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특집
30대, 정치를 상상하다
바꿈·랩2050 젊은 정치 구현 위해
8개 정당의 30대 정치인 모임 구성
시민단체 바꿈과 민간정책연구소 랩2050이 꾸린 ‘청년 정치를 상상하다’ 모임에 참여한 8개 정당 30대 정치인 8명이 지난달 23일 저녁 한겨레신문사 내 카페 ‘짬’에서 대화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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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적일 수 있는 마지막 나이.’ 누군가 30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한창 가정을 꾸릴 때지만, 아직 가진 게 없어 기득권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란 뜻이다. 일자리, 출산, 육아, 주거 등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은 개인적 불만으로 소비되지만, 알고 보면 사회구조적 문제들이다. ‘신386세대’(30대, 80년대생, 6포 세대) 정치인 8명이 모여 “‘우리들의 정치인’을 갖자”는 한목소리를 냈다. 기성세대 중심의 정치판과 유권자들의 냉소에도 이들이 직업 정치인으로 일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아들뻘, 딸뻘이라고 자꾸 가르치고
세상은 변했는데 메시지는 똑같아”
“86세대 학생운동으로 끈끈한 유대감
가족 경영 회사에 신입사원 된 기분” 정치 세대교체 안 되는 이유는
“결정권 넘어가는 것 극도로 경계”
“기성세대 말 잘 듣는 청년만 남아”
“기득권 지닌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20대 국회 83%가 50·60대 의원
40살 미만 0.66%…전세계 최하위 내가 겪은 기성 정치는 ―기성세대 중심의 정치 구조에서 벽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 이동수 민주당 쪽 캠프에 가보면 시민단체 분들, 변호사분들이 다 학생운동 할 때부터 서로 아는 사이다. 오래전 투쟁에 기반한 깊은 유대 관계가 있기에 젊은 사람들이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도 쉽사리 반기를 들기 어렵다. 그들(586세대)이 워낙 견고해 그 바로 아래 세대인 70년대생의 목소리는 작게 표출돼왔다. 이제 80년대생에게 공이 넘어오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친인척이 경영하는 기업에 신입사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우리가 잘 못한다면 친인척이 모인 가족 기업에서 부품으로 일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백경훈 구성원의 평균 연령대가 가장 높은 정당이 한국당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뭔가 이야기를 할 때 아들뻘, 딸뻘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가르치려고 한다. 지금은 2019년이고 세상이 많이 변했다. 새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젊은 정치인도) 얼굴은 젊은데 메시지는 (기성 정치인과) 똑같다. 오래된 정당이 축적한 인프라와 콘텐츠가 힘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가서 뭘 해도 바뀌지가 않는 구조이기도 하다. (40대 같은) 중간층도 별로 없다. 이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게 지금 30대의 역할이 아닐까. 이윤환 바른미래당은 개혁적 보수, 중도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젊은 정치인의 이야기는 마치 정치에 미숙한 사람들의 메아리로 여겨질 때가 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네는 듣고 따라오면 돼’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올해 초 당내에서 지역위원장 경선을 했는데 젊은 신인 정치인으로서 벽을 느꼈다. 기성 정치인인 지역위원장은 자신의 홍보 활동을 지역에서 꾸준히 해왔는데, 저는 신인 정치인으로서 새로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다녀야 하니 지역 내에서 진입장벽이 느껴졌다. 왕복근 정의당도 5060세대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보니 취약한 부분이 청년과 여성 분야다.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잘 이해를 못 하거나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젊은 당원들에겐 일상적으로 불편한 것들이, 당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기성세대한텐 그렇게 불편한 것은 아닌 것이다. 선거 때도 청년은 ‘활용’되는 존재로 취급될 때가 있다. 율동만 하다가 나가는 청년 당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똑같은 문제제기도 젊은 당원이 했을 땐 그냥 넘어가고, 알 만한 정치인이 발언하면 그때부터 토론이 붙는다. 당내에서 젊은 정치인이 기성 정치인과 싸워 이길 수 없는 이유가 기성세대는 이미 기득권이고 세력화돼 있는 반면, 젊은 정치인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30대 정치인 20여년간 10분의1로 줄어 “통장에 꽂히는 돈은 제각각인데, 아무리 일해도 집을 사지 못하고 미래가 불안하고 희망이 없는 건 주변 친구들이 다 똑같았어요. 그럴 바엔 돈은 못 벌어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싶었죠. 친구들이 저보고 그래요. 차라리 하고 싶은 일 하는 네가 제일 낫다고요.”(전진희 서울청년민중당 부대표) 이날 모인 8명의 30대 정치인은 저마다 속한 정당은 달랐지만 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30대인 80년대생들은 소위 ‘6포 세대’라고 불린다. 연애·결혼·출산·커리어·주거·희망 등 6가지 이상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는 뜻이다. 처음 이 말이 유행할 땐 연애, 결혼, 출산까지 ‘3포 세대’라고 말했지만 점차 나이가 들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자 5포, 6포를 넘어 아예 ‘엔(N)포 세대’가 됐다. 이런 상황을 묶어 ‘신386세대’(30대, 80년대생, 6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들에게 절실한 문제들은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다. 이는 30대들이 당면한 과제들을 대변할 같은 세대 정치인이 국회에서 부족한 현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통해 집계한 20대 국회의원의 당선 당시 평균 연령은 55.5살(임기 종료 시점 59살)이다. 2016년 총선 때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연령이 40.9살이었던 것에 비추면,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 나이가 일반 국민보다 15살가량 많은 상황이다. 연령대별 인구 비율과 실제 당선된 국회의원의 연령별 비율 사이에도 괴리가 발견된다. 선거 당시 유권자(선거인 수)들은 10대 1.6%(19살부터 선거권), 20대 15.9%, 30대 18.1%, 40대 21%, 50대, 19.9%, 60대 이상 23.4%로 연령대별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20대 국회의원선거총람) 하지만 당선된 국회의원(지역구) 중 30살 미만은 아예 없었고 30대 0.4%, 40대 16.6%, 50대 55.3%, 60대 이상 27.7%를 차지해, 50~60대 비중이 83%에 이른다. 특히 ‘사회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30대와 40대 당선자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최근 20년간 국회의원 선거에서 30대 당선자 비중은 5.7%(2000년·16대)→9.5%(2004년·17대)→1.6%(2008년·18대)→1.2%(2012년·19대)→0.4%(2016년·20대)로 17대 국회 때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세를 보였다. 40대 당선자 비중도 같은 기간 26.4%→34.6%→31%→26.8%→16.6%로 비슷한 추세를 나타냈다. 인구 구조상 50대가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선진국들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국제의회연맹(IPU) 보고서 ‘젊은이들의 국회 참여’(2018) 등을 보면, 40살 이하 국회의원의 비율은 한국이 0.66%(비례대표 포함)로 조사 대상 147개 나라 중 최하위권(143위)이었다. 덴마크(41.34%) 등 북유럽 국가들은 물론 일본(8.39%), 중국(5.61%) 등 동아시아권 국가들에 견줘도 지나치게 낮은 수치다. 최근 학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정치권의 ‘세대 균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형중 랩2050 연구원은 “민심을 대변해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인들이 50대와 60대 중심으로 구성되면, 특정 세대만 지나치게 대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세대가 균형적으로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명근 바꿈 상임활동가는 “일자리, 주거, 육아 등 젊은 세대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기성세대는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왜 집을 못 사는지, 왜 아이를 안 낳는지 지금의 정치인들은 자신이 직접 겪지 못했기에 정말 모를 수도 있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이런 고통을 모른다면 지금의 현실이 계속 안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문제를 직접 경험한 30대 정치인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실제 2012년 35살의 나이로 국회에 들어간 장하나 전 의원(19대 국회 민주당 비례대표)은 청년고용의무할당제 사업의 부실함을 폭로하고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 ‘주거복지 4법’ 대표발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발의 등 일자리, 주거, 보육, 환경 등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역시 31살에 민주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김광진 전 의원은 군 전역자에게 사회정착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청년발전기본법을 제정해 청년수당을 법제화하자고 주장하는 등 현세대가 겪는 사회문제들을 의정 활동에 적극 반영했다. ‘청년 정치인’은 표만 가져와라? 청년층의 표를 의식한 기성 정치권에서도 때가 되면 ‘청년 정치’를 외친다. 소수의 젊은 정치인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영입되고, 당내 이러저러한 이름의 자리나 모임도 만들어진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런 움직임들이 결국 선거 때 ‘쓰고 버리는’ 카드로만 이용되고, 젊은 유권자들에게도 공감받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백희원 ‘청년 ○○○’ 이런 식의 자리를 하나씩 주는 방식의 ‘청년 정치’가 한 10년 있었는데, 그동안 청년들이 뭘 얻었나 생각해보면 거의 없다. 노동이나 복지 분야에서 청년 정책을 늘리는 ‘청년기본법’조차 통과되지 못했다. 청년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그동안 여럿 있었지만 그들도 기성 정치권에 의해 발탁되는 정치에 그쳤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없었다. 그나마 최근 밀레니얼 세대 담론은 90년대생 당사자들이 좋아하는 듯한데, 이것도 소비 주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정치인을 아직도 갖지 못했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용혜인 ‘청년 정치인’들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청년들에게 권한을 주거나 결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당에서 극도로 경계한다. 이전 정당에서 러닝메이트로 30대 동료와 당 대표 선거에 도전했는데 당내에서 ‘청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같은 말이 돌았다. 당에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은 나이 든 고참이 해야 한다고 하더라. 우리가 당에서 전혀 동료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소희 선거를 하면 할수록 나 스스로 기성 정치인이 되어가더라. 새로운 뭔가를 하려고 하면 다 선거운동 위반이 되니까. 지금 선거는 돈 많고 네트워크 망이 좋은 사람이 승리하는 구조인데 젊은 정치인들은 돈도 없고, 조직이 있어봤자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는 것이 전부다. 선거 현장에 나가면 (흔히 정치인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장년층 남성이 아닌 젊은 여성이기에) ‘너도 뭔 정치를 하려고 나왔냐?’ 싶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도 그렇고 그런 정치를 하려고 나온 거 아니냐’는 불신의 눈빛이다. 이동수 과연 유권자들이 ‘청년 정치인’을 좋게 볼까 싶다. 정치를 한다는 젊은이들이 양복을 입고 나와서 어디어디 행사에 가지만 자신의 콘텐츠는 없는 경우가 많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기성 정당에도 말 잘 듣는 사람만 남게 된다. 쓴소리하는 사람은 나가고. 누가 쫓아내지 않더라도 본인이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백경훈 결국 정치인이라면 국민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보통의 청년 정치인은 기성 정치인을 따라다니거나 욕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럼 ‘너네가 뭘 가지고, 어떤 어젠다를 갖고 이야기를 할 건데?’라고 했을 때 우리만의 답이 있어야 한다. 비례제 확대가 돌파구 될까 젊은 정치인 당사자와 유권자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세대교체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 논문 ‘고령화·저성장·양극화 시대의 청년정치 부상 가능성’(최태욱·2017)을 보면, 2010년대 초중반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각각 37%, 58%에 이르고 청년들이 겪는 사회문제가 극도로 심각해지자 청년 세력이 국회에 진출해 정치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젊은 세대가 주도한 청년당이 창당돼 선거에서 높은 득표율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행법과 제도하에서는 청년층이 국회에 대거 입성할 가능성이 낮다.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비례성이 보장되지 않는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어 청년을 대표하는 정당이 많은 득표를 하더라도 의석수 확대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국제정치학)는 “지금 청년세대가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세대가 만만찮은 정치 세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하는데, 기존 선거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한국에서 청년의 정치 세력화가 어렵다.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이는 제도 손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치를 하나의 시장이라고 본다면, ‘청년 정치’란 상품을 기대하는 수요는 2010년대 들어서면서 강력해졌지만, 이 수요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걸 현행 선거제도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른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통과되면 큰 장벽 하나가 무너져 현재 청년층의 정치 세력화에 전념하고 있는 소수 정당들이 앞으로 크게 선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고 정당득표율을 반영해 비례대표를 선발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 법안은 이르면 11월 말 국회 본회의에 올라갈 예정이며 내년 총선부터 반영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청년들의 국회 입성을 저해하는 진입장벽이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제도가 바뀐다고 해도 기성 정당이 비례대표 선순위에 청년층을 공천하지 않으면 기존처럼 5060세대 위주로 국회 비례대표에 입성하게 될 것”이라며 “정당이 의지를 갖고 청년층을 비례대표에 대폭 공천하도록 2030세대가 적극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참고 문헌 <불평등의 세대>(이철승·2019) <386세대 유감>(김정훈 등·2019)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안성민·2019) <청년팔이 사회>(김선기·2019) <청년정치: 청년의 정치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청년정치크루·2018)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어이가 없어서 시작한 정치>(이성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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