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9 16:52
수정 : 2019.05.30 08:13
|
세계보건기구가 번아웃을 질병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픽사베이
|
세계보건기구, 새 질병분류기준 발표
질병 아닌 직업 관련 증상에 포함시켜
탈진·괴리감·능률 저하 3가지 특징
|
세계보건기구가 번아웃을 질병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픽사베이
|
인류의 전체적인 생활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덩달아 그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높아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생산성 향상을 제1목표로 하는 산업조직에 편입되면서 이를 둘러싼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선 이 스트레스가 높은 상태를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화려한 문명의 도구들에 둘러싸인 산업사회가 빚어내는 이면의 병리 현상 가운데 하나다. 산업사회의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번아웃’ 상태는 질병일까 아닐까?
최근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해 주목을 끈 세계보건기구(WHO)가 직장인들의 스트레스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나섰다. 보건기구는 최근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을 발표하면서 ‘번아웃’을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에 포함시켰다. 질병으로는 분류하지 않았다. 대신 개념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질병으로 인정될 경우 의료기관이나 보험업계는 이를 공식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보건기구가 질병 분류 기준 개정에서 적용까지 유예기간을 두는 이유다. 이번 발표 이후 외신에선 한때 보건기구가 번아웃을 질병으로 공식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건기구는 파장을 의식한 듯, 곧바로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번아웃을 질병(medical condition)으로 분류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
세계보건기구가 규정한 번아웃의 특징은 세 가지다. 픽사베이
|
보건기구가 새롭게 규정한 번아웃 개념은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다. 이는 현행 제10차 버전의 정의보다 내용이 구체적이다. 보건기구는 10차 버전에선 번아웃을 ‘생활 관리에 곤란을 겪는 문제’의 하나로 ‘활력 소진 상태’(State of vital exhaustion)라고만 규정했다.
보건기구는 이번에 번아웃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에너지 고갈이나 소진(탈진)의 느낌, 둘째는 일에 대한 심리적 괴리, 또는 일에 관한 부정적, 냉소적 감정의 증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업무 효율 저하다.
보건기구는 “번아웃은 특정한 직업과 관련해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키며 삶의 다른 영역의 경험을 묘사하는 데 적용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보건기구는 비교를 위해 다른 유형의 조절 장애, 즉 불안이나 공포와 관련한 장애, 기분 장애와는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키백과는 “번아웃은 심리적 스트레스의 한 유형으로, 직업 또는 직무 번아웃의 특징은 탈진, 의욕과 동기의 결핍, 무력감, 좌절과 냉소, 그 결과 직장에서의 능률 저하”라고 설명한다.
이번에 개정된 기준을 근거로 번아웃 증상을 질병으로 인정하는 전 단계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대신 보건기구는 곧 직장에서의 정신적 웰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는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건대책을 총괄하는 정부나 안정적인 생산성을 필요로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번아웃이 질병으로 자리잡은 후 치료나 관리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번아웃 증상을 완화하는 산업과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정공법이다.
30년만에 개정된 이번 기준은 2022년부터 적용된다. 게임 중독과 함께 이번에 새롭게 질병으로 인정받은 것에는 ‘강박적 성 행동’(compulsive sexual behavior)이 있다. 반면 트랜스젠더리즘은 정신 질환 목록에서 삭제됐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