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5.20 10:52 수정 : 2017.05.20 14:24

15일 저녁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구의역 사고 1년을 맞아 청년노동자 5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특집
좌담 - 구의역 사고 1년, 청년노동의 현주소

15일 저녁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구의역 사고 1년을 맞아 청년노동자 5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구의역, 넷마블, 티브이엔, 씨유…. 지난 1년 새 스러져간 우리 사회의 청년노동자들이 일하던 현장입니다.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에 중독돼 시력을 잃은 청년들도 있습니다. 오는 28일은 이른바 ‘구의역 사고’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사이 청년노동의 현장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지난해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을 하던 열아홉살 노동자가 전동 열차에 치여 사망한 지 1년. 그날 이후에도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 게임업체 넷마블 노동자 3명이 잇따라 돌연사·자살했고, 티브이엔(tvN) <혼술남녀> 조연출을 맡았던 이한빛 피디가 스물일곱의 삶을 마감했다. 지난해 12월엔 경북 경산시 씨유(CU) 편의점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손님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하지만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들이 있다. 영화 스태프 안병호(39)씨, 특성화고 졸업자 백종현(21)씨, 알바 노동자 윤가현(27)씨, 전기공 권오선(24)씨, 그리고 실명을 밝히기를 꺼린 게임개발자 김아무개(33)씨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떠난 동료들의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했다. <한겨레>가 마련한 좌담은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진행됐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20, 30대 노동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마음이 어떤가?

백종현(이하 백) 엘지(LG) 유플러스 현장실습생의 사망 사건을 보며 무서웠다. 나는 특성화고 졸업생이라 현장실습에 나가 취업한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도 당할 수 있는 일이라니까. 한 친구는 사무직인데 아침 8시에 출근해 평일엔 밤 11시까지, 토요일엔 저녁 8시까지 일한다. 많이 힘들어하지만 계속 그렇게 산다.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학교가 안 받아준다. 현장실습에서 성희롱당했다고 해도 취업률 떨어진다고 돌려보낸다. 그래도 돌아가면 징계를 주고 생활기록부엔 “사회생활 부적응”이라 적는다. 둘째, 고졸 취업자가 일할 자리가 없다. 대학 잘 나온 사람들도 정규직에 입사지원서를 내면 경력이 없어서 떨어지는 상황이다. 대학에 다닐 여건이 안 돼 취업한 고졸은 첫 직장이 평생직장, 내 삶이 돼 버린다. 회사도 ‘너 고졸인데 그만두면 다른 데 갈 수 있겠냐’고 그런다. 더 치열하게 일할 수밖에 없다.

윤가현(이하 윤) 경산 씨유 편의점 사건을 보며 맥도날드 신촌점에서 일할 때가 떠올랐다. 그곳도 계산대가 문 앞에 있는데 밤에 문이 열리면 두려웠다. 외국인이든 술 취한 사람이든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하고 공격당할 수 있으니까. 도망갈 수도 없었다. 끔찍했다. 하지만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대공장에서나 얘기된다. 알바 노동자의 안전은 알아서 하라고 한다. ‘네가 그런 알바노동을 하기 때문에 네 책임이야’라고.

안병호(이하 안) 이한빛 피디가 사망했는데 씨제이(CJ)의 사람들은 사과 한마디 없다. 다른 곳도 터지지 않았을 뿐 비슷하니까. 요즘 드라마는 다 외주하다 보니, 원청인 씨제이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는 관리자가 된다. 기간제로 일하는 외주 스태프가 보기엔 원청 노동자는 압박하고 통제하는 사람들이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노동착취”란 말이 나오는 거다. 이한빛 피디가 그 말이 너무 괴로웠다는데 모든 드라마 현장에 일어나는 일이다.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란 단어

씨제이이앤엠(CJ E&M)의 신입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피디는 <혼술남녀>가 종영한 다음날인 지난해 10월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그는 유서에서 말했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

권오선(이하 권) 첫 직장은 전기제어 회사인데 너무 끔찍했다. 밤에 잠을 안 재웠다. 아침에 10시에 출근하면 오후 6시 퇴근해야 하는데 일이 안 끝나면 저녁을 먹는다. 그럼 또 일하는 분위기가 돼 일한다. 계속하다 보면 밤 10시, 11시, 슬슬 눈치를 본다. 내가 집에 가야겠다 말한다고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그렇게 새벽 2시, 3시가 되고 5시, 6시가 된다. 잠시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아침 10시에 출근하는 식이다. 월급은 150만원. 정말 힘들었다. 시험 생산을 하는 곳이라 일을 많이 배울 수 있는, 엔지니어로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몇달 못 버티고 관뒀다.

김아무개(이하 김) 게임개발자들은 ‘열정페이’를 체화한다고 할까.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고 창작자, 예술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나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킨다는 개념이 아니라, 회사랑 나랑 동반자 관계라고 본다. ‘리니지’처럼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얻는, 성공신화가 있기 때문에 그걸 쫓아서 열정페이를 자발적으로 한다.

영화도 비슷하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이렇게 하면 언젠가 내 영화를 만들겠지 하고 일을 시작한다. 한달에 100만원 아니라 50만원, 30만원을 벌어도 그냥 한다. 예전엔 운동화 한 켤레를 받고도 영화 한 편을 촬영했다고 하더라.

-일하면서 경험한 힘들었던 순간은?

전기설비 회사에서 일했는데 사장이 어느 날 가로등 공사를 따왔다. 관련 장비도 경험도 없는데. 크레인, 지게차 등 가로등을 내릴 장비도 없어서 직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려 창고에 넣다가 내가 땀에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가로등이 나를 덮쳤다. 살면서 그런 고통은 처음 느껴봤다. 아픈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걸을 수 있을까’ 불안감이 느껴지더라. 병원에 가야겠다니까 사장이 “한의원에 가서 침이나 맞고 오라”고 하더라. 할 수 없이 내 손으로 20㎞ 운전해서 병원에 갔다. 요양을 해야 한다는데, 회사는 산업재해로 인정 못 하겠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가보니까 왜 산재인지 내가 다 입증을 해야 하는 거더라. 회사에 시시티브이(CCTV)가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일하면서 그걸 다 입증하는지. 10명이 일하는 회사니까 노동조합도 없고. 그래도 싸워서 산재를 받았는데 회사는 나를 해고해 버렸다.

산재 인정 그거 노무사가 도와주지 않으면 절대 못 하는 일이더라. 영화 조명팀이 밤새워 촬영하고 다른 현장으로 이동하다가 졸음운전해서 전복 사고가 났다. 1.5t 탑차에 스태프가 깔려서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근데 회사는 촬영 현장에서 난 사고가 아니라고 산재 범위가 아니라는 거였다. 계속 싸워서 산재 처리를 약속받았는데 그 스태프가 근로계약을 안 맺은 상태였더라. 당시엔 처음에 돈 얼마 받고 끝나면 나머지 받고 그러던 시절이라서. 어렵게 산재 인정을 받았다.

고1 때 호텔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 했는데, 한 손으로 쟁반을 들어야 했다. 손님과 부딪히지 않도록 항상 어깨 위로 드는데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하곤 했다. 점점 허리랑 팔목이 나빠졌다. 허리 디스크가 생기고 팔목과 손목에 물이 찼다. 병원을 다니면서 괜찮아졌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산재였다. 당시엔 주휴수당도 몰랐던 때라 산재라곤 상상도 못했다. 얼마 전에 산재라는 개념을 공부하고 아, 그때 산재였구나 깨달았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대공장 얘기
‘네가 알바니까 다 네 책임이야’ 압력
새벽 6시 들어가 아침 10시에 다시 출근
일 배운다 생각했으나 몇달 못 버텼다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가로등 나르다
땀에 미끄러져 가로등이 날 덮쳤다
산재처리 못해준다 버티던 회사
싸워서 받아내니 결국 해고하더라

천만 영화 나오면 뻔한 제목의 기사
“삼각김밥 먹어주세요” 따위 요구
불쌍하지 않으니 그런 얘긴 좀 그만
찌질한 삶 아니란 걸 꼭 보여주고파

1등 하면 ‘골든벨’이란 걸 내세워
성과급 챙겨주며 내부경쟁 부추겨
‘잘해봐, 계급 올라갈 수 있다’ 시그널
‘난 될 놈이야’ 되뇌며 자발적 야근

게임업체의 ‘카스트제도’

-청년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어떤가?

언론이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 스태프가 이렇게 힘들구나, 한 달에 얼마나 받니, 어이구 이런 불쌍하구나 같은 얘기를 계속해달라고 한다. 천만영화 나오면, 제목은 바뀌지 않는다. ‘천만 영화의 그늘’ 몇만 스태프, 연봉 600만원 스태프 같은 거. 너무 지겨웠다. 우린 그렇게 불쌍하지 않다. 돈 벌 만큼 버니까 이런 얘기 안 해줬음 좋겠다.

2013년, 알바를 2개씩 할 때였다. 아침 8시에 오픈하는 카페에서 오후 3시까지 일하고,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호프집 일하고. 그때 언론 인터뷰를 하면 “60만원 벌면 30만원이 월세 나가요” 이거밖에 안 나갔다. “삼각김밥 먹어주세요” 이런 거 요구하고, 끼니 굶고 있는 거 찍고 싶어 하고. 나는 대학을 안 나왔는데도 취업이 안 돼서 알바로 먹고산다고 말해달라고 대본을 써주기도 하고. 그런 게 되게 싫었다. 불쌍한 삶을 살지 않고 찌질한 삶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알바운동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노동환경은 나아지지 않는다. 왜일까?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동이 아니라 ‘사람 장사’로 돈을 벌기 때문이다. 건설사로 표현해보면, 아파트를 지을 때 원청이 못 하나 박는 게 없다. 전부 다 하청이다. 하청의 하청. 그 하청들이 일한다. 그 하청 사장들은 일을 받고 넘겨준다는 명목으로 몇 프로씩 이윤을 빼먹는다. 아이티나 조선소도 다 똑같다. 월급 계산해주는 사람들,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돈을 제일 많이 버는 구조다. 정규직은 법률적으로 ‘계약기간 정함이 없음’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론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직접 고용된 노동자를 말한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사장이 일을 접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정규직이라 말할 수 없다. 회사 자체가 사라져 버리니까 비정규직이다. 지금은 그런 일자리밖에 없다. 대기업이 책임지기 싫고 돈 쓰기 싫어서 직접 고용하지 않으니까. “나는 ‘노오력’해서 대기업 갈 거야” 하는 20대는 고시촌에 가는 거고, “나는 지금 당장 돈 벌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하는 20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거다.

한 게임업체엔 ‘카스트 제도’가 있었다. 안드로이드 구글마켓 등에서 1위 달성하면 ‘골든벨’을 울리고 성과급을 챙겨주며 내부 경쟁을 시켰다. ‘너희들도 잘해봐라, 그러면 계급 올라갈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다. 나는 ‘될 놈이다’라고 믿으며 자발적으로 야근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은 사람들만 각성하듯이 그 안에선 완전 세뇌당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제대로 대우를 못 받을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인센티브 받는 사람을 보며 ‘부럽다, 나도 저랬어야 하는데’ 생각한다.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스스로 목소리를 죽인다. 회사의 수익이 조 단위로 나도 최저임금 받아가는 걸 내 무능력 탓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성과연봉제가 무서운 거다. 노동자의 동료의식을 마비시킨다. 난 반대로 노동자가 뭉쳐 있을 때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지난 2월에 20살 신입사원이 200만원짜리 부품을 옮기다가 떨어뜨려서 귀퉁이가 깨졌다. 최저임금 받는 신입한테 사장이 물어내라고 하더라. 내가 장비도 없이 70㎏짜리를 옮기라고 지시한 게 잘못됐다고 문제 제기를 했고 다른 동료들도 동조했다. “내일부터 다 출근하지 마.” 사장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나 사업 안 할 거야. 부품값은 너희 남은 임금에서 공제할 거야.” 노동자들이 모여서 궁리를 했다. “사장이 뭐라 지랄하건 우린 출근한다, 우리 권리니까 버틴다.” 다 출근했고 5일쯤 지나니까 사장이 아무 말 못하더라. 부품값도 안 물어냈고. 사람들이 뭉치면 힘이 생기는구나, 깨달았다. 그 이후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할 말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이냐 아니냐의 차이와 같다. 굉장히 큰 차이다.

필요하면 날릴 수 있는데 정규직이라고?

-노동자가 뭉치면서 어떻게 달라지나?

예전엔 촬영계획(콘티)이 있으면 그걸 다 찍을 때까지 일했다. 한번 나가면 24시간은 기본이었다. 세트장의 경우 비워줘야 하는 날짜가 있으니까 72시간 연속, 안 자고 찍어도 봤다. 30시간, 40시간 넘어가면 정신은 딴 데 가 있고 유령처럼 일한다. 세트장 문이 열리면 좀비처럼 탈출하고. 요즘은 표준근로계약서로 근로계약하면서 밤샘 촬영 횟수가 확실히 줄었다. 단체협약에 12시간 넘으면 연장 수당을 100% 주도록 계약을 했더니 달라졌다. 밤샘노동을 없애야 하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비용이 더 드는구나 하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알바노조를 시작하던) 2013년이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주휴수당을 알게 됐다. 최저임금도 그렇고 자기 권리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다. 조합원들은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 처음에 ‘알바도 노동자다’ ‘최저임금 1만원’이 구호였는데 나조차도 명확하게 동의하지 못했다. ‘적어도 비정규직은 돼야 노동자 아니냐’ 생각했고. 알바는 어쨌든 잠시 지나쳐가는 일터 아닌가 싶었다. 지금은 아니다. 알바도 당연히 노동자이고 지금, 오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규직 일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퇴직하면 치킨집을 차리거나 거기서 알바하는 것, 둘 중 하나이지 않나.

임금은 일한 만큼 받는 게 아니다. 힘이 있는 만큼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 조직돼 있고, 교섭할 상대가 원청 자본인 대기업이라서, 그런 힘이 있어서 연봉이 높은 것이다. 대기업 직접고용이니까 노사분규하면 공장을 멈출 수도 있다. 원청 입장에서도 노동자와 협상하는 게 이익이고. 하지만 하청으로 갈수록 회사가 망하면 끝나니까 노동자가 뭉치기가 어려워진다.

원청이 하청을 활용하는 이유다. 노동자의 힘을 나누기 위함이다. 게임회사의 경우 대기업이 스튜디오 형태로 자회사 만든다. 개발한 게임이 망하면 자회사를 아예 없애버린다. 부당해고지만 대기업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아, 그래도 뭔가 시작됐구나. 뭔가 시작이 되는구나. 우리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농담 같은 희망인가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말했던 것같이 박근혜 퇴진이 된 것처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계속 얘기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대통령 바뀌었다고 일사천리로 일이 처리되니까 뭔가 실감이 안 났다. 구체화 과정이 필요하니까.

지역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으로 자기 세계를 바꿔보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민주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때 탄압당했고 파견법과 기간제법이 다 생겼으니까. 인천공항도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자회사를 만든다고 하더라. 필요하면 자회사를 날릴 수 있는데 정규직화라 할 수 있을까.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소득배분이다. 게임업계를 규제하면 오히려 대기업이 더 많이 가져간다. 대기업은 규제해도 버티지만 중소기업은 다 망하니까. 그러면 대기업은 경쟁할 필요 없고 자회사를 차려서 더 큰 돈을 번다. 자본을 독점하고 있으니까.

많은 청년정책이 쏟아지는데, 나는 그 대상자가 아니다. 예컨대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수당은 나처럼 가난해서 일을 쉴 수가 없는 사람은 받을 수 없다. 청년임대주택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일하며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년정책을 만들어 달라.

뭘 사먹을 때 시급을 제일 먼저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변화를 바라나?

현장실습 문제가 많은데 정부가 검토를 안 한다. 엘지 유플러스 사망사건도 현장실습이 아니라 감정노동 문제로 넘어가고. 청소년이 투표권이 없으니까 그렇다. 노동은 하는데 왜 투표권은 없는가?

알바노동하면 고립된다.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자주 바뀌고 시급이 너무 낮기 때문에 장기간 노동을 해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지 못한다. 나도 뭘 사먹을 때 시급을 제일 먼저 생각한다. 우유를 너무 좋아하는데 알바할 때 돈 아까워서 못 사먹었다. 우유 맘껏 먹고 싶어서 커피전문점에서 알바한 적도 있고.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올랐으면 좋겠다. 그것이 적폐 청산의 출발점이다.

솔로몬이 대통령이 되어도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든 자본가의 이해관계는 이윤을 많이 만드는 거니까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공격할 것이니까. 핵심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 의식을 얼마나 갖느냐다.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바꿔볼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10년, 20년 후에도 그 현실은 그대로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기대감 높아진 이유가, 어디 가든 얘기 듣고 일단 해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들어야 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살게만 해줬으면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고기 먹을 수 있고 친구들이랑 술 먹고 주말엔 쉴 수 있는 것 정도, 영화든 맥도날드 알바든 전기공이든 그냥 똑같이 살게만 해주면 된다. 사는 게 치열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쉴 수 있게.

지금도 되게 오랫동안 치열하게 살고 있다. 퇴근시켜달라. 녹취하는 사람도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진행·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녹취 강남규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특집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