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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24 17:44 수정 : 2016.08.29 17:18

김의겸
선임기자

우병우 민정수석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는 모양이다. 그걸 보여주는 일화 하나. 서울대 법대 4학년 때다. 자신처럼 사법시험에 일찌감치 합격한 동기생들을 불러모아놓고 깜짝 놀랄 제안을 했다. “우리 김진영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만나러 가자!” 김진영 사령관은 육사 17기로 12·12 때 반란군 쪽에 가담한 뒤 승승장구해 당시 최고 실세였다. 나중에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랐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의 대표인 그의 계급장을 떼어버리기도 했다. 모두들 호기심이 발동해 우병우의 뒤를 따라가긴 했으나 마음 한구석이 켕겼다고 한다. “이래도 되나?” 그렇기도 한 게 시절이 1987년 6월 항쟁 직후였다. 캠퍼스엔 최루탄 연기가 채 가라앉지 않았고 5월 광주의 피 내음도 가시지 않았다. 그때 우병우의 나이 만 20살. ‘소년등과’한 이의 가슴에는 도대체 얼마나 뜨거운 야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던 걸까? 같은 티케이(TK) 출신 선배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권력의 절정을 맛보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목표는 얼추 달성된 셈이다.

고향 선배들이 하나회를 만들었다면 우 수석도 못지않은 사조직을 만들었다. 육사 11기가 8기를 몰아냈듯이 우 수석도 불편한 검찰 선배들은 모두 옷을 벗기거나 한직으로 몰아넣었다. 대신 맘에 맞는 동기, 후배들로 채웠다. 우병우 사단이다. 이들은 주로 특수 수사를 하거나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자리에 있다. 우 수석의 눈과 귀다. 가만히 앉아 검찰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돌아가는 걸 김수남 검찰총장보다 더 빨리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입이 되어주는 경우도 있다. 한 검사장은 대검에서 회의가 있을 때 말끝마다 “청와대의 뜻입니다”라고 결론을 내린단다. 다른 검사장들은 매번 이맛살을 찌푸린다.

전두환이 12·12 반란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정보력이다. 보안사의 통신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기에 육본 쪽 움직임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던 거다. 우 수석은 곧 검찰 수사를 받게 된다. 여전히 민정수석이기에 수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가능성이 있다. 답지를 보고 푸는 시험이나 같다.

전두환은 80년 봄 보안사령관에 이어 중앙정보부장 자리까지 차지한다. 모든 정보를 한 손에 거머쥔 것이다. 전두환의 힘은 거기에서 나왔다. 우 수석도 자신의 ‘절친’인 최윤수를 국정원 2차장으로 발탁했다. 현직 검사장에 그것도 공안 경력이 없는 이가 간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다들 우 수석의 대리인으로 여긴다. 국정원의 핵심 요직에 있는 ㅊ아무개 국장도 우 수석에게 직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겉돌고 있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국정원뿐만이 아니다. 국세청 등 힘깨나 쓰는 기관의 경우 기관장보다는 2인자가 주목받고 있다. 우병우의 힘이다.

그래도 둘이 가장 닮은 점은 되치기 수법이다. 전두환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자신을 한직 중의 한직인 동해안경비사령부로 보내려고 하자 먼저 선수를 쳤다. 김재규와 박정희 암살을 공모했다는 혐의를 씌워 체포해버렸다. 우 수석을 겨냥한 언론의 보도가 시작되자 청와대는 이를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의 공격’으로 반격했다. 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식물 정부 만들기라는 딱지를 붙였다. 하긴 우 수석이 건재하니 식물 정부가 아닌 동물 정부가 맞나 보다. 정국이 요동을 친다. 피 내음이 진동하고 살점이 이리저리 튄다. 하지만 결말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12·12 때는 한밤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지금은 정오의 태양처럼 모든 게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실의 땡볕이 너무 뜨겁다.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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