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튿날 아침,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독촉전화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꺽꺽 울음이 나왔다. 익숙한 숨막힘에 서러움이 밀려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정지했던 휴대폰을 풀자 약정비와 기본요금, 각종 공과금과 연체료가 불어나 있었다. 너무 많은 영수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꿈에서 나를 쫓아왔던 사람처럼. 며칠 전 꿈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나는 그를 피해 논밭을 건너 초록색 들판까지 달려갔다. 들판 위에는 초록빛 문이 보였다.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문 안에는 희미한 초록빛에 반사된 사람들이 있었다. 유령처럼 발이 떠 있는 사람들은 신나는 표정으로 농구를 하거나 풍선을 불었다. 이질적인 언어를 쓰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나를 잡으러 온 사람은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잠시 서 있다가 돌아갔다. 왜 이곳은 들어오지 않는 거지, 혹시 위험한 곳인가 생각했다. 나를 쫓던 사람이 소리쳤다. “너 거기에 계속 있으면 어쩌려고? 거기는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곳이야. 어차피 곧 나오게 될 거야.” 그의 말처럼 초록세상은 바깥세상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흘렀다. 너무 빨리 시간이 흘러서 이곳의 10년은 바깥세상의 5분이었다. 나는 기꺼이 쓸모없고 무의미한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지내기로 결정했다. 꿈에서 10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초록세상 바깥으로 나왔다. 여전히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촉전화를 받고 이 꿈이 생각났다. 나를 쫓아온 사람은 시간(혹은 고지서)이라는 유령 같다. 어떤 사람은 내게 인도에 있으면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간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10년이 그곳에서는 1년처럼 지나가버린다고. 인도에서의 시간이 너무 편안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이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커리어를 쌓아야지, 그곳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면 어떡하냐는 걱정이었다. 그 사람의 말은 사실이다. 인도에서 시간의 속도는 빠르다. 다 먹은 생수병을 잘라 과일과 잼을 담아두고, 콩을 불려서 밥을 지어 먹으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시계와 달력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을 의식할 일도, 시간을 쪼개 쓰는 일도 필요 없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다시 쫓기는 느낌이다. 밀린 고지서 같은 과업을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하는 시간이 아득하다. 초록세상과는 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달력과 시계가 필수다. 사람들은 있던 곳을 떠나버리는 게 쉬운 일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떠나는 게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익숙한 땅에서 익숙한 언어와 패턴대로 살면 성취가 보장되는, 수많은 선택지와 기회비용이 묻힌 땅을 떠나는 건 분명 어떤 포기, 양보 같은 거다. 꿈에서 본 초록세상에서는 누구도 영화를 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거기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아. 뼈 빠지게 월화수목금 일하는 사람들을 토요일에 그 영화를 보러 오게 해서 토요일만 살아 있게 하고 싶지 않아.” 이어서 버벅거리며 느리게 말했다. “인생이 아무리 시궁창이고 불난 집이라 해도, 무궁한 경우의 수들과 우연놀이가 재밌으니까 사는 거지, 시간을 노련하게 제어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니까.”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초록에 다시 들어가고 싶다. 그곳이 내겐 현실이다.
칼럼 |
[2030 잠금해제] 쓸모없는 초록 / 홍승희 |
예술가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튿날 아침,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독촉전화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꺽꺽 울음이 나왔다. 익숙한 숨막힘에 서러움이 밀려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정지했던 휴대폰을 풀자 약정비와 기본요금, 각종 공과금과 연체료가 불어나 있었다. 너무 많은 영수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꿈에서 나를 쫓아왔던 사람처럼. 며칠 전 꿈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나는 그를 피해 논밭을 건너 초록색 들판까지 달려갔다. 들판 위에는 초록빛 문이 보였다.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문 안에는 희미한 초록빛에 반사된 사람들이 있었다. 유령처럼 발이 떠 있는 사람들은 신나는 표정으로 농구를 하거나 풍선을 불었다. 이질적인 언어를 쓰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나를 잡으러 온 사람은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잠시 서 있다가 돌아갔다. 왜 이곳은 들어오지 않는 거지, 혹시 위험한 곳인가 생각했다. 나를 쫓던 사람이 소리쳤다. “너 거기에 계속 있으면 어쩌려고? 거기는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곳이야. 어차피 곧 나오게 될 거야.” 그의 말처럼 초록세상은 바깥세상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흘렀다. 너무 빨리 시간이 흘러서 이곳의 10년은 바깥세상의 5분이었다. 나는 기꺼이 쓸모없고 무의미한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지내기로 결정했다. 꿈에서 10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초록세상 바깥으로 나왔다. 여전히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촉전화를 받고 이 꿈이 생각났다. 나를 쫓아온 사람은 시간(혹은 고지서)이라는 유령 같다. 어떤 사람은 내게 인도에 있으면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간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10년이 그곳에서는 1년처럼 지나가버린다고. 인도에서의 시간이 너무 편안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이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커리어를 쌓아야지, 그곳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면 어떡하냐는 걱정이었다. 그 사람의 말은 사실이다. 인도에서 시간의 속도는 빠르다. 다 먹은 생수병을 잘라 과일과 잼을 담아두고, 콩을 불려서 밥을 지어 먹으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시계와 달력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을 의식할 일도, 시간을 쪼개 쓰는 일도 필요 없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다시 쫓기는 느낌이다. 밀린 고지서 같은 과업을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하는 시간이 아득하다. 초록세상과는 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달력과 시계가 필수다. 사람들은 있던 곳을 떠나버리는 게 쉬운 일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떠나는 게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익숙한 땅에서 익숙한 언어와 패턴대로 살면 성취가 보장되는, 수많은 선택지와 기회비용이 묻힌 땅을 떠나는 건 분명 어떤 포기, 양보 같은 거다. 꿈에서 본 초록세상에서는 누구도 영화를 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거기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아. 뼈 빠지게 월화수목금 일하는 사람들을 토요일에 그 영화를 보러 오게 해서 토요일만 살아 있게 하고 싶지 않아.” 이어서 버벅거리며 느리게 말했다. “인생이 아무리 시궁창이고 불난 집이라 해도, 무궁한 경우의 수들과 우연놀이가 재밌으니까 사는 거지, 시간을 노련하게 제어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니까.”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초록에 다시 들어가고 싶다. 그곳이 내겐 현실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