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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5 18:27 수정 : 2016.10.05 20:40

권태호
국제에디터

칼럼 쓰기 전날, 한 후배에게 의견을 물었다. 후배는 “쓰지 마라”고 했다. “어떻게든 욕먹는다”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이야기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을 때, 성 김 국무부 북핵특사가 주한미대사로 임명된 다음날, 한국특파원단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무부의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물 한잔 없이 진행됐다. 미국 미시간의 지방언론사에서 몇주간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기자들은 도시락을 혼자 먹거나, 나가서 자기 햄버거만 달랑 사오곤 했다. ‘너희는 취재원 약속이 없냐’고 묻자, “조찬 모임과 만찬 파티 등이 종종 있다”고 했다. 내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부정청탁 금지법’과 관련해 외국 사례를 많이 든다. 하지만 외국은 오랫동안 축적된 문화와 사회구조가 제도로 형성된 데 반해, 우리는 제도로써 문화와 사회구조를 일거에 바꾸려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압축성장’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매끄러울 순 없다.

제너럴모터스(GM)는 해마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지엠이 진출한 나라의 언론사 기자들을 선별초청한다. 백악관 브리핑룸은 한정된 자리에 맨 앞줄은 통신·지상파 방송, 그다음은 <뉴욕 타임스> 등 전국적 종합지, 그다음 <시엔엔>(CNN) 등 케이블방송 식으로 언론사 위상에 따른 50석가량이 고정석으로 운영된다. 성 김 대사는 한국 부임 뒤 관저에 친분이 있는 옛 워싱턴특파원 몇 사람을 불러 저녁을 함께 했다. 최근 참석한 미국 덴버에서 열린 국제온라인뉴스협회 콘퍼런스에선 구글이 가상현실(VR) 프로그램 육성을 위해 내년에 언론사에 50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기업들의 펀딩 뉴스가 쏟아졌다. 한국 기준으로 모두 ‘부정청탁 금지법’ 위반이다.

‘부정청탁 금지법’ 시행을 놓고 공연 취재, 해외 취재 등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기자가 아니라 언론사가 고민할 문제다. “더치페이 좋지 않나요?” ‘공직자 등’의 경우, 공적 업무 비용을 소속 조직이 지불하지 않는다면 ‘사적 더치페이’를 계속 감당할 능력도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그동안 한국 언론들은 취재에 너무 돈을 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공짜로 뉴스를 봤던 이들은 합당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 등’과 ‘관계자’들이 공생한 사적 편취 거품은 꺼져야 할 것이고, 상당기간 국지적 경기위축은 감수해야 한다. 장관들 ‘더치페이 골프’로 떠받칠 순 없는 법이다.

‘부정청탁 금지법’ 정착 해법이 ‘더치페이’나 ‘값싼 식당’은 아닌 것 같다. ‘공직자 등’이 관계자와 계속 만나면 ‘사적 관계’가 쌓이고, 이는 ‘공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계’는 무얼 받아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시간’을 함께하면 쌓인다. 그래서 ‘공직자 등’은 공적 관계자와의 ‘사적 만남’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경우 ‘관계’ 비용은 훨씬 비싸지고, 더욱 ‘이너서클화’할 것이다. 어차피 무균질 사회란 없다. ‘큰 물고기’는 빠져나가고 ‘잔챙이’만 걸린다 하더라도, 총량적 사회정의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론 마뜩지 않다. 하루 만에 싱가포르 국민 또는 까까머리 중학생이 된 듯하다. 칠판에 ‘떠든 사람’이란 글씨가 협박처럼 박혀 있는. 또 ‘김영란법’에 찬성할 수 있고, 반대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사회생활 안 해봤지?’, ‘얻어먹겠다는 거냐’는 식으로 주장과 인격을 뒤섞어 버리면 더 이상 논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원죄를 따지자면 ‘공직자 등’의 잘못이 크고 크다. 하지만 미국 ‘공직자 등’은 태어날 때부터 고매한 인격과 청렴한 성품을 지녔고, 한국의 ‘공직자 등’은 천성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아닐 것이다. ‘개인’을 비난하고 다그치는 데 그치지 말고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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