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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4 21:02 수정 : 2018.01.15 10:18

박정훈
알바 노동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304억달러의 부채 때문에 기업이 망하고 경제가 파탄 났다. 당시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자 했는데,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다 못해 금까지 토해냈다. 반면, 대기업과 은행에는 수십조의 세금이 수혈됐고 노동자들은 해고됐다. 경제를 파탄 낸 기업들은 살아나고, 노동자들은 죽었다가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로 다시 태어난다. 대기업과 나라의 빚은 어느새 1500조의 가계부채로 바뀌었다.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이번엔 최저임금 1060원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난리다. 언론, 정치인, 재계가 모두 달려들자 온 세상 모든 문제가 최저임금 탓이 됐다. 기계에 의한 인력 대체도, 늘 올랐던 물가도 최저임금 때문이다. 매년 6월에 시작되던 최저임금 투쟁이 1월부터 시작된 것이다. 재계가 이 공세로 내년 최저임금을 500원 인상으로 막는다면, 올해 최저임금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 2년간 1500원 오른다면 매년 750원 올린 거에 불과하다. 도긴개긴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최저임금 액수만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불쏘시개로 그동안 하지 못한 경제개혁을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얼마 전 <조선일보>는 4대보험 가입조건 때문에 영세사업장에 대한 월 13만원의 인건비 지원이 무용지물이라고 보도했다. 알바도 4대보험을 원하지 않는단다. 그런데 알바가 보험을 원치 않는 이유가 바로 벼룩만한 월급에서 간을 빼 먹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 아니던가. 게다가 노동자들은 보험금을 낸 기억은 있어도, 보상금을 탄 경험은 없다. 산재 은폐가 횡행하고 근로계약서도 안 쓰는 노동환경에서 산재 신청을 말할 수 있는 노동자는 없다. 학교에선 노동법을 가르치지 않아 국민들이 보험의 유용성을 알기 어렵고, 복잡한 절차와 심사는 신청 자체를 어렵고 두려운 일로 만든다. 오죽하면 4대보험을 보험이 아니라 세금이라 생각하겠는가. 해야 할 것은 실업급여와 산재의 조건과 절차를 간소화하고 혜택을 늘려 노동자들의 보험 경험을 늘리는 거다. 이참에 각종 불법과 탈법의 온상인 노동시장을 바로잡고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노동조합의 권리를 확대하고, 근로감독관을 3천명으로 과감히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토지개혁도 있다. 임대료를 잡기 위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손보는 것뿐만 아니라 토지보유세로 땅값 자체를 낮춰야 한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전횡을 막고, 가맹점 노동자의 임금체불이나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본사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체불임금을 본사가 선지급하고 이후 본사와 가맹점주가 정산하는 방식을 상상해볼 수 있다. 모든 사업장에 노사협의회를 설치해, 노동자가 사장과 대화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본사-점주-노동자의 3자 교섭권을 보장해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 여기서 을과 병의 관계인 점주와 노동자가 갑인 본사에 대항해 연대할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최저임금 구조조정이라 부르고 싶다. 1060원으로 또다시 노동자에게 칼을 겨눠 해고하고 상여금을 없애는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 아니면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칼을 겨눠 4대보험 일자리를 늘리고, 임대료를 잡고, 본사의 갑질을 없애며, 사회안전망을 갖춰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회장님과 정부에게 들었던 말을 되돌려줄 때다. ‘구조조정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배부른 허리띠를 졸라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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