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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13 17:48 수정 : 2017.08.13 19:36

홍승희
예술가

대한민국효녀연합 퍼포먼스로 언론에서 오르내리고, 여성혐오 커뮤니티에서 내 이름이 자주 등장했을 때였다. ‘통합진보당 활동 경력이 있는 전문시위꾼, 종북 빨갱이, 간첩’이라는 비난이 주가 되었다. 분단국가에서 빨갱이로 낙인받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런 낙인은 이제 우습다. 연대해줄 시민들이 있어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한 게시물을 읽고 심장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문란해 보인다. 돈 받고 남자랑 자고 다니는 애다.’ 가장 오래된 낙인, 더러운 여자. ‘창녀’라는 낙인은 빨갱이 낙인보다 실제의 공포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나와 함께해줄까. 페미니스트들은 나와 연대해줄까. 숨어 있는 익명의 그녀들과 연대하는 방법도 없는 것 같다. 오래된 공포 앞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된 채로 무기력해졌다. 낙인찍힌 존재들이 연대할 수 있을까.

“너가 문란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오랜 시간 남자들이 나를 협박하며 했던 말이다. 관계 도중 몰래카메라를 찍으려다 실패한 남자, 낙태수술 후 도망친 남자친구가 자신의 가해 사실을 숨기기 위한 무기가 ‘문란한 여자’ 서사였다. 내 입에 재갈을 물렸던 그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이런 나도 여전히 두려운데, 얼마나 많은 여성이 무기력하게 협박을 당하고 공포에 떨고 있을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나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성노동 관련 글을 써서 여성주의 언론에 송고했다. 하지만 편집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의 글은 거부됐다. 얼굴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페미니스트의 공간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녀들의, 또 다른 ‘나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공간을 발견한 건 1년 전이다.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는 성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공간이다. 얼굴 없는 사람이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고맙고 반가운 곳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페이스북 코리아는 이곳을 음란물 페이지로 규정했다. 많은 사람의 항의로 다행히 규제는 풀렸다.

창녀의 추억 따위가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으로 나오고, 영화마다 화려한 배경으로 창녀가 등장하는 땅에서 창녀가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음란물이 된다. 성노동자는 스크린 속의 미학이거나 환상 속 악마, 팜파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 세계에서 창녀는 가장 천박한 여자의 계급이고 타락의 상징이다. 국가는 성노동자를 죄다 피해자화한 ‘성매매 방지법’으로 위장해 개개인의 성에 침범한다. 한 사람과 섹스하지 않고 성을 거래하는 여자를 ‘윤락’ 행위자로 간주한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주제가 그렇듯, 각양각색의 삶을 살고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는 없다.

성노동자를 ‘지켜’주기 위한 법의 울타리는 성노동자의 입을 틀어막는 재갈이 된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방에서 매를 맞아도 호소할 곳이 없다. 공포는 실재였다. 경찰 단속 중 성노동자가 건물에서 투신해 사망하거나, 성구매자에게 당하는 살인과 폭행 사건은 연일 가십거리로 휘발된다. 얼굴 없는 그들은 애도되지 못한다.

그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나도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말할 때, 당신은 편견 없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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