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에디터 <국제시장>(2014) <연평해전>(2015)에 이어 <인천상륙작전>으로, ‘애국영화’ 흥행 질주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영화들을 둘러싼 소동의 풍경도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시사회가 끝난 뒤 평론가들의 혹평이 쏟아지면,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이 ‘평론가들이 좌파’라고 이념공세에 나서고, 이를 신호로 결집한 보수층 관객을 중심으로 흥행몰이가 이어진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구시대적 반공영화’ ‘2시간짜리 대한뉴스’ 등의 혹평이 쏟아진 뒤, 지난달 26일 박승춘 보훈처장의 시사회 관람에 이어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서 “좌파 코드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영화계에서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는 참 용기있는 시도로 보인다”며 색깔론의 포문을 열었다. 1일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단체관람,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단체관람이 이어졌다. 물론 <인천상륙작전>을 볼만한 첩보·전쟁영화로 느끼는 젊은 관객도 많고, 국가를 지켜낸 자부심과 향수로 극장을 찾는 참전세대의 호응, 투자배급사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의 공세적 마케팅도 이 영화의 흥행 요소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보수세력의 결집,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좌파, 종북, 불순세력 등 낙인을 찍는 이념공세를 통해 관객을 모으는 독특한 영화 시장이 형성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여름 극장가 대전의 중심에 선 세 편의 영화는 공교롭게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산행>에선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좀비로 변해가는 동안 정부는 좀비 사태를 “폭도들의 습격”이라 우기면서, “국민 여러분은 유언비어에 속지 말고, 정부를 믿고 차분하게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국가가 역할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공간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생존투쟁에 내몰린다. <제이슨 본>은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병기로 훈련받았으나 더이상 살인자의 삶을 살기를 거부한 남자, 그 선택의 대가로 기억을 잃은 채 ‘나는 누구인지’를 찾아 헤매는 고독한 인간의 이야기다. 이번 영화에선 제이슨 본이 기억을 되찾긴 했지만, 여전히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첨단장비와 폭력으로 무장한 국가기구의 불의에 맞서 온몸을 던지는 부쩍 늙어버린 그의 모습이 마음을 울린다. 이 가운데 지금 여기의 국가는 어떤 모습인가?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비판적 애국은 애국이 아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로 퇴행하는 애국인가, 미래와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희망을 보듬는 애국인가? <인천상륙작전>의 세계관으로 본다면 성주 주민들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시위는 비애국으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발표 직전까지도 “사드 배치는 미국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정부가 갑작스럽게 배치를 결정해 한반도를 동북아 신냉전의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날벼락처럼 삶의 터전으로 비집고 들어온 사드에 저항하는 농민들을 불순세력으로 모는 행태야말로 비애국적 아닌가? 사드 배치 결정 뒤 중국에선 한류 콘텐츠 제재가 이미 시작됐다. 문화산업이 엄격히 통제되는 중국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랫동안 한류산업을 키워온 연예산업 관련자들이 1차 피해자이지만, 한류에 매혹돼 한국으로 몰려오는 중국 관광객에 의존하는 호텔·식당·소상공인들, 화장품·패션산업으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다.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정치·외교·경제·사회 곳곳이 무너져 내리지만 정부는 아무런 해법도 내놓지 않는다. 희망이 숨을 쉬지 못하는 곳에서 애국의 깃발만 요란하다. minggu@hani.co.kr
칼럼 |
[편집국에서] ‘애국’의 경제학 / 박민희 |
문화스포츠 에디터 <국제시장>(2014) <연평해전>(2015)에 이어 <인천상륙작전>으로, ‘애국영화’ 흥행 질주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영화들을 둘러싼 소동의 풍경도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시사회가 끝난 뒤 평론가들의 혹평이 쏟아지면,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이 ‘평론가들이 좌파’라고 이념공세에 나서고, 이를 신호로 결집한 보수층 관객을 중심으로 흥행몰이가 이어진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구시대적 반공영화’ ‘2시간짜리 대한뉴스’ 등의 혹평이 쏟아진 뒤, 지난달 26일 박승춘 보훈처장의 시사회 관람에 이어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서 “좌파 코드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영화계에서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는 참 용기있는 시도로 보인다”며 색깔론의 포문을 열었다. 1일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단체관람,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단체관람이 이어졌다. 물론 <인천상륙작전>을 볼만한 첩보·전쟁영화로 느끼는 젊은 관객도 많고, 국가를 지켜낸 자부심과 향수로 극장을 찾는 참전세대의 호응, 투자배급사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의 공세적 마케팅도 이 영화의 흥행 요소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보수세력의 결집,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좌파, 종북, 불순세력 등 낙인을 찍는 이념공세를 통해 관객을 모으는 독특한 영화 시장이 형성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여름 극장가 대전의 중심에 선 세 편의 영화는 공교롭게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산행>에선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좀비로 변해가는 동안 정부는 좀비 사태를 “폭도들의 습격”이라 우기면서, “국민 여러분은 유언비어에 속지 말고, 정부를 믿고 차분하게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국가가 역할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공간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생존투쟁에 내몰린다. <제이슨 본>은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병기로 훈련받았으나 더이상 살인자의 삶을 살기를 거부한 남자, 그 선택의 대가로 기억을 잃은 채 ‘나는 누구인지’를 찾아 헤매는 고독한 인간의 이야기다. 이번 영화에선 제이슨 본이 기억을 되찾긴 했지만, 여전히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첨단장비와 폭력으로 무장한 국가기구의 불의에 맞서 온몸을 던지는 부쩍 늙어버린 그의 모습이 마음을 울린다. 이 가운데 지금 여기의 국가는 어떤 모습인가?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비판적 애국은 애국이 아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로 퇴행하는 애국인가, 미래와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희망을 보듬는 애국인가? <인천상륙작전>의 세계관으로 본다면 성주 주민들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시위는 비애국으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발표 직전까지도 “사드 배치는 미국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정부가 갑작스럽게 배치를 결정해 한반도를 동북아 신냉전의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날벼락처럼 삶의 터전으로 비집고 들어온 사드에 저항하는 농민들을 불순세력으로 모는 행태야말로 비애국적 아닌가? 사드 배치 결정 뒤 중국에선 한류 콘텐츠 제재가 이미 시작됐다. 문화산업이 엄격히 통제되는 중국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랫동안 한류산업을 키워온 연예산업 관련자들이 1차 피해자이지만, 한류에 매혹돼 한국으로 몰려오는 중국 관광객에 의존하는 호텔·식당·소상공인들, 화장품·패션산업으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다.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정치·외교·경제·사회 곳곳이 무너져 내리지만 정부는 아무런 해법도 내놓지 않는다. 희망이 숨을 쉬지 못하는 곳에서 애국의 깃발만 요란하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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