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첫 촬영을 하던 날. 방 안에 있는 조명 두개를 양옆에 켜고 이리저리 핸드폰 카메라의 구도를 잡았다. 촬영된 영상에선 나의 말버릇 ‘어, 아, 이제, 그, 이런, 그래서, 그리고’가 반복됐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에, 눈동자는 위아래, 양옆을 왔다 갔다 하다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다. 영상에서 잘라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힘이 빠졌다. 역시 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도 적성에 맞아야 하는 건가 생각했다. 내 노트북 자판에서 ㅂ자는 구멍이 나 있다. 노트북 자판을 너무 세게 눌러서 그렇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자판을 부술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쓸 때는 그렇게도 격해지고 빠르게 눌렀던 이야기들이 왜 카메라에 얼굴을 대고 전하려 하니까 힘들고 떨릴까?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일은 외부에서 인터뷰를 할 때가 전부였다. 내가 뭐라고 말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영상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서 편집되고 제목이 뽑히고 음악이 깔리고 그림 자막이 들어갔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녀’ 식의 제목이 달리기도 했고, 편집 수정이나 내용 정정을 요청해도 반응이 느렸다. 그런 그들의 카메라 앞에서 나는 통제받고 있다고 느꼈다. 카메라 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고 이 영상을 통제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거라는 느낌이 남아 있어서일까. 자꾸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기운이 빠지고 공포감이 먼저 올라왔다. 신기하게도 이런 기운 빠지는 느낌은 편집을 하면서 사라졌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자르고, 원하는 부분은 느리게 편집한다. 원하는 음악을 넣거나 아무 소리를 넣지 않고, 말을 더듬으면 자막으로 빼먹은 내용을 보충한다. 요즘은 점술 상담을 받을 때 여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고 임신할 것으로 해석되는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해석의 권력을 쥔 이들의 말들을 재해석하고 편집하면서 마우스를 쥔 내 손에 마치 드래곤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편집할 수 있는 권력은 해석할 권력만큼이나 실질적인 힘이라고 느낀다. 전문 영상 프로그램도 있지만, 요즘은 무료 앱으로 핸드폰 안에서도 편집이 가능하다. 내 서사, 장면을 편집하는 체험만으로도 어깨가 펴진다. 촬영하고 편집하고 공유하고 싶은 영상이 많아졌다. 긴 가발을 썼을 때와 가발을 벗고 짧은 머리카락일 때 내 모습을 비교하고 여자란 대체 무엇인지 생각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요즘의 새벽 영상도 공유하고 싶다. 조울증 약을 먹으면서 느끼는 몸과 기분의 변화를 공유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흐물흐물한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공유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영상도. 누구를 혐오하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는 시시콜콜한 예능 놀이가 생긴 느낌이다. 자기만의 방을 이야기한 버지니아 울프가 지금 시대를 살았다면 유튜브 방송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자기만의 방에서,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상상력을 지킬 수 있는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집하고 발화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역시 영상은 이야기를 전하기에 비효율적이라고 느끼고 글을 썼을까. 아니면 효율적이지만 효과적이진 않다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담고 싶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공유할 생각에 즐거운 요즘이다. 다른 방들도 구경하고 싶다.
칼럼 |
[2030 잠금해제] 자르고 붙이고 늘리고 지우고 / 홍승희 |
예술가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첫 촬영을 하던 날. 방 안에 있는 조명 두개를 양옆에 켜고 이리저리 핸드폰 카메라의 구도를 잡았다. 촬영된 영상에선 나의 말버릇 ‘어, 아, 이제, 그, 이런, 그래서, 그리고’가 반복됐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에, 눈동자는 위아래, 양옆을 왔다 갔다 하다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다. 영상에서 잘라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힘이 빠졌다. 역시 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도 적성에 맞아야 하는 건가 생각했다. 내 노트북 자판에서 ㅂ자는 구멍이 나 있다. 노트북 자판을 너무 세게 눌러서 그렇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자판을 부술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쓸 때는 그렇게도 격해지고 빠르게 눌렀던 이야기들이 왜 카메라에 얼굴을 대고 전하려 하니까 힘들고 떨릴까?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일은 외부에서 인터뷰를 할 때가 전부였다. 내가 뭐라고 말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영상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서 편집되고 제목이 뽑히고 음악이 깔리고 그림 자막이 들어갔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녀’ 식의 제목이 달리기도 했고, 편집 수정이나 내용 정정을 요청해도 반응이 느렸다. 그런 그들의 카메라 앞에서 나는 통제받고 있다고 느꼈다. 카메라 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고 이 영상을 통제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거라는 느낌이 남아 있어서일까. 자꾸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기운이 빠지고 공포감이 먼저 올라왔다. 신기하게도 이런 기운 빠지는 느낌은 편집을 하면서 사라졌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자르고, 원하는 부분은 느리게 편집한다. 원하는 음악을 넣거나 아무 소리를 넣지 않고, 말을 더듬으면 자막으로 빼먹은 내용을 보충한다. 요즘은 점술 상담을 받을 때 여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고 임신할 것으로 해석되는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해석의 권력을 쥔 이들의 말들을 재해석하고 편집하면서 마우스를 쥔 내 손에 마치 드래곤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편집할 수 있는 권력은 해석할 권력만큼이나 실질적인 힘이라고 느낀다. 전문 영상 프로그램도 있지만, 요즘은 무료 앱으로 핸드폰 안에서도 편집이 가능하다. 내 서사, 장면을 편집하는 체험만으로도 어깨가 펴진다. 촬영하고 편집하고 공유하고 싶은 영상이 많아졌다. 긴 가발을 썼을 때와 가발을 벗고 짧은 머리카락일 때 내 모습을 비교하고 여자란 대체 무엇인지 생각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요즘의 새벽 영상도 공유하고 싶다. 조울증 약을 먹으면서 느끼는 몸과 기분의 변화를 공유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흐물흐물한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공유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영상도. 누구를 혐오하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는 시시콜콜한 예능 놀이가 생긴 느낌이다. 자기만의 방을 이야기한 버지니아 울프가 지금 시대를 살았다면 유튜브 방송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자기만의 방에서,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상상력을 지킬 수 있는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집하고 발화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역시 영상은 이야기를 전하기에 비효율적이라고 느끼고 글을 썼을까. 아니면 효율적이지만 효과적이진 않다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담고 싶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공유할 생각에 즐거운 요즘이다. 다른 방들도 구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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