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특집
밀양 할매의 그림책
2017년 여름, 2018년 겨울
밀양 8개 마을 44명이 참여
송전탑·농성·연대 등 주제로
번역될 수 없는 이야기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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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① 정임출 할머니의 ‘피어라 꽃’. 교육공동체 벗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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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안 해본 걸 하라고 하니 어쩌노’, 중얼거리던 정임출 할머니는 막상 붓을 잡자 “그릴 기 너무 많다”고 했다. 전지를 여러 장 붙여 만든 종이에 드러누운 뒤 다른 할머니들이 본을 떠준 자신의 몸 선 안에 적목련, 동백, 접시꽃을 채워넣었다. 머리에는 송전탑을 그렸다. “머릿속에는 송전탑뿐이 없는데? 송전탑에 전기 안 보내면 거-서 꽃이 필 수도 있으니까네, 장미 넝쿨이랑 꽃이랑 왕창 그릴까? 나비도 좀 있으면 좋겠는데. 송전탑을 막 뚫고 나가도 되나?”(그림① ‘피어라 꽃’. 2018년 1월13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마을 정임출 할머니의 집에서)
같은 면 평밭마을에서는 손달연 할머니가 발에 무지개를 그렸다. “실은 발을 좀 망쳐뿌가 수습하다보이” 그렇게 됐다고 했다. 그 말에 누군가 거들었다. “원래 희망은 망친 데서 꽃피는 거다.” 이남우 할아버지는 사람을 잔뜩 그려넣고는 “사람이 우주다”라고 썼다. “저는 마, 마음 안에 우리 밀양 할매들이 항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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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마을 김영자 할머니의 작품. 교육공동체 벗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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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할매’는 10년 넘게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인 주민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2014년 6월11일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이 이뤄진 뒤 ‘밀양 할매’들은 ‘말’을 할 곳이 없었다. 산꼭대기 천막에서 목에 걸고 있던 쇠줄이 끊기고 팔다리 붙들려 끌려 나온 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있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4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보내는 765㎸ 송전탑이 밀양시 5개 면에 들어섰다. 산 아래 찬반으로 갈가리 찢긴 마을공동체에는 냉기만 가득했다. 사람들은 “진 싸움” “끝난 싸움”이라고 했고, 밀양은 잊혔다.
하지만 밀양 할매들은 송전탑 철거 요구를 넘어 “탈핵”을 계속 외쳤다. 행정대집행 사흘 전 위양마을 127번 철탑 천막농성장을 찾아온 문재인 의원이 3년 뒤 대통령에 당선되자 기대를 품었고, ‘탈원전’을 표방한 정부가 구성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는 3개월 숙의 과정 끝에 ‘원전은 장기적으로 축소해나가되 건설 중인 5·6호기는 경제적 손익을 고려해 계속 공사한다’는 권고안을 냈다. 송전탑이 뽑히기를 바랐던 밀양 할매들은 ‘말’을 잃었다.
밀양 할매들의 그림은 행정대집행 이후 현지에서 구술작업을 하고 있던 김영희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는 “공론화위원회의 현란한 말싸움 속에서 밀양 할매들은 배제됐다는 생각에 뿔따구가 났다. 말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무엇보다 싸움에 지친 밀양 할매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었다”고 했다.
2017년 8월 두차례, 이듬해 1월 한차례, 8개 마을에서 44명이 그림 그리기에 참여했다. 미술가 이충열·이영주씨도 함께했다. 지난 19일 출간된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교육공동체 벗)는 밀양 할매들의 작품과 그리면서 나눈 말들의 기록이다. 크라우드펀딩 텀블벅 후원금 850만원 등을 모아 만들었다.
가장 자신 있게 그린 송전탑
녹음기 대신 종이와 붓, 물감, 크레파스 등을 앞에 둔 밀양 할매들은 자신 없어 했다. 단장면 용회마을 할머니들은 “아깝구로. 하이고 마, 이거 아깝아서 못 쓴다. 이래 귀한 거를” 하며 주저했고, 상동면 여수마을에서 할머니들은 “옛날에 가시나가 그림 기린다 카믄, 꿈도 못 지” “그랄 시간이 어딨노? 동상 돌봐야지, 밥해야지, 빨래해야지, 마, 바빠 뒤진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밀양 할매들은 그림 그리기에 빠져들었다.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다. 가장 자신 있게 그린 것은 송전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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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출 할머니의 ‘송전탑 아래서 울고 있는 나’. 송전탑 번호까지 자세히 그려넣었다. 교육공동체 벗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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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② 장문선 할머니의 ‘벼락 맞은 송전탑’. 밀양 할매들의 송전탑 그림에는 꽃과 나무, 새가 그려져 있다. 교육공동체 벗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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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긴 뭐꼬?” “베락” “베락?” “송전탑 확 베락이나 맞아으믄 좋겠다.” “마 대-충 그리믄 안 된다꼬. 36줄이라. 전선이 딱 36줄이더라꼬. 내가 헤아리봤다이께네. 아따, 그란데 다 못 기리겠다.” “힘들다 카믄서 꽃은 왜 기리노?” “기리야지. 원래 거-가 즈그 땅인데.”(그림②. 상동면 고정마을 장문선 할머니의 작품과 작업 중 대화)
말에서 벗어나려고 그린 그림에는 더 많은 말들(이야기)이 담겨 있다. 밀양 할매들은 송전탑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묘사했다. “불을 꼭 기리야 한다꼬. 빨간 불. 밤에 반딱반딱하거든. 그 붉은 빛이 들어오믄 마 숨이 탁 맥히지. 아, 저 우리 생명줄 잘라묵는 전기가 절로 지나가는구나 하고.”(고정마을 김장옥 할머니)
그런데 8개 마을마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송전탑 그림에 꽃과 나무, 새를 그려넣었다. “원래 거가 가-들 기이까네. 꽃이나 나무가 진짜배기 땅 주인”(평밭마을 작업 중 대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쓰러진 송전탑, “베락 맞는” 송전탑, 꽃이 피어 있는 송전탑을 그렸고, “송전탑은 없어지고 나무는 승리해라”라는 글을 써넣었다. 김 교수는 “밀양 할매는 송전탑을 반 생명이라고 인식하면서 자신들은 생명과 자연의 일부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밀양 할매에게 천막농성장은 무엇이었을까. “너-무 많이 왔는데 그걸 어째 다 그리노”라면서도 “구름 떼겉이 몰리오는” “새-까맣게 올라와 국민들을 짓밟”은 경찰의 행정대집행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③) 한편으로는 “아침에 밥캉 물캉 싸갖고” “손톱으로 까래비가미” 올라갔던 천막농성장을 따뜻한 느낌으로 묘사했다. 여수마을 김무출 할머니는 “사람들이 있으이 간 기지. 혼자믄 우예 갈 생각을 했겠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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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③ 박후복 할머니의 그림.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러 온 경찰들이 너무 많아 “머리만 대충 동글뱅이 치가” 그렸다고 한다. 교육공동체 벗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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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④ 평밭마을 고 김사례 할머니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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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중에는 밀양 할매들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온 ‘연대자’들도 있었다. 고 김사례 할머니(평밭마을)는 ‘천막농성장’ 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연대자들이 가져온 바나나를 그렸다(그림④). “그기 바나나 맛이 아니라 사람 맛, 인정 맛”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사람들, 막 뭐 싸가지고 와가지고 위로하고, 불편한 거 없는가 매 그냥 눈여겨보고, 가족들처럼 보살펴주고 그러니까, 형제나 자식이나 다시 얻은 것처럼 너무 좋고 그냥 서로 그렇지 뭐.”(용회마을 김옥희 할머니)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들이 행정대집행 뒤 밀양 할매들과 ‘바느질 모임’을 꾸려 활동하는 등 많은 연대자들이 밀양과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그림에는 ‘쪼개진 마을공동체’에 대한 슬픔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위양마을 박손련 할머니는 빨간 싸움터를 가운데 두고 두 동강 나 있는 마을을 그렸다(그림⑤). 여수마을 김영자 할머니의 그림은 ‘살기 좋은 우리 마을!’이라는 제목이다. “그림으로라도 함 기리보는 기지. 살기 좋은 우리 마을은 인자 물 건너갔다꼬예. 자식새끼들 같이 키우던 이웃들끼리 아-들 보는 데서 싸우고, 마 회관 앞에서 고함을 지르고, 상을 엎고, 그런 거를 우리 아-들이 다 본 거 아이라예. 그라이 나중에라도 우예 화합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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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⑤ 박손련 할머니의 그림. 싸움터 양쪽으로 마을 주민들이 갈라져 있다. 교육공동체 벗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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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밀양 할매들은 평화롭던 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문패도 만들었고, 이 문패들은 지난 19~24일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열린 전시회에 그림들과 함께 놓였다.
21일 ‘765㎸ OUT! 우리는 반드시 이겨서 생명과 마을이 살아 있는 고향을 물려줄 것이다’라고 적힌 빨강, 파랑 조끼를 입고 전시회를 보러 온 밀양 할매들은 송전탑 반대 운동이 한창일 때 언론 보도를 담은 천을 걸어둔 첫 구역을 통과하며 울었다. ‘분신-공사 재개’ ‘국책사업 흔드는 외부세력 개입’ ‘한전, 이집트 원전 수출 위한 기반 다졌다’ ‘1조6천억 신고리 5·6호기 운명, 시민배심원단에 달렸다’ 등등. 벽에 걸린 자신들의 작품을 보면서도 울었다. 그러나 ‘관객들과의 이야기 마당’에서 밀양 할매들은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전탑 싸움은 70~80대 할머니들이 주축이었는데, 이제 80~90대가 됐다. 그 할머니들이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지만, 죽기 전에 제대로 할 일 하고 죽는 거라 후회가 없다’고 하더라. 송전탑은 섰지만 할머니들 마음속에는 송전탑이 안 섰다고 생각했다.”(용회마을 고준길 할아버지)
“원전, 그 위험한 물건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물려주느냐는 걱정이 항상 가슴속에 있다. 누가 뭐라 캐도 그 생각뿐이다. 환경운동가도 아님서, 이 나라, 이 마을이 너무 좋아서 그런 생각을 한다. 선조들이 해방되는 날 받아놓고 독립운동했나. 우리도 이렇게 싸우다 보면 우리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고 생각한다.”(여수마을 김영자 할머니)
이야기 마당에 모인 100여명의 관람객과 연대자들은 “감사하다”고 했다.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 곽성아(50·서울)씨는 “할머니들 마을에 가 보면 밤에 엄청 깜깜하다. 전기는 도시로 가니 우리가 사용을 줄여야 한다. 아이들이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그래서 싸움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밀양 할매들은 쓰러진 송전탑 조형물에 꽃을 만들어 붙였다. 관람객들도 한 송이 한 송이 함께했다. 송전탑은 점점 꽃으로 덮였다. 그것은 정임출 할머니가 그린 꽃 피어 있는 송전탑이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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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연세대 백양누리 무악로타리홀에서 열린 ‘밀양 할매 그리고 말하다’ 전시회에서 용회마을 고준길 할아버지가 송전탑 그림을 보고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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