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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4 18:02 수정 : 2018.11.05 13:49

이은지
문학평론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사내 직원들을 상대로 벌인 기행에 가까운 갑질이 폭로되어 화제다. 인격살인에 가까운 폭행과 동물학대도 서슴지 않으며 피고용인들을 처참히 짓밟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을 경악시켰다. 그는 피고용인에 대한 고용주의 권리를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여겨온 듯하다.

언론은 그의 만행을 추가로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그만큼 그에게 당한 피해자가 많다는 증거이기는 하겠으나, 한 인물의 동일한 성정에서 비롯된 유사 행위를 거듭 보도하는 것이 시청률이나 조회수에 대한 맹목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어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양진호 회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동안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기이한 갑질을 수없이 접해왔다. 가깝게는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이 있었고, 멀게는 한 대학교수가 대학원생을 노예처럼 부리며 인분까지 먹였다 하여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제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으로 선정된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주인공 안나는 자신이 일하는 중고거래 앱 ‘우동마켓’의 대표로부터 특수한 임무를 맡게 된다. 수많은 상품을 새것인 채로 싸게 올려 우동마켓 메인화면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사용자 ‘거북이알’의 정체를 파악해 오라는 것이다. 안나는 대표가 쥐여준 돈으로 거북이알이 올린 커피머신을 거래하며 그를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듣게 된다. 대기업 기획팀에서 일하는 거북이알은 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려 월급을 현금이 아닌 포인트로 받게 되었고, 할 수 없이 포인트로 구매한 물건을 중고마켓에 되팔아 현금을 융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웃픈’ 장면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두 인물의 고용주가 부린 갑질 때문이다. 우동마켓 대표가 안나에게 미션을 주면서 내세운 논리는 거북이알이 어뷰저이거나 그가 훔친 물건을 파는 것이면 어쩌냐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단지 거북이알이라는 아이디와 프로필 사진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나와 거북이알의 만남은 갑질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 철저히 을의 지위로서 맺게 되는 인연 또한 일상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사건을 통해서든 창작물을 통해서든, 한 사회가 반복적으로 생산해내는 인물 및 관계의 전형성에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거듭해서 목도하는 갑질의 전형으로 기업의 오너가 소환되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는 고용주이고, 이윤을 창출하여 이를 급여로 지불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피고용인들 대다수는 부모의 지원이 없다면 오로지 그가 지불하는 급여에만 매달려 생계를 연명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의 권력은 돈과 그 분배구조, 이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부터 오는 것이다.

양진호 회장의 갑질 동영상을 놓고 어느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나온 말이 기억난다. 진행자는 그가 전형적인 금수저 타입이 아니고 자수성가한 사업가여서 오히려 일반인들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멘트를 뒤집어보면 그의 갑질은 전형적인 금수저나 할 법한 행위라는 말이고, 이를 다시 뒤집어보면 금수저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슬프게 들렸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그래도 되는 사람은 따로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그래도 되는 사람이 있어도 되는 것처럼 부지중에 사고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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