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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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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1945년의 유엔헌장은 인권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국제조약이었다. 이번달 24일이면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는다. 현대 인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유엔 역사를 돌아보는 게 제일 빠르다.
그러나 성공담은 전체 그림의 절반에 불과하다. 유엔 덕분에 인권 유린의 주범인 전쟁과 내전이 줄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유엔을 통한 인권 달성의 꿈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국제연합 따위는 없다. 유엔본부 열개 층이 없어진들 눈곱만큼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존 볼턴의 말이다. “운명공동체인 인류가 오늘의 난국을 헤쳐가려면 유엔을 통해 단결하는 길밖에 없다.” 코피 아난의 말이다. 어느 쪽이 옳은가. 이번달 24일이면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는다. 현대 인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유엔 역사를 돌아보는 게 제일 빠르다. 인권에 관해 2차대전 뒤 형성된 거대한 전지구적 지식-실행 체계의 큰 부분이 유엔의 지붕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유엔의 모든 문헌 중 가장 유명한 세계인권선언으로부터 국제인권법 체계, 인권 기준 설정과 프로그램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1945년의 유엔헌장은 인권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국제조약이었다. 전문 첫 단락에서부터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이라고 선언하면서, 헌장 전체를 통틀어 인권을 일곱번이나 반복한다. 헌장을 만든 사람들이 특별히 인권친화적이던 것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회의에 참석한 미국 대표단의 버지니아 길더슬리브라는 여성 위원이 강하게 주장하여 관철한 것이다. 그런데 인권이 이렇게 중요하게 취급되자 각국 정부가 심하게 반발하면서 ‘인권 대 주권’ 논쟁이 벌어졌다. 헌장 2조 7항에 내정불간섭 원칙을 넣기로 하여 겨우 봉합되었다.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 내의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국제연합에 부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70년간 이 조항만큼 ‘상징적’으로 무효화돼온 조항도 드물다. 현재 국제인권조약 중 이주노동자협약을 제외하고 여타 주요 조약들에 가입해 비준한 나라들이 거의 90퍼센트에 이른다. 각 조약의 이행감시위원회는 가맹국 정부가 의무적으로 제출한 보고서를 심의한다. 개인청원 제도를 둔 조약일 경우 시민이 자국 정부를 유엔에 제소할 수 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정례 인권검토를 실시한다. 특별보고관이 현지조사를 벌일 수 있고, 유엔총회가 직접 인권문제를 감독하거나 결의안과 보고서를 채택한다. 심각한 상황에서는 안보리의 개입과 제재도 가능하다. 겉으로만 보면 이제 193개 유엔 회원국이 릴리퍼트 소인국에서 온몸이 묶인 걸리버 같은 신세가 된 듯하다. 여성 권리와 젠더 평등이 이 정도나마 진전한 것은 유엔의 공이 크다. 종전 뒤 신생국들의 자결권 확보 과정에서도 유엔은 큰 기여를 했다. 처음 51개국으로 시작하여 거의 네배 가까이 회원국이 늘어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성공담은 전체 그림의 절반에 불과하다. 유엔 덕분에 인권 유린의 주범인 전쟁과 내전이 줄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유엔 창설 이래 전세계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250개쯤 발생해 5천만명 이상이 죽었다. 냉전 당시 유엔의 중요 행위자이던 미국과 소련이 후원한 지역적 무력갈등이 얼마나 많았는가. 헌장의 주요 목표인 집단안보 체제는 아직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콩고, 캄보디아, 옛 유고, 르완다, 리비아, 시리아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와 대량학살에서 유엔은 대체로 무기력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큰 기대를 건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오늘날 인권 보호의 백미로 꼽히는 국제인권법 시스템은 어떤가. 과거 국제인권운동은 각국이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할수록, 그리고 국가들을 국제법 메커니즘 속에 묶어둘수록 인권이 더 잘 개선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인권운동에서 국제인권조약 비준 캠페인은 핵심적인 활동이었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인권을 개선했는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인권조약 가입과 실질적 준수 사이에 상관관계 혹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에 관해 방대한 실증적 연구가 축적되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기대한 바에는 못 미친다’는 잠정적 결론이 내려져 있다. 역설적이긴 하나 국제인권법이 발전할수록 인권 개선의 구체적인 효과보다 인권의 규범적인 영향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인권문제를 법과 제도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인권의 바탕을 이루는 정치, 경제, 이념, 사회구조, 대중심리, 국제관계, 민주주의 수준 등의 ‘펀더멘털’이 훨씬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인권 사안은 총회와 경제사회이사회의 소관으로 여겨졌다. 과거 유엔인권위원회는 경제사회이사회에 속해 있었고, 현재 유엔인권이사회는 총회 직속으로 되어 있다. 인권최고대표는 사무총장에게 보고하는 자리다. 그러나 냉전 종식 후 인권, 안전 보장 및 평화 구축의 문제가 서로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음이 드러나면서 안전보장이사회가 인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히 제노사이드, 내전, 학살 같은 사건은 안보리의 결정으로 기본 뼈대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유감스럽게도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대규모 인권침해 사태 때 강대국으로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한 경우가 드물다. 전세계 인구의 23퍼센트도 안 되는 5개국이 정략적 이유로 거부권을 휘두르며 인류 평화를 좌우하는 희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시리아 사태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안보리 개혁은 인권에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어 있다.
한국이 1991년에야 유엔에 가입한 것이 우리 사회의 국제관과 인권담론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지난 70년간 신생 개도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유엔 내에서 보편 인권을 확장해온 과정에 뒤늦게 참여한 까닭에 우리의 국제인권 인식은 얕고 옅다. 예를 들어, 1976년 국제인권규약이 발효되었을 때 유엔 가입 국가가 147개였다. 규약 1조를 보라. “모든 인민은 자결권을 가진다. 이 권리에 기초하여 모든 인민은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로이 결정하고, 또한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발전을 자유로이 추구한다.” 거의 모든 나라가 탈식민적이고 수평적인 유엔식 인권담론을 상식으로 수용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생경한 해외 뉴스로만 전해 들었다. 분단 문제를 고민하면서도 그것을 한반도의 특수 상황이나 미-소 대결의 지정학적 차원에서 파악했지, 국제사회의 전반적 인권 흐름의 차원에서 논의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것이다. 한국인들이 미국 중심의 세계관과 국제감각을 갖게 된 것, 그리고 한반도의 표준시와 세계사의 표준시가 크게 어긋나게 된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유엔 인권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한다.
유엔과 인권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슈가 있다. 유엔의 인권담론이 일반 대중과 동떨어진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되었다는 비판이다. 이것은 모든 전문 지식체계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비판이긴 하나, 인권처럼 개개인의 실존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엔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다. “유엔 창설 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인권은 유엔 안에서 자기만의 갇힌 세계를 구축한 것처럼 보인다. 인권은 자체적인 기준, 제도, 메커니즘을 갖춘 시스템, 전세계 모든 인간의 일상적 삶과 내재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자기만의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네덜란드의 국제법학자 하이 포르트만의 솔직한 고백이다. 인권의 전문적 체계와 언어, 그리고 풀뿌리 현장의 대중을 연결할 수 있는 어떤 문화적·운동적 매개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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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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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내전을 해결하려다 비행기 사고로 타계한 유엔 초대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가 한 말이 있다. “유엔은 인류를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유엔이 탄생할 무렵 지구 성층권에는 두달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의 방사능 낙진이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그 뒤 지금까지 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고 핵전쟁도 없었다는 점으로만 본다면 인류가 지옥에 빠진 것 같진 같다. 그러나 유엔을 통한 인권 달성의 꿈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외견상 근사한 국제적 얼개의 내용을 채우는 일,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 힘으로 이룰 수밖에 없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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