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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11 19:20 수정 : 2017.08.11 19:23

인기 유튜버 ㄱ씨를 “죽이겠다”며 나선 남성 유튜버들이 ㄱ씨의 집을 찾아가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유튜브 갈무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도’ 넘은 인터넷방송 실태

인기 유튜버 ㄱ씨를 “죽이겠다”며 나선 남성 유튜버들이 ㄱ씨의 집을 찾아가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유튜브 갈무리

여전히 직함은 ‘티브이 칼럼니스트’로 나가고 있지만, 티브이보다 인터넷방송을 더 즐겨 보게 된 지 몇 년 됐다. 인터넷방송은 티브이 콘텐츠에 비해 자본의 논리에서 좀더 자유로웠고 정치적 검열의 위협 또한 덜 받았으므로. 티브이의 상업성과 정치적 외압이 수직 상승했던 지난 9년간 인터넷은 훌륭한 도피처였다.

물론 “자본의 논리에서 좀더 자유로웠고 정치적 검열의 위협 또한 덜 받았”다는 건, 그 외 여타 윤리적 제약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걸 의미한다. 자신의 불우한 성장과정을 전시하듯 늘어놓고 얼마나 자극적으로 ‘썰’을 푸는지 경쟁하는 이들부터, 장애인, 이주노동자, 경제적 취약계층, 여성, 퀴어 등 다양한 층위에서의 약자들을 비하하는 농담으로 인기를 끄는 이들, 말초적인 성적 농담으로 방송 시간을 채우며 구독을 유도하는 이들과 먹지 못할 것을 먹고 하면 안 되는 장난을 치는 것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려 발악하는 이들이 한가득이라는 사실은 굳이 그들의 방송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프리카 티브이로 시작했다가 신고 누적으로 채널이 폐쇄되면 다시 유튜브나 여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갈아타고, 계정이 정지되면 가계정을 신설해 꾸준히 방송을 하는 이들의 이름이 풍문처럼 떠돌았으니까. 미심쩍은 유행어가 돌아다닌다 싶어서 그 출처를 찾아보면, 내가 모르는 어느 인터넷방송의 진행자가 밀고 있는 유행어인 경우가 허다했다.

감시도 내규도 없는, 음지들의 세상

더 일찍 이 문제에 대해 논하지 않은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혹평도 ‘노이즈 마케팅’이 되고 악명도 유명세가 되는 세상에서 그들을 대놓고 언급하는 건 언제나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게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에 대해 토론하는 대신 일단 금지하는 법안 먼저 만들고 보는 한국 사회의 전례를 생각하면, 기껏 검열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진 공간을 다시 옭아매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까 또한 적잖이 두려웠다. 검열제도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표현의 자유를 탄압했던 역사가 길었던 한국에서, ‘심의’라는 단어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게 만드는 힘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인터넷방송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대신 밝은 면들에 더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아프리카 티브이에서 시작해 유튜브를 거쳐 케이블과 지상파에 진출한 대도서관이나, 동명의 뮤지컬까지 제작된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의 캐리, 한국과 영국 사이의 문화적 가교 구실을 하고 있는 영국 남자 등의 크리에이터들을 보며, 이처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양지의 콘텐츠가 누적될수록 음지의 콘텐츠가 그 힘을 잃을 것이라 생각한 셈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지나치게 순진하고 낙관적이며 게으른 생각이었다. 양지의 콘텐츠가 쌓여 음지의 콘텐츠를 밀어내는 일은 소비자의 선택과 시장논리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적으로 유의미한 규모의 시장이 형성된 모든 콘텐츠 산업은 관계 당국이 정한 기준을 준수하는지 끊임없는 감시의 대상이 되며, 그렇지 않은 시장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윤리적 내규를 정하고 준수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을 때 비로소 양지의 콘텐츠가 누리는 인기로 음지의 콘텐츠를 밀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엔 유의미한 감시도 내규도 없다. 가학성 콘텐츠와 사설 토토 홍보, 장애인 비하 발언들을 일삼아서 방송 영구정지 처분을 받았던 이들이 곧바로 다른 서비스 업체로 옮겨가서 방송을 계속하거나, 어느 순간 은근슬쩍 ‘특별사면’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와 방송을 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렇다 할 강제규정이나 불이익이 없으니 자극의 수위를 높이는 가장 쉽고 빠른 경쟁 전략을 택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고, 그들을 앞세워 수익 창출에 나선 업체들은 점점 수치심을 잃었다.

인터넷방송서 ‘살인협박’ 생중계 등장
“유튜버 ㄱ씨 죽이자” 모의한 남성들
ㄱ씨 개인정보 유출, 후원금도 받아
방송 시청자 중엔 초등학생도 다수

출동한 경찰, 범칙금만 5만원 부과
최근 위험수위 치닫는 인터넷방송
성폭력 은어 양산에 증오 선동까지
비윤리적 콘텐츠 제지할 대책 필요

물론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나 차별, 성적 수치심 자극, 폭력성과 혐오성이 심각한 정보의 유통,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의 유통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으로 송출되는 정보를 죄다 심의하고 방송사업자에게도 자체심의의 의무를 부여한 방송통신 심의규정과 달리, 정보통신 심의규정은 누군가 심의를 신청했을 경우에 한정하여 심의를 개시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10조 1항-4에 “그 밖에 위원회가 이 규정의 위반 여부를 심의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한 경우”라는 조항이 있지만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지난 2014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발표한 <방송통신 융합에 따른 콘텐츠 규제체계 정비방안> 보고서 속 “국내법상 방송으로 구분되지 않아 방송심의보다 규제가 약한 통신심의의 대상이며, 특성상 단속이 어렵고 적발되더라도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이 없어 규제의 어려움이 있음”이나, “이용자가 개설하고 운영하는 채널은 수시로 개폐되고 그 내용이 실시간 방송 후 소멸되기 때문에 브이오디 형태의 콘텐츠와 달리 모니터링 및 증거자료 확보가 어려워 규제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음” 같은 구절들에서 연구자들의 좌절을 읽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 10일 새벽엔 급기야 “사람을 죽이겠다”며 밤의 거리를 배회하는 내용을 생중계하는 게 ‘방송’이랍시고 전파를 탔다. 남성들에 대한 비하 발언을 일삼은 여성 유튜버 ㄱ씨를 지목한 일군의 남성 유튜버들이,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올라온 개인정보를 가지고는 해당 주소로 가서 ㄱ씨를 죽이겠다며 그 과정을 생중계로 전송한 것이다. 타인의 개인정보 유출, 살인 협박과 살인 모의가 이뤄지는 동안,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후원금을 보내고 더 수위 높은 발언을 부추겼다. 명예훼손이나 살인 협박 등의 문제를 채팅창에 제기한 사람들을 향해 해당 유튜버는 “죽인다는 거야 그냥 해본 소리고 그냥 얼굴 보고 이야기나 하자는 건데 그게 무슨 살인 협박이냐. 당신이 법을 그렇게 잘 아느냐”고 이죽거렸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그를 잡아가며 사태가 마무리되나 싶었지만, 지구대 선에서 ‘불안감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범칙금 5만원을 부과하는 것으로 끝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 커졌다. “해봤자 크게 불이익이 없을 만한 방송 콘텐츠”의 목록에 욕설, 증오 선동, 혐오 발언, 가학성 콘텐츠에 이어 ‘살인 협박’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인기 유튜버 ㄱ씨를 “죽이겠다”며 찾아나선 또 다른 남성의 유튜브 생방송. 유튜브 갈무리

난 차라리 검열의 편에 서겠다

관련 법령 개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에 회부되어 논의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통해 음지의 콘텐츠들에 열광하고 나아가 자신들도 그러한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되는 걸 꿈꾸는 계층이 늘어났다. 다름 아닌 초등학생이다. <오마이뉴스> 박동우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한 서울 상천초등학교 교사 서한솔씨는 이렇게 말했다. “문화의 주도권을 유튜브가 쥐고 있고, 거기엔 여성 혐오 정서가 흐르고 있어요. 아이들 입장에선 그것들을 되게 쿨하고 멋지다 생각해요. 학교에서는 거기에 대항할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는 상황이죠.”(<오마이뉴스> ”‘앙 기모띠’, 선생님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박동우 시민기자. 2017년 7월11일)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운영하는 인터넷방송의 상당수는 기성 인터넷방송 진행자들의 언어를 고스란히 답습한 형식으로 운영된다.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고, 욕설과 혐오 발언을 여과없이 뱉어내며, 어른들의 폭력을 흉내 낸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할 자리는 늘어나는 구독자 수에 대한 자부심이 대체한다. ㄱ씨 살인 협박 생중계 사건 직후 그 뒤를 따라 ㄱ씨에 대한 증오 발언을 ‘방송’이라고 올린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초등학생이었다.

“어쩌다가 이리됐을까” 한탄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 또한 분명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고민하느라 코앞에 닥친 위협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걸 뒤로 미룰 수는 없다. 길지 않은 시간 콘텐츠 업계에 대한 글을 쓰며 난 언제나 검열의 반대편, 표현의 자유 편에 섰다. 해서 이런 문장으로 글을 끝맺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쓸쓸하지만 그래도 써야겠다. 바로 지금, 더 강력한 심의규정과 업계의 자정 내규가 필요하다. 그러지 못해 증오 발언과 살인 협박을 방송하고도 그를 처벌할 만한 규정이 변변치 않아 범칙금 5만원으로 끝나는 세상이 계속된다면, 난 차라리 검열의 편에 서겠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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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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