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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0 18:34 수정 : 2016.07.20 19:20

박용현
정치 에디터

‘주식 대박 검사’ 진경준 사건, ‘법조비리 전관 변호사’ 홍만표 사건, 그리고 이 두 탁류가 청와대로 흘러들어 만나는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거기에 “민중은 개돼지”라는 나향욱 전 교육부 국장의 발언. 밀려드는 충격적인 사건들 속에 멀미를 느끼며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나는 왜 저런 자들에게 지배당하며 살아야 하나.

국민이 쥐여준 권력을 수단으로 1%가 되기 위해(또는 이미 1% 안에서 더 누리기 위해) 바둥거리는 행태에 분노하면서도,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저들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숱한 결정과 판단을 내려왔다는 점이다. 비단 저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범법 행위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공직의 권력을 부로 연결시키는 통로는 많다. 고위직에서 물러난 뒤 기업으로, 로펌으로 가고, 판검사는 변호사로 개업한다. 군인들은 방산업체에 로비스트로 취업한다. 갖가지 기회를 통해 엘리트 공직자들은, 나향욱 국장의 말대로, 1%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그들이 공직에서 내리는 결정과 판단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아서 밀러 교수는 법조 엘리트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법률가가 될 만큼 총명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은 상위 또는 지배계층에 편입됐고, 이 계층의 가치가 입법과 사법을 통해 반영돼 왔다. … (이들은) 그 자신에게 또한 그가 동일시하는 동류 집단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이렇게 나타난다. 미국 전국법원지원센터 설문조사에서 66%가 ‘법원은 개인보다 기업에 우호적’이라고 답했고, 44%는 ‘법원에서 부유층이 다른 계층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답했다.

이런 메커니즘이 우리라고 다를까. 또한 법조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엘리트 공직자의 상위층 지향과 편입은 그들의 공직 수행이 대다수 국민이 아닌 1%의 눈높이에 맞춰질 위험을 내포한다. 진경준 검사장 승진 때 인사검증을 담당한 우병우 민정수석이 거액의 주식 보유 사실을 그냥 넘긴 게 단적인 예다. 상식에 비춰, 유통도 잘 안 되는 비상장주식을 100억원대나 갖고 있다면 당연히 부패의 냄새를 감지할 수 있다. 우 수석은 그 냄새를 일부러 외면했거나 이미 그 정도 냄새에는 무딜 만큼 후각이 타락했다는 뜻이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떵떵거리는 자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게 이상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1%의 시각에서는 대다수 서민이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그런 시각에서 만든 교육제도가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될 가능성은 0%일 테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리도 없다. 최저임금 따위는 관심도 없을 것이다.

토머스 페인은 <상식>에서 민주적 통치원리에 대해 “공직자는 그들을 선출한 국민들과 관심사가 같아야 한다. … 그들이 국민과 관련이 없는 이익을 마음속에 떠올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방법은 선거를 통한 “빈번한 교체”라고 했다. 하지만 선출직이 아닌 행정·사법부의 엘리트 공직자들은 어찌 해야 할까.

드러난 비리에 대해 정의로운 처분을 내리는 것조차 힘겨운 현실이지만 거기에 그쳐서도 안 된다. 공직자를 99%의 ‘개돼지’로 살아가게 할, 99%의 시각과 후각을 유지하게 할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공직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많다. 우리는 누구에게 지배를 맡길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 “우리 자신을 통치하는 것은 우리의 자연권”(<상식>)이기 때문이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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