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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5 17:15 수정 : 2019.09.15 19:57

박진영
경제 미디어 <어피티> 대표

“거짓의 대가.”(The cost of lies.) 체르노빌 원전 사태를 다뤄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에이치비오(HBO)의 명작, <체르노빌>의 첫 대사다. 이 대사는 이번주, 은행에 들이닥칠 사건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

오는 19일부터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에 연계된 디엘에프(DLF)의 만기가 돌아온다. 이날을 기점으로 가입자는 원금의 상당 부분이 날아갈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예견된 일이었다. 디엘에프는 국외 국채금리 연계 파생상품이다. 금리가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수익을 얻지만, 범위 밖으로 내려가면 손실이 발생한다.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가 -0.65% 정도면 원금 대부분을 잃는데, 지난달 말 기준 -0.72%까지 떨어졌다. 이 경우 투자자에겐 약 98%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수많은 디엘에프·디엘에스(DLS) 상품이 만기가 된다.(DLF와 DLS는 펀드와 증권의 차이다.)

자산운용사와 증권사가 이 상품을 굴리지만 판매는 대부분 은행이 한다. 이번 사건의 주요 책임자로 지목된 곳도 은행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은행은 위험성이 높은 디엘에프·디엘에스를 고객에게 “안정적인 투자상품”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또 “은행이 보장하는 안전자산”이라는 표현으로 상품의 위험성을 축소했다. 불완전판매의 전형이다.

사건의 신호는 명확했다.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이 디엘에프와 같은 고위험 파생상품을 판매한 은행 일부를 대상으로 미스터리쇼핑을 했더니, 75%가 불완전판매 검사에서 ‘미흡’과 ‘저조’ 등급을 받았다. 특히 고령자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심각했다. 디엘에프·디엘에스 역시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만 60살 이상 고령자다. 만 80살 이상이 100명이 넘고, 만 90살 이상 초고령자도 11명에 이르렀다. 고령자의 평균 투자금액은 2억7천만원으로 전체 평균 투자금액보다 2천만원 높다.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모아둔 돈이 위험한 투자상품에 맡겨진 셈이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뒤, 한 시중은행 직원은 ‘블라인드’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뭐가 근본적 문제인지 다들 알고 있잖아. 완전판매해서는 본부 할당 목표를 채울 수 없어.” 그 밑으로 공감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최근 은행권의 직원 성과 측정 기준은 증권사나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해서 얻는 판매수수료, 즉 ‘비이자이익’에 맞춰져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이자이익’이 줄어든 게 이유다. 이자이익은 대출이자로 들어온 금액에서 예금이자로 나가는 금액을 뺀 마진금액을 말한다. 은행권은 이자이익이 줄어든 만큼 비이자이익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이자이익을 위해 파는 상품 대부분이 디엘에프·디엘에스와 같은 고위험 투자상품이다. 은행은 경쟁적으로 판매 목표를 늘리고, 창구 직원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불완전판매를 감수한다. 피해는 은행 직원을 신뢰한 고객이 떠안게 된다.

이번 사태는 제2의 키코(KIKO)로 불린다. 키코는 시중은행이 2007년부터 국내 수출기업에 집중적으로 판매한 상품으로, 가입한 중소기업 중 절반이 피해를 봤고 235개 기업이 도산했다. 키코는 디엘에프와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의 상품이다. 차이점은 기업에서 개인으로 피해자가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정말로 위험한 건 거짓을 계속 듣다 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는다는 거죠.” <체르노빌>의 두번째 대사다. 은행권은 지난해 말부터 윤리체계를 지키겠다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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