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월간퇴사> 제작자 다시 회사원이 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선거 빚만 아니었다면 독립활동가로 자유롭게 살고 있었으리라. 퇴사론을 이용해 관행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일 조직을 혁신한다는 큰 꿈의 시작점을 지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가난만큼 무서운 게 없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을 확인하고 사색이 되어버린 어느 날을, 다신 겪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빚도 그렇다. 구의원 선거에 무소속 출마한 덕에 ‘청년 정치인’이란 스포트라이트를 어느 정도 받아먹었으니, 기여를 해야 할 텐데. 선거철도 아니고, 정당인도 아닌 내가 뭐라도 하려면 일단 생활비부터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운 좋게 일타쌍피가 가능한 직업군에 인연이 닿았다. 새로 만난 직업의 이름은 ‘청년공간 매니저’다. 공간을 기반으로 청년정책 사업을 수행하는 일이다. 6개월 회사원 기간 중 반은 서울시 금천구 청년 활동 공간 ‘청춘삘딩’에서 근무했다. 사실 내겐 익숙한 곳이다. 3년 전 청춘삘딩의 커뮤니티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독립출판 <월간퇴사> 종이책 인쇄비를 지원받은 것이다. 사업 주체 쪽은 여러가지 공익성을 고려해 선정했겠지만, 가족 아닌 존재가 돈을 주며 ‘실패해도 괜찮으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봐!’ 지지한 일은 처음이었다. 청년정책 실행이란 큰 흐름의 한 결과물임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를 위해 세금이 쓰인다는 감각은 매우 신선했다.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2층 창가 바 의자에 앉으면 스타벅스 바책상이 부럽지 않았다. 3층 공유주방에선 좁은 편의점 매대 대신 진짜 부엌처럼 넓은 식탁과 사람 냄새 나는 화분이 깔렸다. 돈이 없어도 눈만큼은 배부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청춘삘딩은 청년 당사자들의 필요로 생겨난 곳이다. 지역에서 청소년 교육 활동을 해온 청년단체는 더 많은 일을 이뤄내기 위해 공간이 필요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니 이들은 사용률 낮은 청소년 독서실의 기능을 전환하는 일에 나섰다. 운영비를 벌기 위해 공모 사업을 따오고 행정의 문을 두드렸다. 골목 끄트머리에 있던 3층짜리 외로운 섬은 청소년과 청년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활동 중심지로 바뀌었다. 청년이 청년정책의 수행자이자 운영 주체이기에 실효성 큰 지원 사업(Do it)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었다. 요즘 것들의 감성에 어울리는 각종 인테리어 장치와 문구들로 청춘삘딩이 채워졌다. 청년정책의 수혜자에서 수행자가 되자 많은 것이 들린다. 정식 개관한 지 한달 반 된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에 출근하면서부터 ‘공간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는다. ‘청년 세대가 관계망 속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사업을 수행하는 곳’이라고 서두를 던진 후 실제 진행하는 행사들을 설명하면 청년 대부분은 한번에 이해한 기색이다. 하지만 비청년들에게는 한번 더 설득을 거쳐야 한다. 마을 공동체를 비롯해 지연·학연·혈연으로 관계망을 형성하는 게 자연스러운 장년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이라 이르는 지금 세대가 각자도생 사회 속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 한번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사회에서 실패해도 괜찮은 기회를 얻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과거의 청년 세대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청년 세대를 신경 쓰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언제쯤이면 청년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올까.
칼럼 |
[2030 리스펙트] 청년공간이 신기하지 않기를 / 곽승희 |
독립출판 <월간퇴사> 제작자 다시 회사원이 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선거 빚만 아니었다면 독립활동가로 자유롭게 살고 있었으리라. 퇴사론을 이용해 관행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일 조직을 혁신한다는 큰 꿈의 시작점을 지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가난만큼 무서운 게 없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을 확인하고 사색이 되어버린 어느 날을, 다신 겪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빚도 그렇다. 구의원 선거에 무소속 출마한 덕에 ‘청년 정치인’이란 스포트라이트를 어느 정도 받아먹었으니, 기여를 해야 할 텐데. 선거철도 아니고, 정당인도 아닌 내가 뭐라도 하려면 일단 생활비부터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운 좋게 일타쌍피가 가능한 직업군에 인연이 닿았다. 새로 만난 직업의 이름은 ‘청년공간 매니저’다. 공간을 기반으로 청년정책 사업을 수행하는 일이다. 6개월 회사원 기간 중 반은 서울시 금천구 청년 활동 공간 ‘청춘삘딩’에서 근무했다. 사실 내겐 익숙한 곳이다. 3년 전 청춘삘딩의 커뮤니티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독립출판 <월간퇴사> 종이책 인쇄비를 지원받은 것이다. 사업 주체 쪽은 여러가지 공익성을 고려해 선정했겠지만, 가족 아닌 존재가 돈을 주며 ‘실패해도 괜찮으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봐!’ 지지한 일은 처음이었다. 청년정책 실행이란 큰 흐름의 한 결과물임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를 위해 세금이 쓰인다는 감각은 매우 신선했다.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2층 창가 바 의자에 앉으면 스타벅스 바책상이 부럽지 않았다. 3층 공유주방에선 좁은 편의점 매대 대신 진짜 부엌처럼 넓은 식탁과 사람 냄새 나는 화분이 깔렸다. 돈이 없어도 눈만큼은 배부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청춘삘딩은 청년 당사자들의 필요로 생겨난 곳이다. 지역에서 청소년 교육 활동을 해온 청년단체는 더 많은 일을 이뤄내기 위해 공간이 필요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니 이들은 사용률 낮은 청소년 독서실의 기능을 전환하는 일에 나섰다. 운영비를 벌기 위해 공모 사업을 따오고 행정의 문을 두드렸다. 골목 끄트머리에 있던 3층짜리 외로운 섬은 청소년과 청년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활동 중심지로 바뀌었다. 청년이 청년정책의 수행자이자 운영 주체이기에 실효성 큰 지원 사업(Do it)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었다. 요즘 것들의 감성에 어울리는 각종 인테리어 장치와 문구들로 청춘삘딩이 채워졌다. 청년정책의 수혜자에서 수행자가 되자 많은 것이 들린다. 정식 개관한 지 한달 반 된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에 출근하면서부터 ‘공간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는다. ‘청년 세대가 관계망 속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사업을 수행하는 곳’이라고 서두를 던진 후 실제 진행하는 행사들을 설명하면 청년 대부분은 한번에 이해한 기색이다. 하지만 비청년들에게는 한번 더 설득을 거쳐야 한다. 마을 공동체를 비롯해 지연·학연·혈연으로 관계망을 형성하는 게 자연스러운 장년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이라 이르는 지금 세대가 각자도생 사회 속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 한번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사회에서 실패해도 괜찮은 기회를 얻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과거의 청년 세대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청년 세대를 신경 쓰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언제쯤이면 청년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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