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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08 19:09 수정 : 2015.12.08 19:09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궁극적 책임이 일본 ‘국가’가 아니라 ‘업자’들에게 있다는 전제는 한마디로 철없는 시각이다. 기본에 속한 문제가 왜 계속 논란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권유린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위임과 책임회피’설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학설이다.

국가의 인권탄압을 연구할 때 흔히 국가를 최종 의사결정자이자 실행자로 상정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는 심대한 인권유린을 저지를 때 스스로 궁극적인 행위주체가 아닌 것처럼 변신하는 경우가 있다. 국정원의 ‘꼬리 자르기’가 좋은 보기다.

최근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저자에 대해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했다. 한·일 양국에서 다양한 대응이 나왔다. 한국 쪽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양쪽 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다스리는 것에 반대한다. 타당한 입장이다. 한쪽에서는 내용상 동의 못할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원론적으로 중요하다는 데 방점을 두는 것 같다. 다른 쪽에서는 이 논쟁이 형식적 자유의 옹호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사안이 너무 무겁고 그 함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궁극적 책임이 일본 ‘국가’가 아니라 ‘업자’들에게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철없는 시각이다. 기본에 속한 문제가 왜 계속 논란이 되는지, 인권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인권유린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이론 중 ‘위임과 책임회피’설이 있다.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학설이다.

잉글랜드에서 1170년에 있었던 사건이다. 헨리 2세 국왕은 자신의 즉위를 도왔던 성직자들을 파문한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킷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품었다. 왕은 신하들 앞에서 펄펄 뛰며 소리친다. 여러 버전이 있지만 다음이 제일 유력하다. “일개 미천한 성직자로부터 주군이 능멸당하도록 내버려둔 형편없는 태만자들과 반역자들을 왕실이 키운 꼴이로다!” 이 말을 거사 명령으로 알아들은 기사 네 명이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쳐들어가 제대 앞에서 대주교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두개골을 부술 정도로 유혈이 낭자한, 백주의 테러였다. 이 소식을 접한 헨리 2세의 반응이 흥미롭다. 그는 “오호통재라…”며 탄식하고 자신의 발언이 ‘뜻하지 않게’ 대주교의 피살로 이어졌다고 자책한다. 보속의 표시로 거적을 뒤집어쓰고 머리에 재를 얹고 사흘간 식음을 전폐했다. 사건 주범들이 교황으로부터 처벌받는 것에도 동의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헨리 2세의 진의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자신은 화만 냈는데 아랫사람들이 ‘오버’해서 저지른 잘못이므로, 슬프긴 하나 전혀 의도되지 않은 결과였다고 하는 건 가소로운 책임회피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논할 때 문제의 핵심을 부분적 ‘팩트’로 비틀어버리는 시도가 자주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을 끌고 갔던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현지 부족장들과 중개상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그러므로 백인 무역상들만 전적으로 비판할 순 없다고, 그러므로 노예무역의 책임은 백인과 아프리카인들이 나눠 져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보라. 나무를 정밀묘사함으로써 숲의 전체 모습을 바꿔치기하는 교묘한 조작이다. 20세기로 와 보자. 홀로코스트 부인자들은 흔히 히틀러가 직접 서명한 명령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홀로코스트가 나치의 청사진에 의한 행위가 아니었고,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식 대응에 불과했고, 히틀러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그러므로 홀로코스트는 비극이긴 하나 의도적으로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로 볼 순 없다고 말한다. 이런 궤변들에 대해 역사학이 마련해 둔 격언이 있다.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국가의 인권탄압을 연구할 때 흔히 국가를 최종 의사결정자이자 실행자로 상정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는 심대한 인권유린을 저지를 때 스스로 궁극적인 행위주체가 아닌 것처럼 변신하는 경우가 있다. 1982년부터 2007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관변 비공식 민병대에 의한 인권유린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국가가 비공식 민병대에 인권유린을 ‘위임’하는 정황을 파헤친 것이다. 정치·행정·경영 등에서 과업을 위임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상관이 과업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없거나, 시간과 여력이 없을 때 그 시행을 부하에게 맡기는 행위다. 그런데 과업을 위임할 때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정보의 비대칭성. 부하가 특정 과업과 관련해 상관이 알지 못하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정보의 비대칭 현상이 일어나 상관이 업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둘째, 상관과 부하의 목표의 상이성. 과업을 위임받은 부하가 상관의 원래 뜻과는 다른 목표를 가질 때 나타나는 문제다. 따라서 전통적 위임이론에서는 과업을 부하에게 위임할 때 상관이 부하를 신뢰할 수 없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인권유린에 있어선 과업위임의 문제점이 180도 뒤집어진다. 비공식 민병대에 인권유린이라는 과업을 위임할 경우, 과업위임의 결함이 오히려 장점이 되어 버린다. “지시자는 악명 높은 폭력배를 의도적으로 끌어들인 후, 그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통제권을 포기해 버린다. (…) 그리고 지시자는 이행자의 은밀한 행동으로부터 전략적 이득을 취하면서도 그들과 거리를 둘 수 있다.” 이것을 인권학에서는 지시자-이행자의 문제라고 한다.

인권유린의 과업위임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짚어보자. 우선, 모호하지만 함축성과 방향성이 있는 지시. 흔히 우국지정과 현 상황의 개탄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들이 참으로 문제야. 이대로 가면 우리 민족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참으로 걱정이로다.” 또한 지시를 내리는 측의 구체적 과업 내용에 대한 의도적 불인지와 무지. 이때 정보의 비대칭성이 편리한 자산으로 둔갑한다. “알고 싶지 않고 알 필요도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 보고도 하지 마라.” 이행자 입장에서 지시 내용의 편의적인 해석. “분명 제거하라는 말씀이시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하면 되겠네.” 어쨌든 확실한 결과의 도출. 공식 지휘체계에 따르지 않은 인권유린 위임일수록 자의적이고 무제한적이고 최소한의 절차도 갖추지 않은 참혹한 결과를 낳기 쉽다.

위임된 인권유린은 공식 채널에서도 나타나곤 한다. 어쨌든 위임된 인권유린이 발생하면 지시자는 반대파를 탄압할 수 있으므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고, 권력에 따르는 모든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러한 폭력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국내·국제적 비난과 제재를 피할 수도 있다. 인권유린을 직접 자행하는 국가로 낙인찍히는 것보다 차라리 무능한 국가로 눈총받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책임을 추궁당할 때 ‘금시초문’이라고 발뺌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럴듯한 부인 가능성(plausible deniability)은 부하나 비공식 주체에 의한 인권유린에 대해 지시자가 책임을 부정할 수 있는 핵심적 기제가 된다. 국정원의 ‘꼬리 자르기’가 좋은 보기다.

인권유린의 과업위임은 우리에게 여러 함의를 제공한다. 첫째, ‘의도성’의 신화. 인권유린에 의도성이 있었는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망하다. 뚜렷한 규범적 기준이나 의지가 애초 없었을 경우, 본인이 인권탄압의 팩트에 대해 전혀 다르게 인식하곤 한다. 가치관에 따라 사실 자체가 다르게 구성되기 쉽다는 말이다. 둘째, ‘부인’하는 기제가 매우 중층적이다. 최근 중요해지고 있는 인권의 사회심리적 연구에 따르면, 부인은 사건 후에 그것을 부정하는 거짓말만이 아니다. 인권유린자는 사건을 저지르기 전부터 그 의미를 스스로 비틀고 부인해 놓고 행동에 착수하기 쉽다. 이때 사후 부인은 사전 부인의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귀결이 된다. 셋째, 비가시적인 사실이 오히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상식, 직관, 양지(良知)로 파악할 수 있는 통찰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회일수록 문명의 외양을 띤 비문명 사회에 불과하다. 넷째, 과업이 위임되어 발생한 인권유린을 철저히 법적·기술적으로만 접근할 때 역설적으로 인권유린의 궁극적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커진다. 법률적으로 책임 소재를 밝히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애초 고안된 장치이기 때문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결론을 내자. 인권은 사실관계를 넘어선 어떤 전일적 조건의 충족을 요한다. 역사의식의 공유, 교육, 정치력, 시민사회의 압력이 정답에 가깝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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