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나는 열번 중 한번꼴로 전화를 받았다. 분명 엄마는 술을 마셨을 거기 때문이다. 나에게 엄마의 이미지는 그 자리에서 매일 술 마시는 사람. 엄마에게 내 이미지는 여행을 즐기는 탐험가였다. 승희 이번엔 어디야? 나 인도에 있어, 엄마. 승희야 어디야? 태국. 내가 한국을 떠나 이곳저곳 다닌다고 했을 때,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신기해하곤 했다. “엄마 나랑 인도 갈래?” 뜬금없는 내 질문에 엄마는 흔쾌히 가고 싶다고 답했다. 좋아, 모험하고 싶어. 그렇게 나는 엄마의 첫 해외여행 가이드가 되었다. 먼저 한 일은 여권 만들기. 우선 여권사진을 찍으려 사진관을 찾았다. 자주색 코트를 입고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엄마는 카메라 앞에 앉았다. “눈에 힘주시고, 턱 당기고, 오른쪽으로 살짝, 그만요!” 사진기사의 요구가 길어질수록 엄마의 표정은 어색해졌다. 화면에 얼굴이 나오자 엄마는 미간 주름을 가리키며 할머니가 다 됐다고 말했다. 엄마의 충격을 눈치챘는지 사진기사는 친절하게 포토샵으로 사진을 손봤다. 기울어진 어깨는 수평으로, 살짝 보이는 미간 주름은 연하게. 엄마는 인쇄된 여권사진을 가방에 가지런히 넣었다. 여권을 신청하러 구청에 갔을 때 엄마의 지문은 몇번이고 오류가 났다. 뜨거운 냄비와 음식을 맨손으로 만지던 습관 때문인지 엄마의 지문은 닳아 있었다. 여권이 나오던 날 엄마는 혼자 여권을 받아 왔다. 하루 종일 여권을 보던 엄마는 여권 번호까지 완벽히 외웠다. 인도에서 엄마는 ‘아난다'라고 불렸다.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엄마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마이 네임 이즈 아난다. 아이엠 뮤지션. 엄마가 겁이 많아 여행이 힘들 거라는 다른 지인들의 염려와 달리 아난다는 인도에서 내내 즐거워했다. 길가에서 당나귀에게 “당나귀야 안녕, 나 좀 봐줘”라고 말 걸고, 원숭이를 볼 때도 “원숭이야 안녕, 넌 뭘 먹니?” 심지어 나무에게도 말을 걸었다. 영어를 못 해서 걱정된다던 아난다는 처음 보는 인도 택시기사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기어코 말을 걸었다. 아 유 해피? 내게 인도는 여행지라기보다 또 다른 거주지다. 내 방에 엄마를 초대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아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난다는 4년을 만난 연인에게 폭행을 당했다. 나는 당장 그를 살인미수, 데이트폭력범으로 감옥에 처넣고 싶지만 많은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그렇듯 아난다는 그를 동정하곤 했다. 자신이 맞을 짓을 했다는 말도 했다. “엄마 정신 차려. 정신 붙잡아.” 엄마랑 붙어 있는 내내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말이다. 인도에서 물었다. “엄마는 왜 해외여행을 안 갔었어?” “엄두가 안 났지.” 생각해보니 내 질문은 조금 뻔뻔했다. 아난다는 내 나이일 때 나와 언니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게 여행은 간편한 선택지여도 엄마에겐 엄두 나지 않던 것일지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틀째. 문제는 여전히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어제도 엄마가 가해자에게 전화하려는 걸 막느라 다퉜다. 여행은 사람을 드라마틱하게 바꾸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은 아니다. 다만 아난다에게 다른 선택지가 생기길 바란다. 슬픔을 잊기 위한 술, 맞으면서도 절실하게 원하던 사랑이 아닌 다른 순간도 가능하길. 여행을 다녀온 뒤 바뀐 점은 있다. 엄마는 나에게 술, 데이트폭력 피해자만이 아닌, 모험을 좋아하는 아난다다.
칼럼 |
[2030 잠금해제] 아난다의 모험 / 홍승희 |
예술가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나는 열번 중 한번꼴로 전화를 받았다. 분명 엄마는 술을 마셨을 거기 때문이다. 나에게 엄마의 이미지는 그 자리에서 매일 술 마시는 사람. 엄마에게 내 이미지는 여행을 즐기는 탐험가였다. 승희 이번엔 어디야? 나 인도에 있어, 엄마. 승희야 어디야? 태국. 내가 한국을 떠나 이곳저곳 다닌다고 했을 때,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신기해하곤 했다. “엄마 나랑 인도 갈래?” 뜬금없는 내 질문에 엄마는 흔쾌히 가고 싶다고 답했다. 좋아, 모험하고 싶어. 그렇게 나는 엄마의 첫 해외여행 가이드가 되었다. 먼저 한 일은 여권 만들기. 우선 여권사진을 찍으려 사진관을 찾았다. 자주색 코트를 입고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엄마는 카메라 앞에 앉았다. “눈에 힘주시고, 턱 당기고, 오른쪽으로 살짝, 그만요!” 사진기사의 요구가 길어질수록 엄마의 표정은 어색해졌다. 화면에 얼굴이 나오자 엄마는 미간 주름을 가리키며 할머니가 다 됐다고 말했다. 엄마의 충격을 눈치챘는지 사진기사는 친절하게 포토샵으로 사진을 손봤다. 기울어진 어깨는 수평으로, 살짝 보이는 미간 주름은 연하게. 엄마는 인쇄된 여권사진을 가방에 가지런히 넣었다. 여권을 신청하러 구청에 갔을 때 엄마의 지문은 몇번이고 오류가 났다. 뜨거운 냄비와 음식을 맨손으로 만지던 습관 때문인지 엄마의 지문은 닳아 있었다. 여권이 나오던 날 엄마는 혼자 여권을 받아 왔다. 하루 종일 여권을 보던 엄마는 여권 번호까지 완벽히 외웠다. 인도에서 엄마는 ‘아난다'라고 불렸다.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엄마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마이 네임 이즈 아난다. 아이엠 뮤지션. 엄마가 겁이 많아 여행이 힘들 거라는 다른 지인들의 염려와 달리 아난다는 인도에서 내내 즐거워했다. 길가에서 당나귀에게 “당나귀야 안녕, 나 좀 봐줘”라고 말 걸고, 원숭이를 볼 때도 “원숭이야 안녕, 넌 뭘 먹니?” 심지어 나무에게도 말을 걸었다. 영어를 못 해서 걱정된다던 아난다는 처음 보는 인도 택시기사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기어코 말을 걸었다. 아 유 해피? 내게 인도는 여행지라기보다 또 다른 거주지다. 내 방에 엄마를 초대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아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난다는 4년을 만난 연인에게 폭행을 당했다. 나는 당장 그를 살인미수, 데이트폭력범으로 감옥에 처넣고 싶지만 많은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그렇듯 아난다는 그를 동정하곤 했다. 자신이 맞을 짓을 했다는 말도 했다. “엄마 정신 차려. 정신 붙잡아.” 엄마랑 붙어 있는 내내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말이다. 인도에서 물었다. “엄마는 왜 해외여행을 안 갔었어?” “엄두가 안 났지.” 생각해보니 내 질문은 조금 뻔뻔했다. 아난다는 내 나이일 때 나와 언니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게 여행은 간편한 선택지여도 엄마에겐 엄두 나지 않던 것일지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틀째. 문제는 여전히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어제도 엄마가 가해자에게 전화하려는 걸 막느라 다퉜다. 여행은 사람을 드라마틱하게 바꾸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은 아니다. 다만 아난다에게 다른 선택지가 생기길 바란다. 슬픔을 잊기 위한 술, 맞으면서도 절실하게 원하던 사랑이 아닌 다른 순간도 가능하길. 여행을 다녀온 뒤 바뀐 점은 있다. 엄마는 나에게 술, 데이트폭력 피해자만이 아닌, 모험을 좋아하는 아난다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