2명의 급식조리사가 쓰러졌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7월25일까지 813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4명이 숨졌다 한다. 대책은 간단하다. 더운 시간인 낮 12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고, 재난 수준의 상황이라면 일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내가 라이더로 일하는 맥도날드에선 배달을 하나 완료할 때마다 400원의 추가임금을 준다. 비나 눈이 오면 100원을 얹어 500원을 준다. 100원에 불과해 별 의미가 없지만 일종의 날씨 수당이다. 물론 폭염과 미세먼지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를 확대해서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처럼, 폭염과 호우에 일하는 노동자에게 폭염수당, 호우수당을 지급하는 건 어떨까? 심각한 수준의 폭염과 호우엔 노동자가 업무를 중단할 수 있는 업무중지권을 가진다면 지금과 같은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기업 부담만 늘어날 거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세계의 정부와 기업들이 최고급 호텔에 모여 기후변화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사이, 전세계 노동자들은 이미 기후변화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자신들의 땀과 병원비, 혹은 목숨값으로 말이다. 물론 기업이 지금까지 자연을 공짜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다. 지난 목요일, 비에 젖은 길에서 오토바이와 함께 미끄러졌다. 결국 배달이 늦었고,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괜찮다며 조심히 운전하라는 격려의 말이 돌아왔다. 며칠 전 35도의 폭염 속에서 헉헉거리며 5층 계단을 올랐지만 콜라를 빠뜨린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콜라값까지 결제를 하면서도 다시 가져올 필요 없다는 고객의 말에 피로가 싹 가셨다. 그 마음이 고마워 얼음을 동동 띄운 새로운 콜라를 가지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정당한 보상이야말로 우리가 소중히 가꾸어야 할 공동체 의식이 아닐까?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