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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13 18:11 수정 : 2016.12.13 19:32

이쯤 되면 법이라 쓰고 공갈이라 읽어야 정답이 되지 않겠는가. 정리하자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촛불민심은 박근혜가 꼭짓점을 이룬 지배층이 보여준 형식적 법치와 실질적 법치 사이의 극단적인 괴리, 그 기만성, 그 위선성, 그 이중성, 그 뻔뻔함에 치를 떨고 학을 뗀 것이다.

주름이 가득한 구릿빛 얼굴의 촌로가 칼국수를 먹으며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 한마디 던진다. “헌재 심판이 180일이나 걸릴 수도 있다던데.” 앞치마를 두른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받았다. “그러니 빨리 심리를 해야 해요.” 정말 간단치 않은 국민이구나 싶었다. 몇 달간 마음 졸였던 긴장이 잠시 풀리면서 오랜만에 비관의 먹구름이 촛불 사이로 흩어지는 듯했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순간 나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한 지자체에서 공무원 인권교육을 하고 있었다. 인권의 날을 하루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 강의가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터라 투표 결과에 대한 궁금증이 심했다. 4시가 조금 넘었는데 청중석에 갑자기 스마트폰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누군가가 “가결됐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일순간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비장하면서도 벅찬 느낌이 넓은 강당을 채웠다.

보수정권 8년10개월을 돌이켜 보면 인권 분야에서 잘했다 싶은 일을 찾기가 어렵다. 쇠퇴일로의 기간이었다. 작년 이맘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인권보고 대회를 열었다. 그때 다루어진 사안들을 보라. 메르스 사태 유언비어 엄단, 세월호 사건 유언비어 단속, 국가정보원 불법해킹, 표현의 자유 위축, 다음 카카오톡 세무조사 및 수사, 인터넷언론 등록요건 강화, 방송통신위원회 명예훼손 심의 강화…. 하나같이 반동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들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주 모시듯 하는 권력의 인권관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이었다. 지난 몇 달간 벌어진 사태로 미뤄보면 이런 것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을 위시한 우리 사회 최상층의 정신적 지향성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법의 지배 원칙에 대한 분열적 태도이다. 한국 보수 지배계급의 의식 근저에 도사린 마술적 법치 리얼리즘을 규명하지 않고 이번 사태를 분석할 수 없다.

한편으로, 형식적 차원에서 마술적 법치 리얼리즘은 법과 규정을 누누이 강조한다. 불법, 엄벌, 엄단, 일벌백계, 척결, 처단, 단두대, 기강확립, 국기문란, 응징 등 권위주의적 언어와 지시로 시민들을 옥죄고 생사람을 잡으면서도 스스로는 법치의 모범생인 양 행세한다. 모든 판단의 최종심급은 검찰의 ‘엄정한’ 수사로 귀결된다. 유엔 특별보고관은 법의 이름을 빌린 이런 식의 겁박 통치가 남한에서 ‘정치적 자유 공간의 위축’으로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하고자 할 때 수많은 사람이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은연중 자기검열을 해야 했다.

올해 초 정부 부처들 합동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은 이런 경향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올해는 국회의원 총선거도 잘 치러야 하는 만큼 엄정한 법질서 확립과 부정부패 척결이 더욱 중요하다”고 위협하면서, “깨진 유리창 이론이 말해주듯이 작은 빈틈이라도 방치하면 탈법·편법 비리가 크게 확산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너무 고전적인 적반하장이라서, 법으로 거짓말 장난을 친 피노키오 공주에 관한 동화책이 나올 만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실질적 차원에서 마술적 법치 리얼리즘은 법의 지배를 비틀고 농락하고 무력화한다. 탄핵소추안의 사유에도 맨 앞부분에서 이 점이 지적된다.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 법치국가원칙,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 등 헌법 규정과 원칙”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정적 질문을 하나 해보자. 대통령이 그동안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집요하고 살기등등하게 법치를 앞세우지 않았더라도 이번 사태에서 시민들의 분노가 이토록 컸을 것인가. 물론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여전히 공분은 컸겠지만, 정서적 차원에서 이렇게까지 배신과 허탈감에 빠지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이것을 법의 이름으로 행해진 법추행이라고 부르고 싶다.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신성한 재산권과 자유기업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받들지만 이번에 드러난 삼성의 반사회적, 반시장적, 반기업적 행태를 보라. “대기업 논리는 조폭들의 운영방식과 같다”고 청문회에 나온 어떤 증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법 기술자들의 후안무치한 언동은 한술 더 뜬다. 평생 법질서를 입에 달고 살았던 김기춘은 기억상실로, 공직 검증 책임자였던 우병우는 행방불명으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이쯤 되면 법이라 쓰고 공갈이라 읽어야 정답이 되지 않겠는가. 정리하자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촛불민심은 박근혜가 꼭짓점을 이룬 지배층이 보여준 형식적 법치와 실질적 법치 사이의 극단적인 괴리, 그 기만성, 그 위선성, 그 이중성, 그 뻔뻔함에 치를 떨고 학을 뗀 것이다.

실질적 법의 지배는 이처럼 중요한 가치다. 진정한 법치가 없으면 진정한 인권도 없다. 일찍이 세계인권선언은 전문에서부터 이 원칙을 못 박아 놓았다. “인간이 폭정과 탄압에 맞서 최후의 수단으로 무장봉기에 의지해야 할 지경에 몰리지 않으려면 법의 지배로써 인권이 보호되어야 한다.” 촛불 시민들은 이 점에서 절묘한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껍질뿐인 법의 지배에 강력히 항거하면서도 평화적 봉기의 대의를 잃지 않음으로써 ‘자기제한적 저항’이라는 고도의 정치참여 행위를 실천한 것이다.

이제 촛불집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다. 언론의 관심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포퓰리즘과 유사파시즘의 도전 앞에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 민주주의 모델을 연구하려는 해외 학자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단기적으로 촛불집회는 명백하게 직접행동 동원형 신사회운동의 전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게끔 해준 저변의 장기 역사적 조건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내년에 30주년이 되는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성과이기도 하다.

첫째, 이런 와중에도 헌정 질서가 어쨌든 유지되고 작동했다.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간혹 계엄령에 대한 우려가 나오긴 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군의 문민통제가 확고한 것으로 나타나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5·16과 12·12를 경험한 나라에서 이건 상당히 평가할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친위 쿠데타 같은 시도도 이제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병력 수급, 군 인권문제, 방산 비리와 같은 사건으로 인해 군의 개방성과 국방정책의 전문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군이 국가의 정상적 제도의 일부로 확실히 편입되는 효과가 발생한 측면이 있다.

둘째, 지난 30년간 민주주의의 경험이 시민들의 민주의식을 엄청나게 끌어올렸다. 6회의 대통령 선거와 7회의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민주주의 교육의 학습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흔히 민주적 선거를 한번 잘 치르면 유권자들에게 10년 이상의 정치학 공부 효과가 생긴다고 한다. 후보와 정당에 관해 토론하고 논쟁하고 주장하고 소통하는 것 이상의 민주주의 교육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한 사회교육, 평생교육 덕분에 공공성에 대한 합의 수준이 높아졌다. 이렇게 민주시민 의식이 축적된 바탕 위에서 촛불집회의 자발성과 방향성이 자연스레 표출되었다고 봐야 한다. 한 사람이 오래 촛불을 들 순 있다. 여러 사람이 잠깐 촛불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학습된 민주의식 없이 수백만 시민이 오랫동안 촛불을 드는 건 불가능하다.

셋째, 지난 20년간 시행했던 지방자치 제도가 헌정 중단의 위험 앞에서도 안정적 국정 운영에 보이지 않는 발판 역할을 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어떤 위기가 닥쳤다 해도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지방정부가 완충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다. 식물 대통령과 겉도는 내각 탓에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요즘 멘붕에 빠졌다는 소문이 많다. 하지만 지자체 차원에선 큰 동요가 없다고 한다. 예전처럼 지자체 장을 중앙에서 직접 임명한다고 생각해 보라. 요즘 같은 때에 어떻게 되겠는가.

강연을 마치고 귀경 열차를 타기 전, 역 근처의 작은 식당에 들렀다. 주름이 가득한 구릿빛 얼굴의 촌로가 칼국수를 먹으며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 한마디 던진다. “헌재 심판이 180일이나 걸릴 수도 있다던데.” 앞치마를 두른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받았다. “그러니 빨리 심리를 해야 해요.” 정말 간단치 않은 국민이구나 싶었다. 몇 달간 마음 졸였던 긴장이 잠시 풀리면서 오랜만에 비관의 먹구름이 촛불 사이로 흩어지는 듯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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