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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8 17:56 수정 : 2019.09.09 14:11

곽승희
독립출판 <월간퇴사> 제작자

<월간퇴사>를 통해 2030의 퇴사론을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을 땐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관리자 위치에서 퇴사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최근 새로 시작한 일에서, 입사 15일 만에 퇴사 의사를 밝힌 직원을 앞에 두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퇴사자를 만나면 무조건 축하부터 한다는 나의 공언은 진짜 공허한 말이 돼버렸다.

함께 퇴사론 작업을 하는 지인의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됐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퇴사의 속성은 불합리한 기존 조직 문화에서 버티려고 노력하다가 억눌리고 반항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단말마 같은 종류라고. 이번 경우, 퇴사의 원인인 기존 조직 문화라고 할 만한 게 없지 않냐고. 왜냐면 이 조직은 출범한 지 한달 정도 된 때였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초단기 사회초년생 퇴사자를 양성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그는 왜 이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출범 한달째인 조직은 새 근로자의 안착을 위해 급여 외에 어떤 부분을 마련해야 할까. 그가 퇴사하기 전 요청했다. 내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당신의 퇴사 이유를 최대한 자세하고 솔직하게 알려달라고. 그의 개인적인 상황이나 성향을 고려하여, 이후 사람을 뽑을 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점을 몇가지 정했다.

돌이켜보면 극과 극이라 눈에 잘 띄는 것 같다. 나의 첫 퇴사자처럼 빠르게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는 퇴준생이나, 내가 만난 여러 퇴사자처럼 소진 후 인생 리셋을 선언하는 경우. 즐겨 보는 퇴사 주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이들이 눈에 띈다. 입사 하루 만에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 잦은 퇴사가 고민인 사람, 퇴사자의 적은 관리자이거나 퇴사는 인생의 자유라는 분위기. 그러다 보니 간혹 잊는다. 밥벌이와 소명의식과 자기발전 사이 어디쯤에서 꾸준히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내가 만난 노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과 일터를 사랑했다. 일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더 나은 회사를 만들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길 멈추지 않았다. 각각이 처한 상황에 불합리나 부조리가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대중문화 콘텐츠나 청년 세대가 활동하는 온라인에서 노력의 온도는 다르다. 해봤자 스스로 생명력을 깎아먹고, 남에게는 호구 잡힐 위험성만 큰 ‘노오력’이다.

언제부터인가 최선을 다하는 게 바보 같은 일처럼 되는 것 같다. 아마 우리 세대가 직간접적으로 접한 여러 사례 때문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일하다가 토사구팽당하거나, 잘리거나, 건강을 잃는 사람들을 보며 많은 이는 학습한다. 아, 하마터면 끝까지 최선을 다할 뻔했다. 게다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노오력을 해도 얻을까 말까 하지만,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가족의 부 덕분에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일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렇게 노오력해도 안 되는데, 너는 된다니. 억울함은 공통의 감정이다. 그런데 그 개인에게 노력하지 말라고 할 수 있나? 나는 노오력인데 너는 조금 노력했다고, 사과 개수 더하듯 노력의 양을 산출할 수 있나? 너의 가능성은 특권이기 때문에 노력해선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나?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러운 세상이고, 원래 그런 세상이라 욕하면 끝인가?

노력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이는 정말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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