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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19 19:03 수정 : 2018.08.19 19:23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월경통이 이 정도로 심해진 건 재수생 시절 이후다. 정수기에 물 뜨러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던 그때, 허리가 망가졌고 월경 중 요통이 심해졌다. 하루 한끼는 인스턴트식품. 편의점을 식당 삼아 살았으니 아마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진통제 한두알로 괜찮았던 시기는 오래전, 이젠 3~4시간마다 진통제를 챙겨 먹어야 식은땀이 흐르지 않는다. 통증뿐이면 좋겠다. 통화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고, 우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 매달 하루 이상 찾아온다. 월경통은 내게 만성질환이다.

매달을, 십년 넘게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해낸 일이 또 있었나 싶다. 따뜻한 물주머니를 배에 올려놓고 이 한여름에 잠드는 그 심정을 아는가. 여성의 월경을 생각해보면 과학이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발견할 분야가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있다. 십년이 흐르는 동안 내게 더 나은 선택지로 주어진 것은 많아진 진통제 종류뿐이다. 이제는 더 획기적인 온열 물주머니도 싫고, 더 다양한 진통제도 싫다. 이 고통에 맞설 다른 파트너는 정녕 없는가 고민하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생리를 안 할 수 있다.

체내 피임 시술을 받으면 월경이 멈추거나 극소량으로 줄어든다. 미레나, 임플라논 같은 시술을 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달 수영 강습을 등록하고 꼭 한주를 빠져야 했던, 진통제를 달고 살며 생리대의 화학물질에 불안해했던, 피 묻은 이불을 빨아야 했던 그 많은 아침이 사라진다. 월경 없는 내 삶을 상상해본 적 있었던가? 놀라운 이야기다. 이번 생리가 끝나면 3년 정도는 생리를 멈춰보려고 한다(호르몬 변화로 부작용을 겪은 사람도 있다. 각자 건강 상태에 따라 꼭 전문 의료 상담을 받아야 한다).

한번도 나의 생식 건강에 대해 이런 선택지를 교육받아본 적 없다. ‘피임’도 ‘임신’도 목적이 아닌데, 산부인과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다. 우리에게 선택지가 더 있다는 걸 몰랐다. 생각해보면, 피임 시술은 왜 ‘피임’ 시술로만 불리는가? 호르몬 작용을 이유로 자신의 몸에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변화를 여성이 스스로 조절하려는 선택. 이것을 ‘피임’이란 말로만 부르지는 말자. 여성의 생식 건강은 더 넓은 범위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생식 건강’은 출산을 위해 엄마의 몸을 만드는 차원에서만 이야기된다.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관리를 위한 검사는 ‘출산 장려 정책 방향’에 따라 2004년, 보험 급여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체내 피임 시술은 비급여로 전환되었다. ‘출산 장려 정책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생식 건강을 위한 선택지는 이렇게 인구 조절의 관점에서 쉽게 결정되고, 사라져왔다. 우리나라는 피임은 지원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인구 조절을 목적으로 한 자궁'이 아니라, ‘건강권을 가진 개인'으로 보는 나라에 살고 싶다. <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지음, 2017)에 따르면 프랑스는 대부분 피임약, 루프, 임플라논에 대해 최대 65% 정도 비용을 지원한다. 한국에선 비닐봉지를 콘돔으로 쓰는 청소년들이 기사화되는데, 프랑스에선 청소년에게 호르몬 루프 시술, 일반 경구 피임약 등을 제공하고 있다.

침묵하고 감추고, 권리를 없애는 방식. 그리고 적절한 지식을 제공받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를 주는 방식. 무엇이 나은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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