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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광주시 인근에서 한 화물트럭이 식용개를 운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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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특집
개고기 논쟁사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박근혜 의원(새누리당)의 대통령선거 출정식에서 낯선 풍경이 눈에 띄었다. 한 젊은 여성이 빨간 글씨로 써진 펼침막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개 먹는 나라 노(NO)!’. 60대 남성 둘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여기 와서 무슨… 성경에도 동물을 다스리라고 했어.”
“뭐라고 하지 마, 빨갱이만 작살내면 돼.”
이날 출정식에는 동물보호단체인 ‘생명체학대방지포럼’ 회원들이 나와 이번 대선에 개고기 문제 등 동물보호정책을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개를 끌고 온 다른 60대 남성은 반가워하며 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개고기를 둘러싼 시선이 변하고 있다. 동물보호에 대한 요구는 제도권 정치의 영역으로 입성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나경원 후보가 동물보호단체의 요구로 동물정책을 공약한 데 이어 지난 4월 총선 때에는 10여명의 후보가 동물공약에 대해 묻는 동물보호단체의 질의에 답변을 보냈다. 녹색당은 3대 동물보호단체와 생명권·동물정책 협약을 체결했다.
2001년 <문화방송>(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손석희 아나운서와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말다툼은 11년 전 개고기에 대한 논쟁 지평을 잘 보여준다.
손석희=한국인들이 개를 잡는 과정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본 적이 있나?
바르도=취재 필름과 사진을 갖고 있다. 프랑스 축구단뿐만 아니라 월드컵에 참가하는 다른 나라 축구단 및 전세계에 알리겠다.
손석희=당신의 비판은 문화적인 상대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가 아닌지….
바르도=개고기 식용은 문화가 아니라 야만이다. 아름다운 관습의 나라 한국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서구의 동물보호론자들이 개를 먹는 한국인을 야만인으로 보는 시각을 맞받아친 손 아나운서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열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앞서 쫓겨난 보신탕집 철퇴의 역사에 비추어 두 사람의 논쟁이 크게 회자된 게 2002년 한·일월드컵 직전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개고기 논쟁이 벌어지면, 정작 동물의 존엄성에 대한 논의는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고 공격적 민족주의 성향만 발현하곤 했다. 개고기는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인의 의식에 깊이 각인된 민족주의 인식의 기표였다. 더욱이 친미 성향의 군사정부는 1983년 보신탕집을 서울올림픽에 앞서 서울 도심에서 몰아내지 않았던가. 2002년에도 누리꾼들은 미국 방송 <엔비시>(NBC) ‘투나이트쇼’의 진행자 제이 레노가 농담으로 개고기를 언급하자 해당 방송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으로 화답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개고기 먹는 나라는 야만”
“음식문화의 차이”를 둘러싼
민족주의 다툼으로 인식
장수동 개지옥 사건 이후
사육·도축문제 알려지면서
“투우, 푸아그라 금지처럼
동물복지 차원에서 논의를”
무엇이 달라졌을까. 우선 국내엔 1만5천~2만곳의 개 농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농장에 500마리가 산다고 가정하면 약 500만마리가 살고 있다는 게 대한육견협회의 추정이다. 정확하진 않다. 개고기는 축산물이 아니어서 정부가 관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들어 동물보호단체는 급속히 몸을 불려나갔다. 한 동물보호단체의 회비를 내는 진성회원 수는 국내 유명 환경단체에 필적할 정도가 됐다. 최근 들어 가장 성장하는 시민운동은 동물보호운동이다.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가 말했다. “2006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장수동 개지옥 사건의 영향이 컸죠. 우리들이 먹는 개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으니까요.”
장수동 개지옥 사건은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재개발 지역의 개 농장주가 보상비를 받기 위해 개를 방치해 굶주리게 한 사건이다. 당시 개들이 말라비틀어져 죽은 사진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이와 비례해 동물보호단체 회원 수도 늘어났다.
한국 사회는 현대로 이행했지만 개 문제에서만큼은 이처럼 전근대적인 동물학대가 속출한다. 문화상대주의적인 견지에서 ‘개고기 옹호’는 서로 다른 문화의 특성을 ‘기술’한 것일 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윤리적 논거는 아니라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다. 문화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남아선호사상이나 간통한 이슬람 여성에게 가해지는 투석형(돌로 쳐 죽임)이 정당화될 수 없듯이 말이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경영학·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는 세계적으로 동물복지 등 생명권 논리가 문화상대주의를 넘어서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페인 투우나 푸아그라도 사라지는 추세잖아요. 수백년 동안 전통문화로 여겨졌던 영국의 여우사냥도 법률로 금지됐고요.”
지난해 스페인 카탈루냐주에선 투우금지법이 통과돼 올해부터 투우 경기가 열리지 않고 있다. 미국 시카고시와 캘리포니아주는 푸아그라를 판매 금지했다.
개고기를 금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동물보호법에 개 도살을 ‘동물학대’로 규정하는 것이다. 대만에선 2001년 개고기 판매를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돼 개고기를 유통하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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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물어뜯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좁은 뜰장에 구겨 넣는다.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박근혜 의원(새누리당) 대통령선거 출정식에서 동물공약 수립을 요구하는 생명체학대방지포럼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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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동물보호단체는 과거 동물보호법 개정 때 개고기 금지 명문화를 요구했지만 지난해 개정 때에는 전면화하지 않았다. 강제적인 개고기 금지보다는 캠페인을 통한 인식 확대로 방향을 튼 것이다. 박창길 교수는 “푸아그라나 여우사냥 금지도 오랜 논쟁을 거쳐 사회가 합의에 이른 것”이라며 “소수가 윤리적 당위성만 가지고 바꾸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박소연 대표는 “수 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식용을 금지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반면 식용견 농장주들은 2008년 ‘대한육견협회’를 결성해 개고기 합법화에 나서고 있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농장주만 500명인 이 단체는 소·돼지 방식의 대형 축산농을 지향한다. 고기가 많이 나오도록 품종을 개량하고 각종 약·주사를 처방하고 짧은 기간 안에 살을 찌워 도축장으로 보낸다. 일종의 ‘공장식 축산’이다. 최영인 대한육견협회 사무총장이 말했다.
“개고기가 좋으려면 기름기가 적고 비계가 얇아야 하거든요. 대형 농장들은 일본 도사견과 누렁이 같은 잡종을 교배한 것(도사 믹스)을 주로 쓰지요. 1년 정도 키워서 도축합니다.”
대형 농장의 경우 1㎡(가로세로 1m)당 개 한마리가 들어간다. 개는 평생 이곳에서 1년을 살다 고기로 팔려나간다. 개 농장의 대다수를 점하는 영세 농가에선 여기에 개 서너마리가 들어간다. 이 때문에 개가 공장식 축산에 적합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소연 대표는 “개는 뛰어다니는 동물이기 때문에 좁은 케이지 안에 놔두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서로 물어뜯어 죽인다”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운송차량의 케이지 안에 살아있는 개 몇 마리를 구겨 넣는 것도 개에게 움직일 공간을 주지 않음으로써 나중의 고기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 근처 주택가.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남성이 개 도살 작업을 마치고 인터뷰에 응했다.
“청량리 주택가에만 이렇게 개를 잡는 곳이 8곳이 돼요. 전남 영광과 대구에서 개를 넘기면 한 마리당 1만~2만원의 도축비를 받고 경동시장 약탕집으로 보내죠.”
이제 막 생을 마감한 개는 ‘도사 믹스’에 이어 개고기용으로 환영받는 한살짜리 ‘진도 믹스’(진돗개와 누렁이의 잡종)였다. 전남 영광에서 산 채로 올라온 이 개는 몇십분 전 전기충격기를 맞고 죽었다. 온도 60도의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가 탈모기에서 털이 뽑힌 뒤 서른근(18㎏)짜리 고기가 됐다. 이 남성은 “직접 육견농장에서 사들일 경우 600g당 4800원에 사와 7000원에 약탕집에 판다”고 말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개 사체 8마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4마리는 경견의 일종인 ‘그레이하운드’였다. 박소연 대표는 “한쪽에서는 애견 경매가 이뤄지지만 나머지 개들은 이렇게 개고기로 팔려 유통된다”며 “개고기를 축산물로 등록해 정부가 관리하더라도 유통 과정에서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지성 너희 조국은 개를 먹지! 하지만 빈민가에서 쥐를 잡아먹는 리버풀은 더 최악이지!”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선수 박지성의 응원가에는 한때 개고기를 비아냥대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더이상 2010년대 한국의 누리꾼들은 서구인들의 개고기에 대한 비판적 언급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높아진 국가의 위상으로 나타난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박지성을 뽑아준 유럽 명문구단에 군소리 않는 ‘사대적 민족주의’의 반영일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농담을 농담처럼 받아들이고, 스스로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복잡한 사회·문화적 시각을 받아들일 줄 안다. 개 문제에 있어서 현대와 전근대가 공존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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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수 맘대로
축산법과 동물보호법 피해가는 개고기
개고기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축산물위생관리법, 축산물가공처리법 등에 따른 축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소·돼지·닭 등이 받는 각종 규제를 받지 않는다. 다만 식품위생관리법상 보신탕은 식품이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식당은 위생점검을 받아야 한다.
가축은 지정된 도축장에서만 도축·가공이 가능하다. 반면 개는 아무 곳에서나 도살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과 관계자는 “도심에 있는 소규모 개 도살장도 축산 관련 법률로 규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도적 도축 방법을 비롯해 가축 사육밀도, 전염병 예방 등 동물복지에 대한 규제도 없다.
다만 환경부는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 2007년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개를 사육동물로 포함시켰다. 60㎡ 이상의 개 농장은 가축분뇨처리시설을 설치하고 신고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이 정도 크기는 약 60마리를 키울 수 있는 정도로, 사실상 웬만한 영세 농장은 다 포함된다. 하지만 일부 대형 농장을 제외하곤 가축분뇨처리시설을 설치한 농장은 적은 형편이다.
개는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목을 매다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해당 동물을 다른 동물의 먹이로 사용하는 경우 등은 동물학대에 해당한다. 동물보호법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개 도살 자체가 동물학대라는 의견도 있다. 동물보호법상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 등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는 동물학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개고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여러가지가 거론된다. 법을 통해서 푼다면, 개를 가축에 포함시켜 관리하자는 의견과 개 식용 금지를 명문화하자는 방안이 충돌한다. 개 농장주로 구성된 대한육견협회는 첫번째 방안을 요구한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개고기를 반대하되 국민의식 전환 등 장기적으로 풀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때 동물보호단체의 질의에 응답한 11명의 국회의원 후보 가운데 문병호 후보(민주통합당 당선) 등 6명이 이런 입장을 표했다. 개고기 합법화를 주장한 의원은 없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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